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산문조 형식으로 구성해 '눈길'

북위 36도-표지
윤석홍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북위 36도, 포항’을 출간했다.

‘북위 36도, 포항’은 윤석홍 시인이 포항이란 도시에 발 딛고 살면서 만나는 이웃, 사물, 풍경 등 일상적이거나 특별하지 않은 그가 몸담고 살아오며 눈 여겨 보아왔던 이곳 저곳 이야기를 한 올 한 올 담아낸 인연의 결과물을 지역에 있는 작은 출판사에서 나루시선 첫 번째로 출간했다.

1987년 ‘분단시대’동인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윤석홍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은 시인이 살고 있는 포항의 이곳 저곳을 앨범 펼치듯 낯익고 친근한 아저씨처럼, 때론 구수하고 정겹게 은유와 상징, 생략과 축약보다는 찻집에 앉아 꾸밈없이 들려주는 화법으로 메타포는 시의 내용을 형상화 시켜 이미지로 그려내고자 하는 훌륭한 장치지만 행간에 감춰진 것들로 인해 일반 독자에게는 조금 어렵게 비춰질 수 있다. 이번 시집은 오래 묵혀 온 얘기들을 이웃들에게 조곤조곤 들려주기 위해 급박한 음률 대신에 담담히 율을 다스리듯 산문조의 형식을 취했다. 여기에 실린 시들은 모두 산문시로 일관한 것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일별해 보면 시는 참 쉽게 다가온다.

그가 그려낸 대상을 보면 그런 생각은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제일국수공장’,‘포항시립화장장’,‘기북우체국’,‘포항중앙포은도서관’,‘중앙동 이발소’,‘기계다방’,‘칠포리 바위그림’,‘모리국수’,‘왕대포집’,‘머구리 이씨’, ‘옛 포항역’,‘2017.11.15’,‘제철소 용광로’,‘보라빛 해국’등 누구나 쓸 수 있는 소재들이지만 내가 발 딛고 살면서 만나는 이웃, 혹은 일상적으로 만난, 특별하지 않은 곳들에 대한 관심은 이 도시에 오래 산 시인만이 그려낼 수 있는 풍경이다. 그것이 바로 이 시집이 가진 최고의 미덕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발 딛고 살면서 만나는 이웃, 혹은 일상적으로 만난, 특별하지 않은 곳들에 대한 관심은 포항이란 도시에 오래 산 시인만이 그려낼 수 있는 풍경이다. 그것이 바로 이 시집이 가진 최고의 미덕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듯 한 도시가 한 시인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행운이다. 빈터가 숲이 되고, 그 숲이 우거져 새를 기르고, 다시 그 새가 숲에 의지하여 둥지를 튼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특히나 진정성을 가진 시인이 그 지역에 오래 살며 발 딛고 사는 곳을 노래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북위 36도, 포항’은 그가 몸담고 살아오며 눈 여겨 보아왔던 이곳 저곳 이야기를 한 올 한 올 담아낸 인연의 결과물이다.

표제작인 ‘북위 36도, 포항’에서 보여주듯이 바쁜 일상 가운데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볼 때가 있다. 내 그림자를 따라 걸어 본 적도 없고, 별의 행로를 눈 여겨 본 적도 없다. 그저 땀을 식혀 줄 바람을 기다릴 뿐, 그 바람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잠드는지를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그런 윤 시인도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앉은 곳의 좌표를 읽으며 걸어 온 길을 돌아본다. 잠시 떠나 있던 곳, 젊은 날 넓혀가던 삶의 외연을 축소시켜 놓고 보면 거의 팔 할은 포항의 것임을 자각한다. 늘 그렇게 살았지만 이런 발견은 참 새삼스럽기도 하다. 공기처럼 너무 자연스러워서 잊고 사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이 시집에 오롯이 그런 모습은 담아낸 시집이 바로‘북위 36도, 포항’이다.

윤석홍 시인은 그는 지구촌의 끝 간 데를 따라가 보고 싶었던 사람이다. 히말라야 초모랑마를 비롯한 봉사를 통한 지구촌 오지 여행을 몸소 행한 실천가이며 백두대간, 낙동정맥을 두루 답사한 여행가이다. 이런 열혈남아의 길은 다시 포항에서 안식을 찾는다. 물론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시작한다. 그 역시 돌아와 또 다른 내일을 꿈꾸기 위해 늘 가 앉던 커피전문점 의자에 앉은 것이다. 나침판을 놓고 멀리 떠나본 자만이 지금의 안식을 안다. 아니, 그 소중함의 무게를 안다. 이 도시의 여명을 따라 걷고, 황혼을 바라보며 늙어간다.

내가 오래 산 도시는 익숙한가? 익숙한 만큼 늘 안녕하신가? 영일만으로 밀려온 동해 물살이 시민들을 푸르게 물들이는 도시, 북으론 태백산맥이 버티어 든든하고 그로 인해 형산벌이 비옥해 사람 살기에 좋은 도시, 더 먼 역사적으로는 동해안 해로의 중심도시였으니 언제나 포항은 안녕하였다. 거기에다 산업화의 깃발 아래 철강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도시가 되었으니 남이 부러워한 풍요를 구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이라고 언제까지나 안녕과 풍요가 보장될까. 시인은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 느닷없이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큰 변화에 잠시 황망해진다. 그러다 차츰 냉정을 되찾고 오늘은 진단하기도 한다.

해설을 쓴 이달균 시인은‘예순 중반에 쓴 윤석홍 시인의 이 시편들은 포항에 대한 절절한 연서다. 처음엔 포항 백과사전이라 생각했는데 페이지를 넘기면서 한 시인이 쓴 연서임을 알게 됐다. 사랑한다면 당장 만나야 한다. 나도 내 사는 곳에 대한 사랑이 있지만 이렇게 절실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이 시집을 읽는 독자와 함께 포항을 사랑하는 시민과 함께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시인의 말에서“북위 36도, 포항에 살면서 보고 느낀 애정 어린 마음의 시편을 모아 세상 밖으로 내보낸다.”고 적었다.

김일광 동화작가는“포항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에게는 나름 의미 있는 시집으로 고향이 꼭 포항이 아니어도 이곳에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사는 사람에게도 좋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고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위로와 추억을 떠올리게 해 줄 것이다”며 “고향의 기억과 아련한 꿈들을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속으로,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이 시집을 읽어볼 것”을 권했다.

이번 시집은 2020 포항문화재단 포항예술지원사업 지원금을 받아 발간됐다.

윤석홍 시인은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틈틈히 여행과 책 읽기로 삶의 지혜를 배웠다.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지구촌 오지로 봉사를 다녀왔고 여러 나라를 떠돌다 좋은 구루와 스승을 만나 세상은 살만하다는 것도 알았다. 산을 오르거나 걷기를 좋아해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종주, 해파랑길, 미국 네바다 주에 있는 존 뮤어 트레일을 걸었다. 히말라야를 비롯한 해외 여러 산을 다녀왔다. 내가 왜 살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배낭 메고 훌쩍 떠나기도 한다.

시집으로‘저무는 산은 아름답다’, ‘경주 남산 에 가면 신라가 보인다’, ‘밥값은 했는가’, E-book‘벚꽃 학교’, 여행 산문집 ‘존 뮤어 트레일을 걷다’, ‘길, 경북을 걷다’등을 펴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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