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연초록 치장한 산길따라 걸으니 봄의 매력 한층 선명

생태공원전망탑에서 바라본 포항쪽 파노라마 사진.

지난 주말(25일) 우리지역에는 강풍이 불어 야외활동이 쉽지 않았지만 햇살은 따사롭고 싱그러운 초록빛이 유난히 빛나는 날이라 시내 가까이에 있는 곳으로 자연을 찾아 나섰다. 포항 남구 연일읍 중명리에 위치한 ‘중명자연생태공원’과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옥녀봉(玉女峰·225m)’ 일대를 찾았다.

가까이 있어도 좀처럼 가보지 못한 곳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이곳 또한 그 범주에 들어가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중명자연생태공원 들어가는 진입로에 있는 조형물과 주변이 아름답게 꾸며져있다.
중명자연생태공원내에 있는 조형물과 정원 모습.

한두 번 들른 적은 있지만 건성으로 지나친 탓도 있고 옥녀봉을 비롯한 생태공원을 감싸고 있는 산을 죄다 섭렵하지 못하여 작심하고 나섰는데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불안했다. 중명자연생태공원에서 옥녀봉을 거쳐 소형산으로 하산하는 종주 트레킹을 시도 할 생각으로 지인과 함께 소형산 아래 차 한 대를 두고 또 다른 차로 공원주차장까지 갔다.

공원내에 있는 돌탑이 정겹게 탐방객을 맞는다.
나들이나온 가족들이 기린 조형물에 탄 아이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생태공원은 여러 테마로 구분하여 시민들이 꽃과 숲을 체험하며 감상하고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특히 어린이들이 함께 자연을 즐기며 체험학습도 할 수 있는 정원과 꽃나무, 그리고 각종의 동물조형물과 시설들이 숲 속에 설치되어 가족나들이 하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과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중명자연생태공원 안내도.

‘코로나 블루’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에는 이런 녹지대와 꽃밭이 제격일 것 같아 보기가 좋다. 아직도 되찾지 못한 일상을 동경하며 조금이라도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시민들의 모습에 용기를 내어본다.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옥녀봉 오르는 들머리를 찾기 위해 서두르다 들머리를 착각하면서 엉뚱한 산행이 시작되었다. 오래전에 소형산에서 산행한 적은 있어도 생태공원 쪽에서 오르는 산행이 처음이라 헷갈렸다. 주능선을 겨냥하고 등산로도 아닌 가파른 산등성이를 힘겹게 오르다 보니 옥녀봉에서 소형산까지 이어지는 주능선의 중간 부분에 닿게 되었다. 한 번 다녀간 적이 있다는 지인도 갈피를 잡지 못한 것 같아 헛웃음이 나온다. 소형산 쪽으로 길머리를 잡아 키 큰 소나무와 굴참나무 등이 울창한 숲 속 산길을 걸어간다. 탐방로 방향을 알리는 표지목도 군데군데 서 있고 앉아서 쉴만한 벤치와 평상도 있어 산행이 어렵지 않다. 주능선이 포항시와 경주시의 경계임을 알리는 표지도 있고 포항시산악구조대에서 포항시 경계산행을 하면서 붙여 놓은 시경계표지판도 보인다. 소형산 쪽으로 가는 능선 우측 아래로 포항지역 시내가 멀리 보이고 좌측으로는 경주지역 공장지대가 조금씩 보인다.

한참이나 허덕거리며 급경사를 오른 탓도 있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대로 조용한 산속에서 허기진 배를 달래는 점심은 꿀맛같이 달달하다. 식후에 마시는 따끈한 커피 한잔 또한 그간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주고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발품을 판다.

형산강변에서 부조정(소형산)을 오르는 들머리에 있는 이정목

‘연일 부조정(소형산)1.4㎞’ 라는 표지가 나오는 곳에서 다시 산행을 정리해본다. 곧장 가면 소형산까지 갈 수는 있지만 오늘의 목적인 종주트레킹이 될 수 없을 것 같아 옥녀봉 쪽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이곳에서 옥녀봉까지는 3.5㎞ 정도 남은 거리에다 크게 업 다운이 없는 능선길이라 어렵지 않아 회귀하기로 하고 시원스런 숲 속을 휘적휘적 걷는다.

부조정 육각정자가 있었던 자리가 텅빈 공터로 남아있다.

산 아래서는 몸을 날려 보낼 듯 불던 바람도 숲 속에서는 조용하다. 숲이 연초록 향연을 벌리고 있는 사이로 햇빛에 반짝이는 잎사귀들이 춤을 춘다. 무성한 떡갈나무 사이로 가냘픈 연두색 잔가지들이 파란 하늘을 향해 보란 듯이 손짓하는 싱그러운 4월 산속의 자연풍경이 평화롭게 펼쳐진다. 굵은 굴참나무 세 가지가 신기하게 얽혀 이색적인 모양새를 자랑하는 산길을 걸으며 숲 속의 낭만에 빠져든다. 눈을 돌려 아파트단지가 보이는 포항 모습도 다시 보고 멀리 경주 무장산도 본다.

주능선에서 숲사이로 포항시내 모습이 보인다.

산행 초반에 올라온 주능선 중간지점을 지나 옥녀봉으로 곧장 간다. 야트막한 봉우리를 넘으니 경주 왕신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100m 전방에 ‘해넘이 전망대’가 있다고 안내한다. 가까운 곳에 경주 강동공단이 보이고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가며 굉음을 내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긴 나무의자 두 개가 놓여있는 ‘해넘이 전망대’가 서쪽을 향해 산객을 기다린다. 저녁노을이 지는 산마루를 상상하며 다시금 발길을 옮기니 탐방로 한 곁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율곡 이이 선생이 어린이 학습을 위해 지은 한문학습서 ‘격몽요결(擊蒙要訣)’에 대한 해설과 함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가슴 깊이 새길만 한 가르침이라고 알린다.

짙은 녹음이 깔린 산행로에 시경게 푯말이 붙어 있다.

탐방로 곳곳에 시(詩)와 명심보감 등 갖가지 명구(名句)를 적어 길손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기게 한 관계기관의 노력에 감사하고 싶어진다.

‘옥녀봉 0.9㎞’이라는 곳에서 운제산과 무장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고 녹색 숲 속에 핀 붉은 산철쭉 한그루가 유난히 활짝 웃으며 반긴다. 봉긋한 둔덕 위에 운동기구들이 텅 빈 공간에 우두커니 서 있고 가까이에는 옛날 연일 대감댁 머슴과 경주 양반댁 아씨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깃든 ‘농(籠)바위’가 나온다. 조금 지나 ‘옥녀봉’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과 함께 가파른 경사지를 오르면 산불감시소가 나온다. 여기가 옥녀봉(225m)정상이다.

외계에서 온듯한 이색적인 모습의 생태공원전망탑이 우뚝 서있다.

효성 지극한 옥녀와 마음씨 좋은 젊은 상인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이별의 한(限)이 서린 봉우리가 ‘옥녀봉’으로 불린다는 설명에 비록 전해오는 이야기지만 이곳 산등성이에는 유독 남녀 간의 러브스토리가 숨어 있는듯하여 가슴이 아려오는 것 같다. 옥녀봉에서의 일망무제 조망이 가슴을 탁 틔게 하고 연이어 나오는 ‘생태공원 전망탑’이 SF 영화에나 봄직 한 독특한 형태의 타워로 보는 눈을 압도한다.

포항시내와 포스코, 영일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선형 계단을 돌아 전망타워에 오르니 360도 사방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원형 전망대로 영일만과 포스코, 포항시내와 경주지역 산들이 한눈에 들어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전망타워를 지나 생태공원으로 가는 길에 세워진 ‘연일부조장(扶助場)’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에 눈길이 간다. 조선조 말기(1780년대~1905년)에 형산강 하류인 아래부조(현.연일읍 중명리) 너른 나루 일대에 생긴 장(場)이 조선 3대 시장이라 불릴 만큼 융성했다고 하는 ‘아래부조장’에 대한 설명이 이 지역 옛 역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공원 쪽 급경사를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생태관광자원 확보와 보전을 통한 생태학습장과 친환경 휴식공간으로 조성된 생태공원의 이곳저곳을 살피고 주차장에 도착하여 다시 부조정이 있는 소형산을 가기 위해 차를 타고 떠난다.

머슴과 양반댁 이씨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담긴 농바위 모습.

오전에 주차한 곳에 소형산으로 가는 계단이 나 있고 급경사지를 400m 가면 부조정이 나온다고 표시되어 있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달음에 오른다.

오래전에 다녀 간 적이 있는 부조정(扶助亭) 육각정자를 목표로 올랐지만 소형산 정상에 있어야 할 정자가 보이지 않는다. 눈을 의심하며 이곳저곳을 살펴보아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 빈 공터만 촬영하고 하산했다. 부조정은 이 일대의 산행코스(소형산) 핵심 포인트였는데 아무것도 없어 갑갑하기만 했다. 며칠 후 관리하는 부서에 확인해 보니 정자가 훼손되고 균열이 가서 2017년도에 해체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연유나 표식쯤은 남겨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서운한 감은 지울 수가 없지만 생태공원에서 옥녀봉을 거쳐 소형산으로 하산하는 종주트레킹을 위해 다섯 시간 정도를 산속에서 힐링 할 수 있어 상쾌한 하루였다. 우리지역 근교에 이렇게 멋진 코스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이번 ‘힐링 앤 트레킹’ 스물여덟 번째 ‘걸어서 자연 속으로’ 스토리를 끝맺음하고자 한다.

글·사진=김유복 경북산악연맹 前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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