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산나물 가득, 한상만큼 푸짐한 한 그릇 입으로 눈으로 두 번 즐긴다

산채비빔밥B코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문경새재.

백두대간의 주변 산세는 깊고 높아서 고개마다 주막집들이 자리해 길손 선비들의 여독과 허기를 달래주는 곳이다. 다양하고도 귀한 버섯과 산나물들이 자생하고 있는 깊은 산 속은 새재 주막집들의 식재료 천연창고가 되었다.

500여 년 전 조선 태종 14년(1414)에 개통된 관도 문경새재길은 추풍령, 죽령과 함께 한양으로 연결된 3대 영남대로 중 가장 유명한 옛길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초점(草岾)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으로 기록돼 있는 이 새재는 그 옛날 재를 넘어 한양에 이르는 기간이 보름이 채 되지 않는 열나흘 길로, 가장 빠른 길이기도 했다.

‘추풍령은 가을 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럽기에 그리로 한양을 가면 낙방 거사가 되기 십상’이라는 이 속설 아닌 속설은 문경새재 주모들이 교묘히 만들어 낸 이야기다. 추풍령과 죽령 주막들과 경쟁해 길손을 유치하고자 하는 조령 주모들의 노련한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놀란 영남 선비들은 그때부터 죽자살자 새재길을 유독 고집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 우스갯소리에는 지금도 무릎을 치게 하는 대목이 숨어 있다. 문경새재에서 문경 산채비빔밥이 조선 초기부터 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토록 오랫동안 유명세를 이어온 까닭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경 산채비빔밥 전문점 모심정

△깊은 산속 봉생마을 전통음식체험관 모심정

이만하면 문경새재를 찾아온 누구든지 맛난 산나물로 꾸민 상차림을 맞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또 과거길 옛 선비처럼 당시 주막을 체험하고 싶어진다. 문경 향토음식 체험과 함께 문경의 자연을 담아내는 산촌밥상을 접할 수 있는 곳은 어딜까. 바로 모심정(문경시 마성면 봉생1길 13)이라는 문경의 대표 맛집이다. 이곳은 문경 IC에서 4분 거리, 그리고 문경 시내에서는 10분 정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낙동강 지류인 문경 영강 강변도로를 달리다 보면 깊은 산속 작은 마을 봉생마을이 눈 안에 들어온다. 작고 아늑한 동네 어귀에 곧바로 모심정이란 간판이 보인다. 외관은 전통한옥 모습이나 내부는 현대적 인테리어 감각을 접목, 모던한 분위기로 꾸며 놨다. 한꺼번에 250명이 자리할 만큼 널찍한 공간에 들어서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전통발효식품연구가인 정희복(58) 대표가 운영하는 문경전통음식체험관이다. 2012년 농식품부가 주최한 민간 주도형 전통음식체험관 공모전에 응모, 당선된 게 이 사업을 시작한 동기다.

체험교육은 정 대표가 직접 진행한다. 진한 옥색의 전통한복과 두건을 쓰고 손님을 맞이하는 그녀의 얼굴엔 언제나 옛 조령주모들의 슬기와 미소가 가득하다. 문경특산품 오미자를 이용한 된장, 고추장 만들기, 오미자청 만들기, 장아찌 담기 등의 30여 가지나 되는 체험교육 프로그램은 사계절 내내 운용된다.

“문경에 볼거리, 구경거리를 찾아오시는 분들께 저희 모심정에서는 즐길거리를 덤으로 드린다는 맘으로 일합니다. 전통음식을 만들어 보는 체험과 함께 문경의 산촌밥상의 맛,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제공해 드릴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고 있지요.”

정 대표가 진행하는 오미자 고추장 만들기 체험은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나게 짜여져 있었다. 연령 제한이 없을 만큼 멀티에이지 교육 스타일. 고춧가루와 메줏가루, 오미자청 등 고추장 재료를 키트화 하여 손쉬운 체험교육용으로 음식교재 레시피를 개발해 두고 있다. 때문에 체험교육 강사의 설명에 따라 순서대로 섞기만 하면 유치원생도 고추장을 담가 낼 수가 있다. 고추장이 만들어지는 원리 속에 숨어있는 고추장의 효능, 보관방법까지도 재미나고 유익하게 상세히 풀어준다.
 

문경 산채비빔밥

△문경 향토음식 산채비빔밥, 도토리묵밥, 약돌돼지수육

체험을 마치면 직접 만들어 본 고추장 이야기를 나누면서 맛깔스런 산채음식을 즐기게 된다. 이곳 모심정의 메뉴는 산채비빔밥 정식과 묵밥 정식으로 메인 메뉴만 다를 뿐 곁들여 나오는 음식은 같다. 밥상 가득 정갈한 한상차림이 뚝딱 차려진다. 산채비빔밥의 담긴 나물은 삶아서 조리한 숙채 나물 위주다. 고사리와 도라지, 갖가지 산나물과 함께 미나리와 숙주, 당근과 계란지단 고명으로 오방색을 꾸몄다. 그냥 보기에도 문경새재의 깊은 산속 자연을 한 그릇에 담아낸 듯 정갈하다.
 

표고탕수

굴참나무 도토리로 만든 묵밥은 이곳에서 직접 쑨 도토리묵을 쓴다. 이 묵밥은 특히 겨울철에 손님들에게 인기메뉴라고 한다. 김치와 숙주 그리고 미나리와 계란지단이 올려지고 가벼운 육수 맛이 느껴지는 국물에 말아낸다. 맛은 차치하고 그릇 가득 담아낸 푸짐한 양만 해도 모심정(母心亭) 식당 이름 그대로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잡채
약돌돼지수육

“먼저 오미자청에 찍어서 산양삼을 한뿌리씩 드시고 나서 오미자 고추장을 넣어서 산채비빔밥을 비벼 드셔 보셔요.”


“저희 산채 비빔밥은 4계절 조금씩은 다릅니다. 봄에서 가을까지는 산에서 나는 산나물을 그대로 데쳐 쓰고 겨울엔 봄철에 뜯은 산나물을 삶아 말려둔 묵나물 위주로 비빔나물을 담아내지요.”

문경 산채비빔밥 전문점 모심정 정희복 대표.

△긍지와 자부심, 사명감으로 손님맞이

상위에 조그마한 놋쇠화로에는 문경 한우고기와 약돌 돼지고기로 만들었다는 떡갈비가 구워진다. 담백한 산채비빔밥 위에 올려 먹어도 맛있고 따로 한입 먹어 봐도 부드러운 풍미가 느껴진다. 이곳 정희복 대표가 매년 담는다는 전통 된장국도 끝까지 따뜻하게 먹을 수 있도록 워머에 올려 내는데 자연 발효된 맛 그대로 아무것도 섞지 않은 순수한 재래식 장맛이다.

창밖 가득 눈 안에 들어오는 장독대에는 햇볕을 받아 된장이 익어가고 옥내 식탁에서는 구수한 된장국을 그대로 맛본다. 모심정 안과 밖이 참 조화롭게도 꾸며져 있다. 된장은 매년 담그지만 충분한 발효를 거쳐 숙성 상태로 묵혔다가 2년 뒤 장독을 개봉해 식재료로 쓴다고 한다.
 

문경 산채비빔밥 전문점 모심정

문경약돌 수육은 돼지족살 부위를 이용하여 오미자청과 재래식 국간장으로 삶아낸다. 국간장의 향이 입혀진 돼지고기 맛이 특이하다. 전라도 홍어삼합이라면 문경 약돌이합이라고나 할까. 곁들여 내는 갓 장아찌와 수육 한 점이 겹쳐진 맛이 어우러지면서 쌉싸름한 맛과 쫄깃한 족살의 음식조합이 탄생 된다. 갓 볶아 내 윤기 반들반들한 잡채도 고추기름을 써서 매콤한 맛이 이색적이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예미정종가음식연구원장.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예미정종가음식연구원장.

“저희집 모든 음식에는 오미자 청이 들어갑니다.” 정 대표는 문경 특산 오미자 예찬론자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오미자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오미자는 한자 그대로 다섯 가지 맛 오미(五味)가 나는 씨앗(子). 겉껍질은 신맛, 속살은 단맛, 씨앗은 매운맛과 쓴맛이 나고 전체적인 짠맛도 가지고 있단다. 가을 수확 후 잘 말려서 일 년 내내 식재료 양념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단골손님 중에는 근처를 지나는 길이면 일부러 문경IC로 내려와 이곳을 찾아 식사를 하시고 다시 고속도로를 타고 가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럴 때마다 너무 보람을 느낀다며 활짝 웃는다. 또 힘이 불끈 솟을 때는 체험교육에 참가한 뒤 집으로 돌아가 배운 대로 해보니 너무 맛있게 잘 되더라며 연락 주실 때라고 했다.

긍지와 자부심, 사명감으로 우리 전통음식 외식사업과 함께 전통된장 유통사업을 추구하고 있는 모심정 정 대표의 삶이 500년을 이어 온 문경 산채비빔밥에 오롯이 담겨져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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