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규교대 명예교수
양선규 대규교대 명예교수

글을 보면 사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는지, 가까운 사람인지 먼 사람인지, 글을 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조심이 많이 됩니다. 속을 안 들키려고 가면을 쓸 때도 많이 있습니다.

글쓰기 안으로 들어 가 봅니다. 글을 쓸 때는 법(法)이 중요할 때도 있고 때(時)가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깡그리 적당(敵黨)을 섬멸하고플 때도 있고, 적이라도 늙은 병사들에게는 사정을 두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낱낱이 밝혀야 할 때도 있고 함축을 중하게 여겨 빈 곳을 일부러 메꾸지 않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이들은 늘 독자들의 심기를 고려해야 합니다. 그것도 중요한 ‘때’ 중의 하나입니다. ‘논어’에 보면 인문학자의 글쓰기에 필요한 필수적 자세와 윤리를 가르치는 대목이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이(利)와 명(命)과 인(仁)을 드물게 말씀하셨다.(子罕言 利與命與仁. ‘자한’)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삼베로 짠 관(冕旒冠)을 쓰는 것이 예법에 맞지만, 지금 사람들은 생사(生絲)로 만드니 검소하다. 나는 여러 사람들(時俗)을 따르겠다. (신하가) 당(堂) 아래서 절하는 것이 예법에 맞는데 이제 와서는 당 위에서 절을 하니 이는 교만한지라 비록 대중과 어긋나더라도 나는 당 아래서 절하겠다.” 하였다.(子曰 麻冕 禮也 今也純儉 吾從衆. 拜下禮也 今拜乎上 泰也 雖爲衆 吾從下. ‘자한’)

공자는 네 가지의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 사사로운 뜻(편협되게 뜻함)이 없고 기필하는 마음(장담함)이 없고 집착하는 마음(고집함)이 없고 이기심이 없으셨다.(子絶四 毋意 毋必 無固 毋我. ‘자한’)


논어‘자한(子罕)’편의 서두는 인문학의 요체를 일목요연하게 밝히고 있는 부분입니다. 사람 되기(成己)에 힘을 쓰는 공부에는 의(義)를 해칠 일이나(利에 관해 말함), 신비주의에 빠질 일이나(命에 관해 말함), 구름 잡는 이야기(仁에 관해 말함)가 도움이 되지 않음을 가르칩니다. 공자님은 그런 것에 대해서는 별말씀이 없었습니다. 법과 때는 상호텍스트적이라는 것도 윤리적인 관점에서 친절하게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법’에 우선하는 ‘때’와, ‘때’가 침범할 수 없는 ‘법’의 이치를 예를 들어 말합니다. 법을 지켜야 할 때와 시속을 따라야 할 경우는 오로지 윤리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공자님은 인문학을 하려면 적어도 ‘나를 비우는’ 4가지 금기(毋意, 毋必, 無固, 毋我) 정도는 꼭 지켜야 함을 솔선수범했습니다.

얘나 제나 인문학의 요체는 글쓰기입니다. 모든 정신은 글쓰기를 매개로 과거에서 미래로, 또 위에서 아래로, 전이됩니다. 물이 넘치면 절로 흘러내리듯이 가득 찬 영혼은 흘러넘쳐 자라나는 영혼들에게 자양분을 제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님이 직접 쓴 글을 접할 수 없는 것이 큰 아쉬움입니다. 본디 큰 스승들은 조술(祖述)하되 말로써만 했다고는 하지만 그 부분은 내내 아쉬운 대목입니다. 훨씬 많은 것들이 흘러넘쳤을 것이 부족한 둔재들의 눈과 귀 안에만 갇혀서 전달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논어’의 저자들은 가급적이면 공자님의 말씀을 원형대로 보존하여 후세의 인문학적 해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노력 역시 숙성된 인문학자의 자세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여러 사람의 노력이 긴 세월 속에서도 고전(古典)으로서의 ‘논어’의 가치를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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