맛과 향 일품…숱한 시행착오 이겨내고 '감홍' 고집

사과 명인 손동석 죽장개발자문위원장이 자신의 사과 농장 감홍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석호 기자
제9호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면서 포항 등 경북에 큰 과수 낙과 피해를 내고, 이어 10호 태풍 ‘하이선’은 오기 전인 지난 5일 포항시 북구 죽장면 합덕리.

이날 만난 사과 재배 명인 손동석(67) 죽장개발자문위원장의 농장 ‘감홍원’에는 조금 특이한 광경부터 눈에 들어왔다.

사과나무들이 줄로 서로가 연결돼 있던 것이다.

흡사 소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병사 멀미를 줄이기 위해 밧줄로 배 여러 척을 서로 붙잡아 맸다는 ‘연환계(連環計)’와 비슷했다.

손동석 씨는 “일손은 더 가지만 줄로 이어 주면 나무가 받는 강한 바람 힘을 분산하고, 서로 의지해 낙과 피해를 줄여 준다”며 5년 전쯤 창안한 ‘사과나무 연환계’ 에 대해 설명했다.

또 일기 예보를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살피며 “날씨는 사과 농사와 직결된다. 비가 다소 와서 방제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며 기민하게 기후에 대응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처럼 사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손 명인은 대를 이어 사과를 재배 중이라고 했다.

아버지 어깨 넘어 사과를 배우고 도운 시절부터는 60년. 대구서 잠시 회사 다닌 시기만 제외하고 1981년 이후 40년 사과와 본격 동고동락하고 있다.

손 명인에 따르면 선친 고 손기락 옹은 ‘죽장 사과 재배 선구자’로 6·25 직후 7남매를 키우기 위해 합덕리에서 사과 농사 시작했다.

화학 비료가 있을 만무할 당시 산에 있는 풀을 열심히 베어 나무 밑에 풍부하게 준 것은 돌이켜보면 ‘최고의 자연 비료’였다고 했다.

아버지는 과수원을 점차 넓혀 현재 2만㎡(6000평) 사과 농원 토대를 일궜다.

그가 아들에게 남긴 교훈은 ‘무조건 부지런하라, 사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였다.

이 사과는 교통이 매우 불편했던 그 당시에도 좋은 품질을 이미 인정받아 대구의 상인을 통해 서울 등으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손동석 명인이 본격적으로 사과에 빠진 건 고 이의근 경북도지사 재임 시기인 1990년대.

이 전 지사는 “‘경북=사과’인데 품질 등 상품성이 이름값에 미치지 못한다”며 “선진 기술과 재배 능력을 도입해 품질을 개량한 ‘신경북형 사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에 당시 최웅 경북도 과수계장(포항부시장·경북도재난안전실장 등 역임 후 퇴임), 손 명인을 비롯한 경북 지역 사과 독농가(篤農家)들, 지역 교수 등 과수 전문가가 의기투합했다.

일본, 미국, 유럽 등을 두루 견학하며 경북 지역에 적합한 재배법 찾기 위해 노력했다.

같은 반도 국가로 기후가 흡사해 나무 모양과 재배 규모도 비슷한 이탈리아 ‘남 티롤’ 지역의 사과 재배 체계 우수성을 최종 확인했다.

일부 선배들이 문익점처럼 이곳 묘목을 몰래 들여오며, 연구 끝에 이후 전국 최초로 2m 정도로 키가 낮아 효율적인 사과 대목(M9)을 도입·개발한 전설 같은 일화의 일원이다.

하지만 고난은 이어졌다.
고급 사과 ‘감홍’이 빨갛게 완전히 익은 모습. 10월 20일 내외에 수확한다. 손동석 명인 제공
그는 키 큰 기존 사과나무를 제거한 지 5년 만에 신품종인 M9를 도입했지만, 접붙임 등 재배 기술 부족과 묘목 불량, 병해충 등 잇따른 시행착오에 시달렸다.

특히 2000년대 초반 태풍 루사와 매미가 사과농장을 휩쓸고 지나면서 겪은 아픔 또한 너무 컸다.

손 명인은 “문제가 있었던 M-9 이중대목을 자근대목으로 바꾸고 신품종인 ‘감홍’을 심으면서 반전이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감홍’은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가 1981년 ‘스퍼얼리브레이즈’에 ‘스퍼골든데리셔스’ 품종을 교배해 1993년부터 보급한 품종.

당도가 매우 높고, 크기가 크며 육질은 연해 우수한 식감을 인정받는 고급 품종이다. 경북에서는 10월 20일께 수확한다.

하지만 독특한 생리장애 등 재배가 매우 어렵고 손이 많이 가 사과 농가에서는 ‘죽어가는 품종’으로 평가받았었는데, 손 명인은 “감홍 아니면 안된다는 고집과 정신으로 죽기 살기로 연구하고 재배했다”고 했다.

생리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대과에서 중과 위주로 크기를 조절했고, 칼슘을 적절한 시기에 공급해 생리 장애를 극복했다.

높은 품질과 적은 생산량에 대구 등 백화점과 소수 마니아층에 일반 사과 2배의 높은 가격에 전량 판매된다.

보통 대량 구매하는 측이 사과 가격을 결정하는 것과 달리 감홍은 손 명인이 가격을 주도적으로 제시한다며 사과 품질과 생산에 대한 자부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다른 품종 사과 나무도 일부 있는 그의 농장은 조만간 모두 ‘감홍’만 심을 예정도 내비쳤다.
포항시 북구 죽장면 합덕리 사과 명인 손동석 씨의 농장 ‘감홍원’ 앞에서 빨갛게 다 익은 감홍 사과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감홍은 조만생종으로 오는 10월 20일께 수확 예정이다. 9월 초 현재 한창 자라고 있었다. 손석호 기자.
그는 “감홍의 장점은 말 그대로 ‘맛과 향’”이라며 “이 사과를 먹으면 다른 것을 못 먹는다고 할 정도다. 또 항산화 물질이 많아 변색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후반 ‘감홍’을 맛본 당시 포항시장이 ‘이렇게 맛있는 사과가 있는 줄 몰랐다. 청와대에 납품하자’고 제안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다만 여러 사정으로 진상이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후 전국 사과사랑동호회 회장을 역임하고, 죽장사과영농조합법인 창립 멤버 등을 맡으면서 품질이 우수한 감홍과 죽장 사과를 널리 알리고 품질·유통 등 개선에도 힘을 보탰다.

영주·문경 등 전국에서 그의 농장으로 사과 재배 기술을 배우러 왔고, 특히 문경은 ‘감홍 사과 특구’ 까지 조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과수(사과) 분야 전문농업경영인(농업마이스터) 임을 인증하는 인증패가 포항시 북구 죽장면 합덕리 사과 명인 손동석 씨의 농장 ‘감홍원’에 걸려 있다. 손석호 기자
손 명인은 지난 2013년 농림식품부 장관이 인증한 ‘전문농업경영인 과수(사과) 분야 마이스터’로 선정됐다.

경북대에서 3년 동안 필기와 이론 교육, 면접 및 현장 검증까지 거치며 끊임없는 연구과 노력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손 명인은 “올해는 봄 냉해에 이어 장마가 유달리 길고 햇볕이 없었다. 향후 기후 변화 적응이 사과 농가의 숙제”라며 “감홍이 다행히 이런 장애 극복에 적합한 품종이긴 하지만 더 연구할 것”이라고 계획을 말했다.

죽장 출신인 최동로 전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과도 한 살 터울 친구이며 농업과 관련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감홍원 일부 사과나무 위에는 우박 등 피해를 막을 시설인 ‘차광막을 겸한 방풍막’이 설치돼 적극적으로 기후 변화에 대응하려는 노력도 눈에 엿보였다.

이제 사과 농장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다.

장남 ‘손일환(39)’씨가 3대째 사과 농사를 계승했으면 하는 것이 손 명인의 바람이다.

한국농업대학교(현 한국농수산대학)를 졸업, 현재 포항의 한 막걸리 도가에 다니는 아들도 선대의 영향인지 ‘막걸리를 활용한 유기농 영양제’를 최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상품화하면서 농업과 직·간접적인 인연을 이어 가고 있다.

가업 계승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손동석 사과 명인은 “선친이 부지런함을 강조하셨듯이, 저는 여기에 더해 아들에게 ‘절대 안주를 하면 안 된다. 변화와 도전에 적극적으로 임하라’고 조언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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