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0월 출범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서울 종로구 광화문의 한 빌딩 일부를 임차해 사용하다가 지난 7월 계약 만료 후 서울역 인근의 민간건물로 이전했다고 한다. 원안위는 청사를 옮기면서 위원장실 인테리어 등 이전 비용으로 33억7000만 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안위는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에 따른 경북 경주시 등 원전 소재지의 이전 요구를 묵살하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 거금의 비용을 들여 사무실을 이전했다. 원안위가 어떤 기관인가. 원안위의 가장 주된 업무인 원자력 안전규제는 한국수력원자력, 원자력환경공단, 중·저준위 방폐장 등이 주요 업무 조정 대상 기관 아닌가.

이 같은 업무 조정 대상 기관들이 모두 경주시에 있어서 경북도와 경주시는 2020년 12월, 원자력 관련 업무 효율성과 안전성,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경주시로의 이전을 강력 촉구한 바 있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당시 청와대와 총리실, 행안부, 국회 등에 원안위의 경주 이전을 건의했다. 이후 경주시 뿐 아니라 부산시와 울산시도 이전 부지 무상제공 등을 제시하며 원안위 유치에 나섰다.

그런데도 원안위는 사무실 공사에 14억5400만 원, 이사비용 등 운영비 7억7400만 원, 사무집기 구매 등에 1억6100만 원, 청사 보증금 9억7900만 원 등 모두 33억7000만 원이라는 막대한 혈세를 지출하면서까지 서울에서 서울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이는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전형적 기관 이기주의 행정 사례다.

원안위가 서울에 청사를 이전한 데 대한 보고서도 가관이다. 원안위 청사 이전 검토보고서에 “원전 비상시 또는 인접국 방사능 사고 발생 시 신속 대응을 위해 서울역 인근 지역으로 청사를 구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유사시 KTX로 신속하게 이동하려고 서울역 가까운 곳에 청사를 잡는다니 헛웃음이 날 지경이다.

유사시 신속 판단과 대응을 위해서는 관련 기관과 원전 밀집 지역인 경주시와 같은 현장에 청사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2년 후 새로 입주한 청사의 임대 기간이 끝나면 지방으로의 이전 여부도 불투명하다. 중장기 계획이 필요한 막대한 혈세가 사용되는 원안위 청사 이전을 이렇게 주먹구구로 진행한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33억 원이면 땅값이 싼 경주에 번듯한 청사를 지어도 될 큰 돈이다. 한심한 정부와 한심한 원안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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