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도 힘든데 낙인에 또 눈물…"상처받고 지친 마음 위로를"

지난해 3월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활짝 핀 벚꽃을 뒤로하고 음압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경북일보 DB.

코로나 블루, 코로나 앵그리, 코로나 레드, 코로나 블랙아웃, 멘탈 데믹, 불안 케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우울감을 넘어 분노와 불안까지 이어진 상황을 표현한 신조어들이다.

2월 18일 이후 신천지예수교회 교인을 중심으로 1차 대유행이 시작된 ‘대구’라는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차별과 혐오, 냉소가 가해졌다. ‘대구 봉쇄’, ‘대구 코로나’, ‘대구 폐렴’이라는 주홍글씨는 대구시민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어떤 이는 코로나19 확진자라는 낙인에 갇혀 엄청난 고통을 겪었고, 또 어떤 이는 심리방역을 통해 슬기롭게 극복했다. 1년을 겪은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로 받은 상처와 후유증을 심리방역으로 이겨내야 한다. 전문가들도 이제는 물리적 방역도 필수이지만, 심리적 안정과 마음 돌봄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역별 코로나19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정도. 보건복지부.

△낙인의 고통.

대구에 사는 여대생 A씨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날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 밀려왔다. 확진자라고 낙인 찍히는 게 두려웠고, 당시에는 백신조차 없는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절망적이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에 올라타서는 머리가 새하얘졌다. “우리 학교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문자를 받고서는 확진 사실이 밝혀질 것이 두려웠다. 어머니와 함께 입원한 음압병실은 추웠지만, 각종 검사를 받으며 적응했다. 어머니가 먼저 퇴원한 이후 3일 동안 괴로움의 강도가 커졌고, 오로지 병실을 나가기 위해 특유의 밥 냄새와 싸워가면서 약을 꼬박꼬박 먹었다. 살이 5㎏ 정도 빠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퇴원 후 2주 동안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학교로 향했지만, 두렵기만 했다. 사람들의 눈조차 마주치기 힘들었다. 심장이 마구 뛰면서 숨이 가빠졌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힘내서 살아가다 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다독였다.

코로나19 확진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털어놨는데, “나 자신을 좀 더 아껴주세요. 본인을 좀 더 사랑해줘요.”라는 말을 듣고 용기가 생겼다. 코로나19가 나 자신을 불안 속으로 집어넣었지만, 꺼내 줄 이는 나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A씨는 현재의 나를 믿고 인정하면 불안과 우울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A씨는 “코로나 또한 그냥 바이러스인데 우리가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면 진다. 버티고 버티다 보면 결국 이겨낸다”고 했다.

자녀와 남편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던 주부 B씨는 완치 판정을 받고도 매몰찬 시선에 눈물을 떨궈야 했다. 확진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학교와 학원에서조차 거부한다는 자체가 치가 떨렸다. B씨는 “깊은 분노와 슬픔에 이어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느꼈다”면서 “대구시의 통합심리지원서비스를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창궐할 당시 취준생이었던 C씨는 “대구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시험 조차도 박탈당한다는 느낌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다”며 “대구시민의 저력으로 슬기롭게 1차 대유행을 이겨낸 이후 다행히 취업에 성공해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고 했다. 김정은 대구시 정신건강복지센터 심리지원단 팀장은 “2월 18일 이후 특정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확진자와 격리자가 많이 발생했는데, 이단이라는 편견과 낙인 때문에 일상생활 복귀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었고, 단지 대구에 산다는 이유로 엄청난 차별과 불이익을 받았다고 호소하는 이들도 많았다”면서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잘 견디고 잘 버텨낸 대구시민이야 말로 가장 슬기롭게 극복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전국 음주량 증가 비율. 보건복지부.

△코로나 블루.

지난해 2월 18일 첫 확진 환자가 나온 대구에서는 26일 0시 기준 8263명의 확진 환자가 발생했고, 202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만간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지만, 코로나19는 여전히 우리 삶 전체를 옥죄고 있다.

의료진부터도 상당한 고통을 치렀다. 영남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연구팀이 코로나19 환자 수가 급증하던 시기인 지난해 4월 2일부터 10일까지 영남대병원 근무자 1003명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통해 우울, 불안, 주관적 위험인지 점수를 평가하고, 직무와 근무부서, 노출 경로에 따른 스트레스 반응을 확인했다. 그 결과 의료계 종사자들의 우울과 불안이 높게 나타났고, 특히 환자 치료과정에서 밀접한 접촉 가능성이 큰 간호사 직원의 상황이 더 심각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우울, 불안 위험군에 해당하는 응답자가 각각 33.3%와 12.5%로 나왔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우울과 불안을 겪는 비중이 각각 6.7%, 6.2%인 것과 대조적이다. 연구팀은 특히 간호사 직군에서 우울과 불안 지수가 가장 높게 나타났고, 감염 우려도 다른 그룹에 비해 높은 것으로 짐작돼 감정적인 스트레스가 높은 우울과 불안 수치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했다.

코로나19를 슬기롭게 극복해온 대구시민이지만, 두려움과 불안감은 상당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지난해 3월, 5월, 9월, 12월 4차례에 걸쳐 전국 광역시도 거주 성인 19~70세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를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자신이나 가족의 감염과 타인에게 전파, 확진자 낙인, 실직과 생계 걱정 등 코로나19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항목에서 대구는 3월과 5월 조사에서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9월과 12월 조사에서도 2위 수준이었다.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생각을 포함한 ‘우울’ 항목에서도 대구는 17개 시·도 평균점수를 크게 웃돌았다. 우울 위험군은 3월 25.53%에서 5월 27%, 9월 23.4%, 12월 15.96%로 낮아지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불안’ 위험군도 3월 31.9%까지 치솟았다가 12월 18.1%로 떨어졌다.

직업과 사회·여가활동, 가정생활 등 일상생활 방해 정도와 관련해서도 3월 조사에서 대구는 전국 평균(5.58)보다 높은 6.31까지 올랐고, 5월 5.6(전국 평균 4.88), 9월 5.45(전국 평균 5.32)로 높게 나왔다.

대구시 관계자는 “전체적인 지표가 시간이 흐를수록 개선되는 점은 환영할 일이지만, 전국적으로 음주 빈도와 음주량이 각각 15%와 12.3%가 늘어났다”며 “술에 의존하는 대신 24시간 운영하는 전화상담 등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원승희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장기간의 과도한 음주와 폭식 등은 스트레스를 회피하는 건강하지 못한 방법인데, 특히 혼술의 경우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면서 “혼술 대신 누군가와 함께 하면서 자신을 열면서 연결해야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건강한 몸을 만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를 구분해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도움을 요청하고 나중에 해결해야 할 일은 미뤄야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음처방, 일상 회복.

신천지를 중심으로 코로나19 유행을 겪은 대구시는 지난해 1월 29일부터 코로나 블루 해소를 위해 통합심리지원단을 운영하며 치유에 힘을 쏟고 있다. 25일 기준 5만7365건의 심리상담(전화 1599-0199) 실적을 기록했는데, 확진자와 확진자 가족, 격리자와 격리자 가족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다수를 차지했다. 김정은 대구시 정신건강복지센터 심리지원단 팀장은 “걸려오는 전화 상담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전화를 걸어 서비스를 지원한다”며 “하루 최고 1800건에 가까운 상담을 통해 생채기를 지닌 시민의 마음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시는 시민 스스로 심리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마음똑똑’ 앱과 9개 정신건강복지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스트레스 완화방법 등 다양한 심리지원 활동도 펼치고 있다. 상담 후 정신건강의학과 병·의원에서의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를 원하는 시민에게는 1인당 8만 원 상당의 상담치료비도 지원하고 있다. 또 일상회복 지원을 위해 비대면 서비스 제공 차원에서 SNS 활용 마음건강 릴레이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정성원 계명대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덩달아 심리적 거리도 벌어지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 단절과 소통이 제한됐고, 기존보다 활동량이 줄면서 정서적 면에 영향을 미치면서 발생하는 게 바로 코로나 블루”라며 “무엇보다 내가 감염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것을 불안해하는 심리가 주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불안을 잘 조절하지 못하거나 조절능력이 취약하면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며 “과도한 불안 대신 당장 닥친 걱정에만 초점 맞추고 SNS를 통한 심리적 거리 좁히기, 활동 양 강화하기 등을 통해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고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스스로 그 조절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보다 적극적으로 전화상담과 같은 심리방역 서비스를 찾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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