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한 돼지막창 순대, 비주얼과 쫄깃한 식감에 두 번 반한다

예천 용궁순대

순대의 기원은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이 대륙 정복 시 짐승의 창자에 쌀과 채소를 혼합해 넣고 말린 후 전투식량으로 이용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기록은 6세기경 중국의 ‘제민요술’이라는 책에 양의 창자를 이용한 순대와 유사한 음식의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이미 순대를 만들어 먹은 것으로 추정되나, 주로 북쪽 지방에서 지방을 섭취하고 추위에 견디는 음식으로 많이 먹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들어서면서 순대의 기록은 다양하게 전해진다. ‘규곤시의방’ ‘음식디미방’에는 개를 이용한 순대가 기록돼 있다. ‘규합총서’와 ‘증보산림경제’에는 쇠고기 창자를 이용해 꿩고기, 닭고기, 쇠고기 순대 요리법이 수록돼 있다. 또 ‘시의전서’에는 민어의 부레를 이용한 어순대와 오늘날과 같은 돼지순대 제조법이 전해온다.

각 지역별 유명한 순대는 이북출신 실향민들이 고향음식을 그리며 만든 ‘아바이순대’ 서울의 신림동 ‘당면순대’ 인천 계산동의 옛 지명을 딴 ‘백암순대’ 유관순의 고향인 아우내 장터의 ‘병천순대’ 제주 전통순대인 ‘수애’가 있다.
 

연탄 석쇠오징어구

△순대보다 연탄 석쇠오징어구이라니!

예천군 용궁면 면 소재지에는 특별한 순댓국밥집들이 있다. 조그마한 면 소재지 내에는 다른 음식점은 눈에 띄지 않고 순댓국밥집 간판만 내걸려 있다. 현지인의 안내에 따라 찾아간 곳은 ‘용궁순대집’.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곳이다.

용궁순대집은 1970년 ‘단골식당’이라는 간판으로 용궁장터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던 1대 용궁순대의 원조인 김대순(작고)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가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시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받은 며느리 김미정(52) 아들 박재길씨(54) 부부는 어머니가 하던 방식 그대로 이어받았다. 대를 이은 업력은 반세기 50년이다. 돼지막창을 이용한 순대찜과 머리 고기와 대창순대를 넣어 만드는 순대국밥, 그리고 매콤한 오징어 양념석쇠구이가 이곳 용궁순대집의 메뉴 전부다.

 

예천 용궁순대 - 연탄
예천 용궁순대 - 연탄

 

순대국밥 집에서 오징어 석쇠구이 자랑이 먼저다.

연탄불에 구워내는 오징어 양념석쇠구이는 시어머니한테서 보고 배운 그 옛날 그 방식 그대로라고 한다. 연탄불을 피워내 빨갛게 달아올랐을 때 강한 불로 석쇠에 구워낸다. 본토박이들에게는 순대음식 보다도 이 오징어 양념석쇠구이에 대한 매니아들이 더 많을 정도다.

“석쇠구이 오징어 양념에는 별반 들어가는 양념이 없어요. 비법이라면 아무래도 연탄에서 만들어지는 불맛이 아닐까 싶은데요.”

오징어 한 마리와 대파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어 준 다음 여기에 간장, 설탕, 다진마늘에 고추기름을 넣어 1차 팬에서 먼저 오징어가 살짝 익을 정도로 애벌 볶아 낸다. 그런 다음 고운 고춧가루를 넣어 버무린 후 석쇠에 올려 앞뒤 불맛을 입혀 주는 게 전부다. 옆에서 지켜보아도 별반 들어가는 게 없는데 익은 오징어 한점을 입에 넣어 보면 맛이 기막히다. 소주 생각이 절로 난다. 역시 연탄의 불맛이 마지막 양념인가 보다.

예천 용궁순대 한상차림

△예천 용궁 ‘순대’ 원조 ‘대순’ 할머니 이야기

“저희 시어머니 함자를 거꾸로 불러 보면 순대예요. 너무 신기하죠?”

오징어 양념석쇠구이 또한 용궁순대 1대 원조인 박 대표의 시어머니인 김대순 할머니가 순대국밥 부메뉴로 만들어 낸 추억의 예천 향토음식이다. 용궁면 작은 시골 마을의 독특한 음식문화와 막창순대의 역사를 만든 장본인은 어떤 분이였을까 무척 궁금해진다.

“시어머니는 평생 묵묵히 일만 하시는 푸근한 분이셨죠. 9남매의 생계를 위해 시어머니는 젊을 때부터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경북에서도 오지인 북부지방은 그 옛날 어느 누구도 막론하고 살기가 힘들었다. 예천에서도 조그마한 면 단위 용궁면 소재지에서 순대국밥으로 전국화를 이뤄낼 정도면 얼마나 노력했기에 가능했을까.

“제가 시집을 와서 어머니 밑에서 순대요리와 오징어요리를 배우고 거들어 드릴 때도 힘든 일은 어머니가 도맡아 하셨죠. 평생 일만 하시다가 돌아가셔서 생각만 하면 가슴이 저릴 때가 많습니다.”

오징어는 시어머니 때부터 선동 오징어를 꼭 사용한다고 한다. 선동오징어란 먼바다에서 잡힌 오징어를 배에서 바로 급랭을 시켜 저장하고 유통하는 오징어를 말한다. 여타 오징어보다 선도가 좋을 뿐 아니라 살이 통통하면서도 육질이 탄탄하고 쫄깃해서 씹히는 식감이 아주 좋아 요즘 세프들도 즐겨 쓴다.
 

예천 용궁순대에서 식사하는 모습.

△50년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 ‘예천 용궁순대’


순댓국 한 그릇이 뚝배기에 보글보글 차려지고 그 유명한 용궁순대도 굵직하게 썰어져 담긴 접시엔 김이 무럭무럭 오른다.

순대국밥에 간을 하기 위해 새우젓을 넣고 저어 보는데 숟가락 젓기가 버거울 정도로 순대 건더기가 넉넉하다. 사골 뼈로만 진하게 우려 사용한다는 순대국밥 국물도 뽀얗고 진하고 깔끔하다.

순댓국에 들어가는 순대는 작은창자를 쓰고, 순대찜은 막창을 쓴다고 설명한다.
 

예천 용궁순대

찜에 막창을 쓰는 이유는 소창 보다도 두껍지만 찜을 하면 더 부드럽고 쫄깃하다고 한다. 그동안 순대에 대한 선입견을 달리하게 한다. 눈으로 보는 비주얼부터 우리가 흔히 보는 시장이나 분식집의 순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순대 속은 찹쌀과 선지를 비롯해 대파가 가장 많이 들어간다. 소창에 비해 막창은 가격이 두 배 이상 차이가 나지만 도톰하고 쫄깃해 순대의 씹히는 식감을 위해 애써 막창 사용을 고집하고 있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예미정종가음식연구원장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예미정종가음식연구원장

“지금은 오신 손님들께 원하면 포장으로만 대부분 팔고 있지만, 앞으로는 즉석식품 제조 허가를 받아서 소비자와 생산자의 거래로 온라인 사업도 해보고 싶어요. 더 나아 갈 수 있다면 여러 쇼핑몰에도 판매할 수 있는 온라인 유통사업도 계획해 보고 있습니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열심이다. 여타 자영업자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이지만 의욕이 대단하다. 순수한 시장사람들의 손맛을 기초로 하여 전국화에 이어 특산화 까지 이뤄낸 예천 용궁순대는 이웃한 안동시 구시장의 안동찜닭처럼 전국 포장상품 개발 여지가 충분하고도 남는다 .

아무리 악조건이라도 스스로 헤쳐나가야만 하는 시장사람들. 그들의 야생초 근성이 낳은 향토음식 생명력은 무한하다. 특히 맛을 바탕으로 할 때 그돌이 자생적으로 탄생시킨 음식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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