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송이 향 그대로 머금은 특별한 한 상

송이돌솥밥 한상차림.

경북 최북단에 위치한 봉화군은 서울시의 두 배나 되는 광활한 면적(1201㎢)에 83%가 임야다. 특히 청정 자연환경이 그대로 잘 보존된 소나무 원시림이 많아서 특산물인 산송이로 유명하다. 그래서 매년 송이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수십 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 숲 아래 고고하게 돋아나는 송이는 경북 도내 영덕과 울진, 영양, 청송, 의성, 봉화, 문경 등지에서 많이 나지만 봉화산 송이를 으뜸으로 친다. 태백산 자락의 물 빠짐이 좋은 마사토(磨沙土) 솔숲에서 자라 육질이 단단하고 유독 향이 진하기 때문이다.

산 좋고 물 맑은 곳 천혜의 자연이 그대로 보존 되어 있는 청정지역 봉화의 향토음식은 당연히 송이음식이다. 천혜의 자연이 품었다 내어주는 식재료로 만들어 내는 산송이 음식이기에 봉화의 자연을 그대로 빼닮아 있는 듯하다.
 

송이음식전문가 구윤임씨가 송이전을 들고 있다.

△송이돌솥밥 전문 봉화 인하원

봉화에는 송이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많이 있지만, 그중 1년 내내 송이돌솥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을 들라치면 곧장 봉화읍에 자리한 ‘인하원’을 꼽는다.

2011년 문을 연 인하원은 봉화 송이돌솥밥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배효진(57)·구윤임(56·송이요리 전문가)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이곳은 봉화군이 지정한 향토음식 전문점이며 모범음식점으로 가을 송이 채취 때의 산송이 맛과 향 그대로 사철 손님상에 송이돌솥밥을 내는 곳으로 전국에 유명하다.

가을 송이는 향으로 먹기에 갓 채취했을 때 생송이를 쭉쭉 찢어 먹거나 구워 먹어야 그 향과 송이의 참맛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제철이 아니어도 맛과 형태를 그대로 유지 할 수 있는 방법은 이 부부가 처음 고안해 냈다. 영하 50도에서 급냉 보관기술이다. 이 때문에 겨울, 여름 가릴 것 없이 송이밥을 낼 수가 있고, 연중 전국의 미식가들을 유혹할 수가 있게 됐다. 봉화 송이의 우수성을 더욱 홍보하는 계기도 됐다.

봉화군이 공식 지정한 송이요리 전문점 인하원은 사계절 언제라도 마치 소나무 한그루를 응축해 놓은 듯한 봉화 산송이의 진한 향을 느끼고 그 깊은 맛을 마음껏 체험해 볼 수 있다.
 

송이전.

송이를 대중적 음식메뉴로 재탄생시킨 인하원의 배효진·구윤임 주인 부부가 개발한 주메뉴는 송이돌솥밥과 송이전골, 송이전과 특미인 능이돌솥밥과 능이전골 다섯 가지이다. 버섯을 이용한 주메뉴에다 향토 식재료로 만든 다양한 반찬으로 구성된 한상차림이다.

“가장 많이 찾는 메뉴는 송이돌솥밥과 송이전골이에요. 한번 드셔 보셔요.”

구윤임 대표가 자신 있게 추천한 음식을 주문하자 곧바로 밑반찬부터 차려진다.

“저희집은 버섯 이외에는 돈 주고 사는 게 하나도 없답니다. 모두 밭에서 무농약으로 농사를 지은 채소들이지요.” 팔기 위해 농사짓는 게 아니어서 식당에 쓰고 남는 채소는 손님들이 그냥 가져가라고 봉지에 담아서 입구 쪽 문에다 걸어 둔다. 주인 부부의 정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반찬 용기가 꽉 찰 만큼 푸짐하게 담겨 나오는 16가지의 다양한 나물 종류에 함께 봉화 송이밥 맛 탐방에 나선 지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채를 썰어 볶아낸 박나물 그리고 노각나물, 머위 볶음, 가지나물, 참비름나물, 양배추볶음. 한국인이면 누구나 엄마의 향수가 느껴지는 시골 반찬들이다. 그리고 누가 봐도 경상도 표준밥상 그대로다. 송이와 마찬가지로 여름 박이 제철일 때 채를 썰어 급랭하여 다시 볶아내면 제철 박나물 맛이 똑같다고 한다. 그래서 ‘인하원’ 에 박나물은 굳이 오가리를 만들어 묵나물로 쓰지 않고 생나물처럼 사계절 쓴다고 한다. 어느새 큼지막하게 부쳐낸 송이전이 반찬 사이 메인 자리에 놓여 진다. 송이는 어느 음식에 접목시켜도 그 품격을 달리한다 .

일반 전과 똑같은 부추전 반죽에 고명처럼 송이를 둘러 얹기만 했는데도 그 품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송이밥.

△정성을 다해 송이향 그대로 상차림

이어 본식인 송이돌솥밥과 송이전골이 상차림 됐다. 돌솥밥의 뚜껑을 열어 보는 순간 따뜻한 밥김과 함께 박하향을 닮은 싸한 특유의 송이 향이 솔솔 배어 나온다. 얇게 저민 송이로 돌솥밥의 표면을 빈틈없이 채운 모양새는 정갈하기 그지없다.

“밥과 송이는 그릇에 옮겨 담아서 나물과 섞어 비빔밥을 만들어 드시고, 송이 향이 밴 돌솥에 누룽지는 물을 부어 숭늉으로 즐겨 보셔요.” 먹는 방법은 일반 돌솥밥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품격과 격조는 현격하다.

송이가 얹어진 밥은 서리태와 노란 병아리콩이 섞여 들어간 영양밥이다. 송이 향이 물씬 나는 밥을 옮겨 담으면서 행복감이 느껴진다. 손님에게 정성을 다하는 구 대표의 얼굴을 다시금 쳐다보게 된다. 그녀도 웃고 나도 웃는다. 고객 감동이 이런 거구나를 밥상으로 느껴본다. 송이돌솥밥을 받아들고 이렇게 감동이 올 줄이야.
 

송이전골.

송이전골 역시 다른 재료가 보이지 않을 만큼 냄비 가득 송이가 올려져 있다. 송이 향이야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국화꽃이 핀 듯 3단의 송이로 둥글게 담아져 있는 모습이 마치 밥상에 꽃을 한 아름 갖다 놓은 듯 환하다.

“송이는 끓이면 향이 달아나기 때문에 밥을 할 때도 뜸이 끝나고 밥 위에 얹고 전골 역시 끓인 전골 위에 돌려 담아냅니다.” 최대한 송이 향을 손님 밥상 위로 옮겨주는 조리 정성 엿보이는 대목이다.

“급랭이 되었던 송이는 찬물에 담가 해동을 합니다. 그리고 찬물에 해동되면서 나오는 송이 육즙은 전부 육수를 쓰고 차로도 끓여 내고 있어요.” 자칫 송이 향이 가려지기 때문에 전골 육수도 송이 육즙을 그대로 쓴다. 역시나 송이의 그윽한 향이 가득한 송이전골. 박나물과 소고기를 넣어 맑은 탕으로 끓인 후 송이가 올려져 환상적인 맛을 자아낸다.


산골 봉화의 시골밥상에서 송이돌솥밥 한상차림이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것은 송이가 귀한 식재료 때문인 건 아닌 듯했다. 송이가 한식 최고의 품격을 창출해 낼 수 있는 특급 식자재임은 분명하지만 송이요리 전문가 구윤임 대표의 능란한 조리기술에서, 또 정성을 다해 손님에게 다가서는 그녀의 모습에서 완벽한 우리 음식 한상차림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인하원에서 식사하는 모습.

△아기송이 식재료화로 송이돌솥밥 완성

송이돌솥밥은 2만 원, 송이전골은 2인분에 1만8000원. 대도시 돌솥밥 메뉴와 비슷한 수준이다. kg당 평균 20만 원을 호가하는 송이 산지가격에도 이 같은 음식값이 가능한 것은 ‘고라’라고 불리는 아기송이(길이 6㎝ 미만)를 요리에 재료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향도 좋고 맛도 뛰어나고 식감도 부드럽다. ‘생장정지품’이라서 크기가 작아 ‘등외’로 분류돼 값이 싸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예미정종가음식연구원장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예미정종가음식연구원장

작은 걸 오히려 조리에 장점으로 활용했다. 송이 모양 그대로를 음식 코디에 적용할 수 있기에 송이요리 식재료로서는 안성맞춤이라는 것. 인하원 부부의 기발한 착상이다. 송이 수매 시장의 틈새를 정확하게 파악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송이철이 되면 남편 배효진씨는 아기송이 구입에 누구보다 바쁘다. 대량으로 수집해 급랭한 후 일 년간 쓸 재료를 비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 배효진씨는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매일 아침 인하원의 큰 마당을 쓸고 풋고추 애호박 가지 등 농작물을 거둬들여 아내에게 건네준다. 그러곤 음식점 주변의 정원관리 등 온종일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한다. 그 아내 구윤임씨는 타고 난 손맛과 몸에 밴 정성으로 주방에서 손님맞이 음식을 열심히 만든다. 봉화 송이돌솥밥 전문 인하원의 하루다.

필자는 오늘 자연과 함께 평온하게 살아가는 전원식당 주인 부부의 잔잔한 미소에서 우리 음식의 질이 완성되고 격이 살아난다는 진리를 또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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