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췻빛 빛깔·매끄러운 식감 탄성 절로…군침 도는 70년 전통의 맛

청포묵밥 한상차림
청포묵밥 한상차림. 백종훈 기자

녹두로 만든 청포묵에 담긴 스토리는 동학혁명 녹두장군의 애달픈 이야기다.

전봉준은 키가 작은 데다 상체와 하체의 굵기가 거의 비슷해 녹두처럼 야무지게 생겼다고 해서 녹두장군이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1894년 농민군을 이끌고 썩은 조정과 일본군에 맞서 싸워 한때 진주성을 점령하고 집강소를 통해 낡은 정치를 개혁하기도 했으나 높은 사기에도 불구하고 공주 우금치에서 그만 대패했다. 당시 제국주의자들이 다 그랬듯이 원주민들의 돌격전을 허물어뜨린 기관총, 게틀링건에 의해 절멸의 길을 걸어야 했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던 농민들의 꿈은 일본군에 의해 짓밟히고 결국 녹두장군 전봉준도 포로가 돼 목이 베이고 만다 .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민초들이 이 안타까운 전쟁을 파랑새 노래에 담아 부르면서 좋은 세상이 오기를 꿈꿨다고 하니 청포묵은 바라만 봐도 가슴이 아리다.

청포묵에 스며있는 이야기는 또 있다. 왕을 위한 수라간의 탕평채도 음식 이야기가 흥미롭다.

조선 영조 때 남인 북인 노론소론 사색당파 싸움이 극심하자 왕은 탕평책을 썼다. ‘왕은 인재를 가깝다고 쓰고, 멀다고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재등용 원칙에서 나온 그때 음식이 바로 궁중음식인 탕평채다.

검은색의 김 가루는 북인, 푸른색 미나리는 동인, 붉은색 소고기는 남인, 음식의 주재료인 청포는 서인을 상징했다.

청포묵 만드는 모습.
청포묵 만드는 모습. 백종훈 기자

△청포는 예로부터 기력 회복과 천연해독제로 쓰여

먼저 녹두와 청포묵의 음식으로서의 가치와 외식 산업적 장점을 따져 본다면, 청포묵은 여타 웰빙형 전통음식과 마찬가지로 만들기 시작해 먹을 때까지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드는 대표적인 슬로우푸드. 특히 청포묵의 원료가 되는 녹두는 체내에 쌓인 독소를 배출시켜 주고 고혈압과 당뇨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청포묵 또한 소화가 잘되고 기력회복에 이로운 건강식품으로 예로부터 궁중과 민가에서 오랫동안 천연 해독제로 쓰일 만큼 그 효과는 식용이라기보다 약용에 가까울 만큼 크다.

이처럼 몸에 좋은 청포묵은 비취색이 풍겨 나는 독특한 빛깔이 장점으로 전통음식뿐만 아니라 퓨전 한식 상차림에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가 있어서 한식 세계화 소재로도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녹두를 이용한 우리 전통음식은 우리나라 옛 고조리서에서도 다양하게 기록돼 져 있다. 1670년대 여중군자 장계향 선생의 저서인 ‘음식디미방’에도 조리 방식이 기록되어 전해질 만큼 녹두가 지니고 있는 식품으로서의 가치는 예나 지금이나 높게 평가되고 있다.

예전에는 채 썬 청포 가닥을 놋젓가락으로 집어 미끄러운 참기름 간장에 찍은 후 흘리지 않고 입에 가져가도록 시켜 선비의 몸가짐이 어떠한지 알아보는 ‘인재선발용 면접 음식’으로도 쓰였다니 품격 높은 전통 음식임에 틀림없다.

탕평채
탕평채. 백종훈 기자

△전통 그대로 전국을 달리는 예천 청포묵집

청명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투명한 옥색 빛깔이 감도는 청포는 녹두를 곱게 갈아서 가마솥에다 오래 끓여서 만든 묵이다. 맛도 맛이지만 비췻빛의 고운 빛깔과 입안에서 느껴지는 매끄러운 식감은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70년 전 시어머니 이필선씨가 청포묵 장사를 시작하던 방식 그대로 고집스레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우리 전통음식의 대를 이어 오고 있는 청포묵집이 있다. 바로 예천군 맛고을길 30번지에 자리한 예천 청포묵집(대표 양종례·58)이다. 이 집은 경북에서도 오지로 손꼽히는 예천군에 자리잡고 있지만 웬만한 미식가들이면 다 아는, 오래전에 전국적으로 소문난 노포이다.

생녹두를 물에 불려 기피를 하고 곱게 갈아 전통방식 그대로 한모의 청포묵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무려 6번에 걸쳐 녹두 전분을 걸러 내야 하는 긴 시간과 고된 일손이 따라 줘야 한다.

청포집 양종례 사장은 매일 오후 녹두를 불리는 것을 시작으로 다음날 장사를 준비한다.

청포집에서 내놓는 청포음식은 갖가지 야채와 함께 한상차림으로 내는 청포묵밥과 단품으로 내는 푸짐한 탕평채 두 가지이다. 청포묵밥은 밥과 함께 국수처럼 가늘게 채를 쳐놓은 청포묵과 함께 당근, 미나리, 계란지단과 숙주나물, 김 가루로 오색고명을 얹은 청포정식은 참기름 양념간장을 뿌리고 그냥 젓가락으로 살살 저어 주기만 해도 바로 먹음직스럽게 비벼진다.

재료가 떨어지면 한낮이라도 식당 문을 닫는 것은 물론이다.

청포묵밥 한상차림
청포묵밥 한상차림. 백종훈 기자

△대표적인 슬로우 푸드 청포묵, 애쓴 만큼 손님 호응 보람도

“음식 배우느라 시어머니한테 매일같이 혼났지요. 그렇게 배웠는데도 청포묵 쑤는 것은 아직도 어려워요. 열심히 배운 대로하고 있지만 시어머니 솜씨만큼은 안되는 것 같아요. 시어머님 손맛을 재현해 낼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 많이 배우고 더욱 노력할 참입니다”

양종례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탕평채도 맛보라며 한 접시 푸짐하게 내어 온다. 탕평채의 모습은 묵밥의 소박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화려함이 돋보이는 모습이다.

반들반들하게 윤기가 도는 채 썬 청포묵 옆으로 여섯 가지 고명의 야채와 지단이 올려진 모습이다. 야채와 함께 어우러진 맛은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오묘하게 부드럽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옛날 임금과 조정 대신들이 함께 먹은 음식이니. 함께 나오는 반찬도 각양각색이다. 곁들여 내는 맑은 무탕국의 맛도 일품이다.

“무탕국은 고기를 넣지 않고 무를 참기름에 달달 볶아 두부와 다시마를 넣어 오로지 소금 외엔 아무것도 넣지 않아요. 그래서 비법이 없는데도 손님들이 아주 좋아하시네요. 참기름에 무를 오래오래 천천히 볶은 다음에 끓여 내는 거밖엔 없는 데도 말이죠(웃음)”

곁들여진 녹두빈대떡에는 부추를 잘게 썰어 넣어 노릇하게 구워 내어져서 고소하고 맛깔스럽기 그지없다. 막걸리 한잔이 저절로 생각난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예미정종가음식연구원장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예미정종가음식연구원장

 

직접 염장을 해서 사용한다는 조기구이와 여러 다양한 반찬이 곁들여 지지만 청포묵밥과 무탕국 한 그릇만으로도 건강한 음식을 먹은 듯한 만족감에 젖어든다.

“청포묵은 한 번에 많이 만들어 쓸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그때그때 만들어서 내는 신선식품이기에 매일 같이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묵을 쑬 때도 잠시라도 주걱으로 저어 주는 것을 멈추어도 바로 눌어 버리고 화근내가 나서 먹을 수가 없게 되지요.”

양종례 사장은 힘들고 공이 들어가는 음식이지만 전통음식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청포묵 쑤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공들여 녹두를 갈고 애들여 청포묵을 쑤는 양 사장의 하루 수고에 마치 호응이라도 하듯이 예천 청포집에는 오늘도 인근 시, 군 미식가들은 물론 전국에서 식도락 손님들이 끊임없이 찾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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