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오랜 논란 끝에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국민 재난지원금 규모와 범위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소득 하위 88%까지 1인당 25만원을 지급한다는 방안에 만족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혹자는 정부가 푼돈을 퍼준다 하고 혹자는 “세금 많이 낸 것이 죄냐”고 한다.

이 와중에 대권주자 이재명 지사가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해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나름대로 전략이 있겠으나, 굳이 그 공약을 지금 발표했어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 논란이 겹쳐 본질과는 무관한 말들만 무성하게 나돈다. 그러나 이 두 제도 모두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기획하는 숙고의 계기로 삼을만한 화두다.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은 이미 낸 세금을 돌려받는 것임을 기억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사실 세금 돌려받기는 늘 일어나는 일이다. 국가는 도로도 만들고 공무원 월급도 주고 학교도 짓고 비싼 무기도 사서 걷은 세금을 돌려준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지출이 공평한지 묻지 않는다. 도로를 많이 사용하지 않고 동사무소에 자주 들르지도 않으며 아이가 없어 초중등 교육 시스템이 필요 없는 사람도 많지만 세금은 그냥 소득에 따라 낸다. 그러니까 재난지원금의 공평 논의는 핵심을 벗어나는 작은 문제다.

오히려 물어야 할 것은 과연 세금을 공평하게 걷고 있는지 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국민의 도움으로 성장하고서도 재벌 가족의 세금을 줄이려고 편법을 쓴다. 세금을 덜 내려고 권력에 뇌물을 주다가 벌을 받으면 사면을 요구한다. 외국과 비교해서 법인세율이 높다며 언론을 호도하지만, 값싼 전기료를 포함해서 국민이 대신 지불하는 각종 혜택은 계산에서 살짝 제외한다. 대기업뿐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탈세를 위해 “현금으로 지불하면 10%를 깎아주겠다”고 한다. 이런 범법이 재난지원금의 불공정보다 큰 문제다.

재난지원금에 대한 찬반 논란도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재난지원금은 갑자기 수입이 줄어든 국민들에게 그들이 낸 세금을 돌려주어서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또 현금이 시장에 돌게 해서 경기를 살리는 선순환을 기대한다. 이 일을 정부의 선심 쓰기로 보거나 “잘 사는 사람을 왜 도와주냐”는 식의 논쟁으로 가져가는 것은 비생산적이다. 이 모든 결정은 철저하게 경제적, 사회적 이익의 계산에서 나와야 하는데 여야 할 것 없이 왜 80%가 아닌 88%가 더 나은지, 혹은 이 제도가 왜 비효율적인지는 말하지 않고 음모론만 판친다.

기본소득을 말할 때는 왜 필요한지를 명확히 말했으면 좋겠다. 한시적 재난지원금과 달리 기본소득은 변화된 시장 상황 때문에 제안되는 상시적 제도다. 기술발전으로 임금과 기술격차가 커지고, 상품이 아닌 서비스에 기반한 수익 창출이 늘면서 누가 생산에 기여했는지가 불분명해졌다. 예를 들어 대중이 생산하는 데이터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통해 막대한 이윤으로 이어지는데, 그 이익은 소수가 독점한다. 이런 식으로 어 양극화가 심해지면 결국 승자까지 망하기 때문에, 시장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그 이익의 일부를 시민에게 돌리자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이것은 퍼주기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재분배다.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이재명 지사는 증세 없는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그렇게 해서는 재난지원금을 상시적으로 주자는 뜬금없는 제안처럼 들려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세금을 운용하는 세력이건 운용하는 방법이건 마음에 안 들면 바꾸면 된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맥락과 근거를 가지고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허탄한 기대와 막연한 반대 속에 내가 내고 내가 누려야 할 세금이 공돈 취급을 받고 있으니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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