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스용으로라도 팔아보자" 팔 걷고 나선 낙과 피해 농가들

17일 오전 대구경북능금조합 포항농산물유통센터에 수매차 낙과 사과를 내려 놓는 한 농민의 어깨가 무겁다. 손석호 기자
“하늘의 뜻이라지만 올해 같은 날씨면 사과 농사는 못 짓십니더.”

17일 오전 9시 포항시 북구 기계면 대구경북능금조합 포항농산물유통센터.

아침부터 하나둘 죽장·기계·기북면 등 인근 3개 지역 사과 재배 농민들의 트럭이 속속 도착했다.
지난 주말 대구경북능금조합 포항농산물유통센터 인근 도로에 낙과 사과를 실은 트럭들이 수매를 위해 한꺼번에 몰리면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농민 제공
차량 가득 실은 20㎏들이 사과 상자들에는 채 영글지 못해 새파랗고 작은 태풍 때 떨어진 사과가 가득 담겼다.

수매를 통해 주스용으로 활용하고자 센터로 차례로 내려 놓았다.

다들 고령이기도 하지만 박스를 들어 올리는 어깨가 평년보다 유달리 무거워 보였다.

지난 9호 태풍 ‘마이삭’과 10호 태풍 ‘하이선’이 9월 초 잇따라 포항 등 경북을 관통하면서 광범위한 사과 낙과 피해를 냈기 때문이다.

이곳 3개 면에만 1200여 농가에 이를 정도로 사과가 수입원 중 하나다.
17일 오전 대구경북능금조합 포항농산물유통센터에 수매차 내어 놓은 낙과 사과들이 톤백 자루에 가득차 있다. 손석호 기자
10월 하순에나 수확하는 ‘후지’ 품종이 주류를 이루는데 워낙 일찍 떨어지다 보니 정품의 3분의 1가량 밖에 되지 않는 멍든 꼬마 사과도 꽤 보였다.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홍로’는 불과 보름 여를 앞두고 거의 다 키워 피해를 봤다.

이달 5일부터 농금조합 측은 낙과 사과 수매를 시작했는데, 워낙 많은 차량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지난 주말에는 센터 인근 도로에 100여m 트럭 장사진이 서기도 했다. 물량도 넘쳐나 15~16일 수매를 일시 중단하고 센터 내부를 정돈한 후 이날부터 순번을 나눠서 다시 받기 시작했다.

우상구(76) 씨는 “사과밭 나무 중 3분의 2가 태풍으로 쓰러져 전기톱으로 배어 냈다”며 “그나마 저는 자식을 다 키워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다른 분들은 올해 농사가 사실상 빚더미나 다름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17일 오전 대구경북능금조합 포항농산물유통센터에 수매차 내어 놓은 낙과 사과들이 톤백 자루에 가득차 있다. 채 영글지 못해 사과의 크기가 작은 것이 많았다. 손석호 기자
올해 태풍은 워낙 강한 바람이 강해 나무에 남아 있는 사과들도 흠집이 생겨서 상품가치는 떨어지고 정품 값을 받기는 어렵다고 한다.

사과는 수년간 나무를 키워야 하고 시설비 등 경영비용도 많이 들어 농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다. 두 태풍이 며칠 사이로 연달아 오다 보니 풍수해보험 조사 등도 연기돼 30%가량은 이미 짓무르고 썩어 주스용 조차도 사용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한 여든일곱 어르신은 “가을 농사가 힘들다고 (일손을 덜어 주려고) 하늘이 도왔나 보다. 허허”라는 역설적이며 고도로 승화된 말씀으로 아픔 심정을 돌려 표현했다.

또 다른 농민들도 “(사과나무에)달려 있는 것이 좀 더 많아 괜찮니더”, “조합 측이 이렇게 수매해줘서 고맙습니다”고 말하며 허허로운 웃음이 오히려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포항시는 지난 4일부터 긴급 예비비 등 예산 4억7000만 원을 투입해 떨어진 사과 1900t을 수매하고 있다. 사과지원 가격은 20㎏ 기준 8000원으로 포항시가 5000원을, 능금농협이 3000원을 부담한다.

이번 낙과 수매는 능금농협 기계농산물유통센터, 포항시농산물도매시장에서 진행 중이며 타 지역에 비해 포항의 과수 피해가 커서 전 직원이 주말도 반납하며 수매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또한 서포항농협도 저온창고를 개방하고 자체 보유 중인 지게차 3대, 톤백 200장과 인력 10명을 동원해 능금농협 낙과 수매를 지원하고 있다.

한편 영양군도 태풍 영향으로 낙과 피해 사과 재배 농가 대상 저품위 사과 긴급수매를 확대실시한다고 17일 밝혔다.

군에서는 대구경북능금농협의 저품위 사과 수매지원사업을 계속 추진하면서 추가로 남영양농협과 협의해 태풍 낙과 사과를 긴급수매 할 계획이다.

남영양농협에서는 영양군 전체사과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16일부터 25일까지 10일간 낙과 사과 수매를 추진한다. 수매가격은 포항과 동일하다.

한편, 영양군에서는 태풍으로 인한 과수 낙과 피해가 16일 현재 150㏊로 집계됐으며, 저품위 사과 수매량은 대구경북능금농협 진보영양경제사업장에서 100t, 남영양농협에서 20t을 실시했고, 농가에 보관 중인 잔량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 내 전량 수매를 완료할 계획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잇따른 2개의 태풍으로 사과 농가가 포항 245㏊, 청송 568㏊, 영주 321㏊ 등 지난 10일 현재 2735㏊가 잠정 낙과 피해가 발생했고, 정밀 조사가 마무리되는 다음 주께는 이보다 훨씬 늘 것으로 추산된다. 벼 또한 1500ha가 쓰러짐 피해가 발생했고, 역시 더 늘어날 전망이다.손석호 ·정형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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