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함께한 지 어느덧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정체 모를 감염병에 두려움을 느꼈던 사람들은 코로나19 장기화에 점차 지쳤고, 방역과 의료 현장에서는 두려움 대신 불만과 짜증을 드러내기도 한다.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며 ‘영웅’으로 불린 이들이 더욱 지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코로나19 극복의 해가 되길 바라는 2021년, 지금도 일선 현장에서 힘든 싸움을 이어나가는 우리의 영웅들이 바라는 건 단 하나 ‘협조’다.

△“힘드신 상황 이해해요. 치료하는 동안만 협조해주세요”.

대구동산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조애진 간호사는 바라는 점으로 ‘치료에 대한 협조’를 꼽았다. 불만과 짜증이 섞인 입원 환자들의 행동을 수차례 겪으면서 더욱 지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조 간호사는 대구에서 코로나19가 대규모로 확산한 지난해 2월부터 약 일 년 동안 확진자들을 돌봤다. 확산세가 줄면서 일반병동에서도 잠시 근무했지만, 지난해 9월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면서 줄 곳 확진자들을 보살폈다. 하지만 최근 환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정체 모를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 대신 불만과 짜증을 드러내는 환자들이 늘어서다.

조 간호사는 “외부에서 들여온 음식을 먹고 탈이 나면 정확한 원인을 진단하기 힘들어 반입을 금지하고, 담배나 일부 물품을 들이는 행위 또한 제한시키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불만을 느낀 분들이 있어 간호사들이 설득하는 데 애를 먹는다”고 힘없이 웃었다. 이어 “입원 전 규정을 설명할 때 모두 알겠다고 하지만, 입원해있다가 도시락이 맛없다고 간식 반입하게 해달라고 짜증을 내고 ‘네가 뭔 상관이냐’고 역정을 내시는 분도 있다”며 “당황스러우면서도 같은 설명을 계속 드리는 수밖에 없다. 힘드신 상황은 이해하지만, 치료과정을 잘 따라줬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희망했다.

협조를 당부하는 조 간호사는 코로나19 환자들을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 중 하나다. 확진자들이 겪는 슬픔과 고통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치매가 있는 할머니가 함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오열한 일은 조 간호사가 잊지 못한 슬픈 기억이다. 조 간호사는 “계속 오열하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새벽에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는데, 서문시장 앞이라고 하니까 비빔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면서 “아들이 사망한 사실을 잊고 장례도 함께 치르지 못한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울먹였다.

반면, 완치된 상태로 퇴원하는 시민을 보면서 코로나19 종식이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조 간호사는 “동산병원 별관에 있는 큰 나무에 벚꽃이 폈을 때부터 정신없이 치료했던 것 같은데, 대구에 눈이 오는 날 ‘벌써 겨울이 왔구나’라고 느꼈다”며 “‘봄은 잃었지만, 가을은 맞이하겠지’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봤다. 이어 “눈이 오던 날 퇴원한 외국인 환자 3명이 사진을 찍으며 좋아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됐으면 좋겠다”며 “집과 병원을 오가던 생활에서 벗어나면 가까운 제주도라도 여행하고 싶다”고 웃음을 지었다.

△“코로나 검사는 가족과 지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필수입니다”.

대구 북구보건소 내 선별진료소의 업무총괄을 맡은 김양희 주무관은 검사자들에게 ‘방역 협조와 이해’를 부탁했다. 지난 일 년 사이 수많은 검사자의 민원에 시달리면서 셀 수 없이 꺼냈던 말이다. 김 주무관은 “모든 현장이 힘들겠지만, 선별진료소 직원들은 사회·가정생활을 잃은 상태다”며 “‘공무원이니까 힘들지만 해야지’라고 노력하는데, 생활방역을 지켜주지 않거나 비협조적으로 행동하는 주민을 만나면 힘이 쭉 빠진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한 이후 며칠 동안 ‘코가 아프다’고 민원을 계속 제기하는 주민뿐만 아니라 역학조사에 불응하거나 예약된 검사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검사자, ‘검사를 해주지 않는다’고 허위로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이들이 북구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았다. 말도 안 되는 민원과 비협조적인 태도가 일선 현장에서 고생하는 방역 관계자들을 더욱 지치게 하는 것이다.

김 주무관은 “검사를 하다 아파서 울음을 터트리는 분도 있었는데, 절대 헤치려고 하는 검사가 아니다”며 “사람마다 통증을 느끼는 정도가 달라 아픔이 클 수 있지만, 자신과 가족·지인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힘내달라”고 했다.

선별진료소 직원들이 일 년 동안 수많은 민원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일을 하는 이유는 북구 주민들의 응원과 감사가 이어져서다. 앞서 음식뿐만 아니라 건강식품과 꽃, 손편지가 선별진료소로 전달됐다.

김 주무관은 “지난해에 응원물품이 많이 들어왔다. 여름철에는 아이스크림 회사에서 상품을 주기적으로 보내주기도 했는데, 직원들이 틈날 때 나눠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며 “모든 분께 인사를 드리지 못했지만 정말 고마웠고, 어린 친구들이 힘내라고 응원의 손편지를 써준 일도 힘이 됐다”고 전했다.

김 주무관에게 특별히 힘을 북돋워 준 이들은 가족과 동료직원이다. 보건소와 집만 오가는 일 년 동안 가족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함께 사회생활을 자제해줬고, 코로나19 확산 속에서도 묵묵히 함께해준 직원들이 힘든 시기를 견뎌낸 원동력이다.

김 주무관은 “친구를 그렇게 좋아하는 중학생 아들이 엄마가 보건소에서 일한다고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집에만 있었고, 선별진료소 직원들도 시간적 여유도 없었지만, 지난 일 년 동안 무조건 집과 보건소만 오가며 스스로 방역수칙을 지켜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검사자 한 분이 선별진료소로 오기까지 수많은 직원이 업무를 보고, 가족들이 함께 고생하고 있다”며 “검사자들이 우리들의 노력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방호복 입은 소방관 나타나도 걱정하지 마세요”.

“레벨 D 방호복을 입은 소방관이 나타나도 걱정하지 마세요! 확진자가 발생한 게 아닙니다”

대구 수성소방서 앞에서 만난 양승훈 소방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사투 속에서 시민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구의 경우 하루평균 확진자 수가 수도권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지만, 구급대원들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아직도 ‘레벨 D 방호복’을 착용한 채 구급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방호복을 입고 환자이송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불안해진 시민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 확진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며 “시민의 궁금증이 환자의 인권을 침해하게 된다. 또 코로나19 확진자라면 방역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소방대원들을 믿고 따라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코로나19의 숨은 영웅’이라는 표현에 “재난 현장에 소방관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손사래 쳤다. 양 소방사는 구조복을 입은 지 올해로 4년 차다. 이제 겨우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익숙해져 갈 때 코로나19라는 전무후무한 감염병과 마주하게 됐다. 이 감염병은 양 소방사에게 ‘레벨 D 방호복’이 무엇인지 알려줬다.

그는 방호복을 입고 근무하는 것에 대해 “군대에서 매일같이 유격훈련을 하는 느낌”이라며 “문제는 유격훈련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양 소방사는 ‘코로나19 전담 구급대원’이다. 임무는 응급구조사로 코로나19 확진자를 병원으로 이송한다. 지난해 150명의 확진자가 양 소방사의 도움을 받았다. 신천지 대구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 확산세가 가파를 때는 하루에만 8명의 환자 이송했다.

양 소방사는 “당시 대구지역 병원에 병상이 없어서 강원도 등 시외로 환자이송을 자주 했다”며 “방호복을 입고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체력소모가 너무 심해 쏟아지는 졸음을 참는 것이 고역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사랑하는 아내와의 생이별이었다. 양 소방사의 아내는 대구가톨릭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사실상 각방 생활을 하고 있다”며 “빨리 코로나19를 정복하고 일상을 찾아 아내와 데이트를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코로나 방역의 최일선에는 의료진도 소방관도 아닌 바로 시민이라고 말했다.

양 소방사는 “코로나19로 위급했던 지난해 대구지역 소방서에 걸려온 장난전화는 단 1건도 없었다”며 “대구시민들이 똘똘 뭉쳐 방역에 앞장서는 만큼, 언젠간 코로나가 종식되고 일상을 찾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배곯는 이들에게 한 끼를 대접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대구 달서구 성당동 ‘사랑해 밥차’ 사무실에서 만난 최영진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끼니 걱정에 시달리는 노인들을 돕기 위해 무엇보다 시민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코로나19로 많은 무료급식 봉사단체가 ‘개점휴업’한 상태여서 자신의 ‘사랑해 밥차’에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어 거리 두기 등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잇따라서다.

그는 “노숙자나 정신적 문제가 있으신 분도 끼니 해결을 위해 우리 급식소를 많이 찾다 보니 아무래도 통제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무료급식소를 찾는 어르신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 등 봉사단체의 통제에 잘 따라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 밥을 두고 고성이 오가더라도 방역수칙을 지키고 있으니 너그럽게 봐달라”고 부탁했다.

‘사랑해 밥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종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무료급식소를 열어달라는 민원과, 많은 사람이 모였으니 해산시켜달라는 상반된 민원이다.

그는 “약 300명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줄을 서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한 일도 있었다”며 “간혹 지나가던 시민들이 욕을 할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무료급식을 멈출 수가 없다. 생각보다 많은 노인이 매일 끼니를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요즘 시대에 밥 굶는 사람이 있나’라고 하신다. 그런데 직접 와보시면 정말 배곯는 사람이 있다”며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 무료급식을 멈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 밥차를 시작한 6명 모두 장애를 앓고 있다. 최 대표도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사랑해 밥차’의 전신도 ‘장애인 예술단’이었다.

최 대표는 “장애인 예술단을 꾸려 시설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했다”며 “시설에서 어르신들이 밥이나 반찬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을 보고 공연보다는 어르신들에게 따듯한 밥을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4년 중고 트럭을 한 대와 대형밥솥 하나는 사서 시작한 ‘사랑해 밥차’는 현재 봉사자만 700명이 넘는 무료급식봉사단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현재 수도권 중심으로 재확산 되는 코로나19로 인해 무료급식을 중단했다.

최 대표는 “현재 대구에서는 확진자가 감소하고 있는 만큼 무료급식 재시작을 위해 구청과 협의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계층도 코로나19에 맞설 수 있게 많은 관심을 가져달다”고 말했다.
 

전재용 기자
전재용 기자 jjy8820@kyongbuk.com

경찰서, 군부대, 교통, 환경, 노동 및 시민단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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