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람 허기 달래던 향토음식 '국민별미' 자리매김로
긴 겨울 지나 봄부터 제철 별미로 제격
한치·넙치·오징어·우럭 등 재료 다양

경아횟집 물회. 백종훈 기자
경아횟집 물회. 백종훈 기자

식생활을 보면 그 지역의 진짜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다. 사람들의 입성(옷)과 의례는 꾸며낼 수 있지만 먹성(음식)은 자연스레 일상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식문화(食文化)’라 한다. 문화는 항상 역동적으로 변화하며 먹는 음식도 예외가 아니다. 시대가 급변하고, 지역 간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식문화도 그 지역만의 특색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에 쓰촨(四川)요리, 광둥(廣東)요리, 산둥(山東)요리 등의 지역 특성에 따른 요리들이 있듯이 우리나라에도 영남요리, 호남요리, 경기요리 등으로 어느 정도 대별할 수 있는 맛의 특징이 있다.

경북일보가 경북도와 함께 영남요리의 본령인 경북지역 맛의 정체성을 찾아 나선다. 전통음식에 대해 오래 연구해 온 박정남 전통음식 칼럼니스트(예미정 종가음식연구원장)가 ‘경북의 맛집’을 찾아 그 맛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 경북일보 지면과 영상으로 독자들에게 전한다. <편집자 주>

포항물회 상차림. 백종훈 기자

물회 하면 포항이다. 마치 청송사과가 그렇듯이 포항이란 지명과 물회라는 향토음식 이름이 더해져 ‘포항물회’는 보통명사가 된 지 오래됐다. 서울에서도 포항물회다. 대구에서도, 멀리 전라도 광주에서도, 가까운 예천에서도 물회 하면 포항물회다. 음식점 메뉴판에도 물회가 아니라 포항물회. 이미 전국화된 경북의 향토음식 중 하나로 꼽는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부터 포항물회가 기지개를 켜는 계절이다. 본격적인 시즌을 앞두고 전문 음식점마다 싱싱하고 좋은 재료 준비에 여념이 없다.

포항물회를 통하여 우리 향토음식의 식품영양학적 우수성과 문화관광 음식으로서의 가치를 짚어 보고 로컬푸드의 산업화 방향을 갸늠해 본다.

 

비빔회.
비빔회.

△식품 영양적으로 우수한 포항물회

포항물회는 생선회 재료와 조리방법 등에서 날로 진화하고 있다. 물회는 생선의 종류에 따라 수십 가지로 구사할 수 있다.

가자미, 한치, 넙치, 오징어, 우럭 등 대중적 생선에서부터 쥐치, 바지락, 멍게, 해삼, 전복, 문어 등 해산물에 이르기까지 재료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넙치나 참가자미의 살만 발라 채를 썬 뒤 다채로운 야채와 함께 시원한 육수에 말아내면 부드러운 넙치 물회와 고소한 가자미 물회가 되고, 생선 뼈와 살을 통으로 얇게 썰어 버무려 내고 물을 부어 말면 ‘새꼬시’ 물회가 된다, 씹히는 맛이 일품인 해삼과 전복을 함께 버무린 것은 고품격으로 특별한 맛을 자랑한다. 영덕 축산항 주변 횟집에서 맛볼 수 있는 꽁치물회도 별미다. 반건조하게 되면 과메기지만 등뼈를 발라내 얼려 놨다가 초고추장 푼 물에 말아내면 별미 꽁치물회가 된다. 울진 후포항 일부 횟집에서 귀한 단골손님에게만 맛보인다는 바지락 물회도 독특하다. 생바지락을 까서 참기름을 슬쩍 두른 바지락 속살 물회는 감칠맛이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다.

배, 오이, 양파, 실파 김 등 야채와 청양고추와 마늘 등 다양한 양념이 곁들여져 비타민 무기질 등 갖가지 영양소가 다양하게 보충된다. 깨소금과 참기름을 넣어 비벼 먹는 것이 포항물회의 전통방식의 모습이지만 비빔회에 물이나 청량음료를 살짝 넣고 밥이나 국수를 말면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맛의 기막힌 회국수로도 변신한다. 살짝 얼린 육수를 부어주면 갯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처럼 시원한 바다의 맛도 창출해 낼 수 있다.

싱싱한 생선에는 불포화 지방산인 EPA 및 DHA, 타우린 등의 기능성 성분들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성인병 예방은 물론 노인치매, 동맥경화, 심혈관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탁월한 음식이라는 것은 이미 입증되어 있어 설명이 필요 없다. 이외에도 단백질의 일종인 콜라겐도 풍부하여 피부 미용에 좋은 고단백 저칼로리의 우수한 다이어트 식품인 장점 등 포항물회의 식품영양학적 우수성은 어느 향토음식보다도 두루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20년 전통의 맛, 포항물회 경아횟집

포항물회를 물으면 누구나 쉽게 손가락으로 가르쳐 주는 곳이 있다. 바로 포항시 북구 영일대 북부시장 경아횟집(삼호로 47번 22-3)이다.

“물회 재료로는 자연산 도다리와 참가자미가 최고지요.” 횟감 손질에 바쁜 포항물회 20년 경력의 김외경 사장이 먼저 재료부터 자랑한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가자미를 도마에 올려놓고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껍질을 벗겨내는 솜씨가 능숙하다. 가느다란 회칼로 손질한 생선을 국수처럼 가늘게 채로 썰어낸다. 물회로 쓰는 재료는 모두 자연산 생선만 사용을 한다.

“자연산 참가자미와 도다리는 울릉도로 가는 여객선 터미널 옆에서 매일같이 고기잡이하는 어부들이 주낚시로 잡아 옵니다.”

김 사장은 수족관에 들어 있는 참가자미와 도다리를 가리키며 구분하는 방법을 간단하면서도 쉽게 가르쳐 준다. “모양과 색은 비슷하지만 쉽게 구분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지요. 보세요. 참가자미는 등 부분이 무지이고, 도다리는 얼룩무늬가 있잖아요?. 그리고 흰색의 배 부분을 자세히 보면 참가자미는 흰색이고 도다리는 꼬리 쪽 가장자리로 노란색의 띠를 나타내고 있지요.”

손님들에게 너무도 친절한 김 사장이다. 도다리는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이 뛰어나고, 참가자미는 뒷맛의 고소함이 있어서 이 미묘한 차이의 맛에도 손님마다 기호가 있어 제각각 찾는 게 다르다고 한다.
 

밑반찬으로 나온 오징어 내장 숙회.

먼저 물회 딸림 반찬으로 포항 시금치 무침과 와 바다 맛이 진하게 나는 생미역 무침과 함께 데친 오징어내장이 한 접시 차려진다. 물회 이전에 싱싱한 오징어 내장을 푸짐하게 미리 맛본다는 자체가 이곳이 인심 넉넉한 동해바닷가 포항임을 느끼게 해 준다. 우윳빛 내장은 오징어 숙회와는 확연하게 다른 맛이다. 앞으론 몸통과 내장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언제나 내장을 선택할 것 같다. 촉촉하면서도 부드럽고 거기에 오징어 특유의 진한 맛이 고스란히 진하게 배어 있다고나 할까.

기다리는 동안 오징어 내장 한 접시를 싹 비워 놓으니 드디어 물회가 나온다.

“보통 가자미나 도다리는 300g짜리 한 마리 정도가 1인분의 물회 재료가 되지요. 물회 한 그릇이면 가자미나 도다리 한 마리를 다 먹는 셈이 된답니다.”

그릇 한 켠에 뽀얀 속살의 도다리와 가자미를 채로 썬 회가 푸짐하게 놓여 있고, 얄팍하게 썰어 낸 오이와 배 그리고 다진 마늘을 더한 다음 깨소금에다 참기름까지 드레싱 되어 있다. 보기에도 군침이 돈다.
 

도다리.

△포항물회 도시락, 버스 택배로 전국 배달도

포항물회는 얼핏 보기에 거의 비슷한 형태이지만 회를 비비거나 말았을 때 곁들이는 양념고추장은 집집마다 제각각인 게 특징이다.

이 집의 특징은 양념고추장은 마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고추장 맛이 일품이다. 김 사장은 “고추장에 마늘 양념을 미리 하면 고추장 맛이 변하게 되기 때문”이라며 “그저 순고추장 그대로인 듯하지만 몇 가지의 비법 소스 재료가 들어간다”고 귀띔만 해주고서 ‘며느리도 가르쳐 주지 않는’ 비밀이라며 고추장 소스 비결을 묻는 말엔 미소로 답을 대신한다. 다진 마늘은 물회를 그릇에 담을 때 비로소 야채와 함께 곁들여 낸다고 한다.

먼저 얼음물을 붓지 않고 야채와 비벼서 회 맛을 보았는데 비린내가 전혀 없고 쫀득한 맛이 입안에 착 감긴다. 이 ‘비빔회’는 이 집 포항물회를 먹기 전 밥을 넣고 비빈 다음 고추장 맛보기 과정. 곁들여 나오는 매운탕도 고추장 덕분일까 칼칼한 맛에 입안이 개운하다

육수는 그냥 맑은 생수병을 건넨다. 비빈 횟밥에 생수를 부어도 역시나 엄지 척. 놀랍다. 금방 달작하면서도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 생수에 우러나온다. 물을 붓나 붓지 않나 달라지지 않는 맛의 비법은 아마도 양념 고추장에 숨어 있는 듯했다. 육수가 아닌 생수 그대로를 부었을 뿐인데도 마법에 걸린 듯 연신 국물을 떠먹게 된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시원하다. 전통 향토음식 포항물회의 제대로 된 원형을 바로 여기서 만났다.

김 사장은 “일반적으로 살얼음이 동동 떠 있는 육수를 부어 만드는 방식은 옛날 원형을 기반으로 요즘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게 개발된 퓨전형 물회”라고 부연설명을 했다.

경아횟집 포항물회는 포장도시락도 개발해 시외 노선버스를 통하여 전국 어디든지 당일 버스 택배로 보내준다. 자동차로 10분 거리면 영일대해수욕장과 동해 바닷가를 즐길 수 있고,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삼국유사에 나오는 몇 안 되는 천년고찰 오어사와 보경사가 자리하고 있어 우거진 해송 숲길을 걷는 체험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포항 앞바다 근해에 어장이 형성되면 새벽같이 어구를 정리해 놓은 어부들은 아침밥을 먹을 새도 없이 어장을 찾아가기 바쁘다. 뱃전에서 한 사발 후루룩 마시듯 먹고 배를 타고 앞다퉈 바다로 나갔다. 가자미와 오징어 등 생선회를 즉석에서 썰어다 야채와 함께 고추장에 비벼 놓고 시원한 물을 부어서 먹는 포항물회는 고기잡이에 바쁜 동해 어부들이 여름철 무더위와 출출함을 달래기 위하여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strong>박정남</strong> 전통음식칼럼니스트<br>예미정종가음식연구원장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예미정종가음식연구원장

힘든 어로작업으로 생선을 잡아 올려 지역 경제의 기초를 쌓고, 포항물회라는 기막힌 향토 특산음식까지 만들어 낸 주역이 바로 포항 어부들이다.

어부들의 음식이었던 포항물회는 이제는 사시사철 관광음식이 됐다. 날씨가 따뜻한 봄이 되면 전국 어느 횟집에서도 다 내놓는 특선 메뉴이기도 하다. 굳이 음식 유형으로 분류한다면 ‘생선냉국’이라고도 구분 지어 볼 수 있는 포항물회는 이제 포항의 명품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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