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히브리어로 ‘라손하라’(Lashon hara)는 말이 있다. ‘나쁜 혀’라는 뜻의 이 말은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을 의미한다. 비록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을 깎아내리게 되는 모든 부정적인 말들은 험담으로 규정한다. 은근히 남의 명예에 손상을 주는 것(Avak Lashon hara)까지도 험담에 포함해 유대인들은 ‘라손하라’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유대법에서는 대화 상대방이 결혼문제 등 중요한 일로 다른 사람에 관한 정보를 꼭 알아야 할 때 외에는 다른 사람에 관한 부정적인 말을 허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특정인의 이름이 거론되었을 때 인상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흔들거나 입을 삐죽거리는 등 부정적인 속내를 은근히 내비치는 것까지도 험담에 포함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평소 특정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여럿 모인 자리에서 은근슬쩍 그의 이름을 거론해 험담이 나오게 하는 것 역시 험담 이상으로 큰 죄로 여긴다.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에 관한 말을 할 때 거짓이거나 꾸며낸 말이 아니면 험담은 아니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누가 부도가 났느니 친구의 노모가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느니 아이가 셋이나 되는 지인이 결국 이혼을 했다느니 하는 말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자리에 없던 당사자가 나중에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마음이 상하고 기분이 언짢아할 이야기라면 아무리 사실이라도 그것은 험담이다. 때문에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는 해서는 안 될 말이고 삼가야 될 말들이다.

유대인들이 험담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은 험담이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하고도 두려운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험담은 마치 치명적인 전염병이나 댐의 구멍처럼 모든 것을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아무리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 관한 부정적인 말들은 ‘라손하라’로 금지한다.

유대인 속담에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이지만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고 했다. 첫 번째는 험담을 퍼트리는 사람이고 두 번째는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듣는 사람 마지막으로는 그 험담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험담을 “악마”라고 하면서 “남을 험담할 때 악마는 찾아온다”고도 했다.

직장이나 사무실, 단체 등 공동체에서 험담들이 서로 잦아진다고 가정해보자. 결과는 볼 필요도 없다. 얼마안가 심각한 갈등과 어려움에 휩싸이고 말 것이다. 이렇듯 험담은 공동체의 적이요 총칼보다도 무섭고 위험한 존재다. 그렇지만 너나없이 험담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언제든지 험담에 가세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 대상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온라인 미디어와 SNS 이용이 폭증하면서 요즘 댓글들은 칭찬이나 격려 보다는 온갖 비난과 험담들이 넘쳐나는 모습이다. 거리두기와 비대면이 장기화되면서 서로 간에 만남과 이해의 시간들이 점점 줄어드는 대신 오히려 개별화와 고립이 심화돼 이러한 경향들이 더해지는지도 모르겠다.

험담을 물리칠 비법은 없는 것인가? 전문가들은 저마다의 겸손과 되돌아봄을 주문하면서 주변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비결이자 최강 백신이라고 말한다. 결국 험담 없는 세상은 험담을 스스로 넘어서야 하는 각자의 몫에 달린 셈이다.

“당신이 마음의 상처를 빨리 받게 하려면 적이 되는 사람과 친구만 있으면 된다. 즉, 당신을 깎아내리고 비방하는 적과 그 비방을 전해주는 친구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이 했던 험담에 관한 뼈있는 한마디가 가슴에 화살처럼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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