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영미권 국가들 주도로 설립됐다. 물건과 서비스에 대한 공정 조절을 기하는 국제연합에 비견된다. 이를 본받아 상임 이사국과 비상임 이사국을 두었고 한국을 포함한 162개 회원국이 가입됐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각국은 표준의 가치를 절감한다. 이윽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한층 심각한 문제가 불거졌다. 미국과 영국은 나사산 각도가 달라 상호간 부품을 빌리지 못했다. 이것은 동맹국 공동 작전에 어려움을 야기했고 양국은 군수품 호환을 위해 협의를 벌인다.

독일 공습으로 위기에 처한 영국은 나사산 각도를 미국 표준으로 양보한다. 이에 따라 영국 제조업체는 설비 교체에 나섰다. 대영제국이 감수한 굴욕이랄까. 미국은 자신들 규격으로 무기를 생산했고 연합군 진영의 표준화 설정을 이끌었다. 이는 파이프 역사상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오늘날 후버는 대공황을 겪은 불운한 대통령으로 여긴다. 한데 그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관료였다. 상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나사산 표준화’ 업적을 남겼다. 볼트와 너트 그리고 나사는 산업 사회의 소금이다. 소리 없이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이를 성취한 밑바탕이 후버의 공로다.

표준은 간과하기 쉬우나 도처에 발견된다. 이는 강자가 규정한 질서이기도 하다. 그것을 차지한 국가가 유리하다는 뜻이다. 거인 골리앗이 약자인 다윗에 패배한 것도 주도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미국은 표준 영역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린다. 도량형은 그 일례다. 18세기 말엽 프랑스는 1미터 길이를 정하고 국제 협약으로 공동 단위가 됐다. 거개 나라가 미터법을 사용하나 미국을 비롯한 일부는 따르지 않는다.

간혹 미터법에 익숙한 한국의 독자는 미국인 저자가 집필한 도서를 읽으며 혼란을 겪는다. 마일로 표기된 거리 탓이다. 1마일은 1609미터란 개념을 떠올려야 한다. 골프 비거리는 야드로 나오고 미터법 나사론 호환되지 않는 인치 나사를 지킨다.

미국 표준은 음악계도 일어났다. 당초 악기 조율을 위한 연주용 표준음 진동수는 유럽과 미국이 서로 달랐다. 유엔은 프랑스 표준음인 435헤르츠 채택을 주장했다. 근데 음반 시장과 라디오 방송국은 이미 미국에 장악된 상태였다. 작금 세계는 440헤르츠에 맞춘 A음이 국제 표준으로 쓰인다.

차량 우측통행도 미국 덕분에 대세가 됐다. 영국과 일본은 좌측통행을 한다. 세계 35퍼센트 인구가 이에 해당된다. 원래는 좌측이 원칙이었으나 18세기에 바뀌었다. 마부가 채찍을 휘두르기 쉽도록 왼쪽 말에 타고 우측을 달린 까닭이다. 한데 영국은 계속 좌측통행을 고수했고 프랑스는 나폴레옹 명령으로 우측통행을 시행했다. 20세기 초엽 포드 자동차가 대량 보급되면서 우측통행으로 굳어졌다.

표준 작동 방식은 흥미롭다. 이를 선점한 미국은 ‘선발자 우위’를 누렸다. 그 표준을 일찍 도입한 경쟁국도 혜택을 보았다. 간호사 분야 필리핀과 소니 같은 일본 기업이 대표적. 미군 기지를 유치한 영국·서독·일본·한국은 강력한 상대로 부상했다.

언어도 나사산처럼 표준에 속한다. 영어의 세계화는 수많은 요인이 있으나 표준화도 그중 하나다. 항공 교통 관제사와 조종사가 그러하다. 미국이 자유 무역 지대로 자리한 것은 언어와 관련됐다. 유럽 대륙 땅덩이에 동일한 발음으로 통용된 영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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