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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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감상> 올해는 김수영(1921~1968)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다. 김수영의 대표적인 시론,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는 1968년 4월 13일 펜클럽이 주최한 부산 문학 세미나의 강연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나왔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풀’은 ‘머리(민중)’와 ‘심장(저항)’의 풀이다. 온몸으로 바람과 대결하는 온몸의 ‘풀(불온, 모호, 자유)’이 아니다. 풀은 언제쯤 유목민처럼 자유로워질까? 온몸으로 춤을 출 수 있을까?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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