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20대 대통령 선거일을 40여일 앞두고 한국 사회에 숨어 있던 온갖 문제가 공론의 장에 표출되고 있다. 이대남 의제로부터 부동산 정책 실패, 중국 협오 여론, 멸공과 대북 선제 타격론, 여가부 페지와 야당후보의 무속논란, 여당후보의 욕설문제, 배후자 문제에 이르기까지 선거판에 오른 레시피는 풍성하기도 하고 일면 낯설기도 한 재료로 가득하다. 그동안 억압되거나 공론장에 노출되지 못했던 수많은 이슈와 문제들이 매서운 여론의 시선 아래 노출되고 서로 각축하며 공화국의 새로운 대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과식과 배탈 등 과잉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지만 대 전환의 시대를 앞두고 지불해야 하는 불가피한 비용이라는 측면이 더 중요해 보인다.

역대 최악의 대통령 선거, 전무후무한 비호감 선거 등 이번 대통령선거를 규정하는 프레임에 따라 일부 유권자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다가오는 기후위기와 무역시장을 통한 도전, 미국과 중국 간 신냉전 시대의 현실화, 세계적인 불황에 대한 경고, 팬데믹의 주기적 반복, 남북, 북미 간 대결의 격화와 북한의 비핵화 난제, 불평등 해소와 세대격차, 지역격차의 해소 등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난제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 거대한 시대의 장벽을 넘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불가피하게 까다롭고 어렵고 힘든 토론과 합의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여당후보와 야당후보의 의견은 대부분의 영역에서 극단적인 대립점에 서 있다. 물론 이 양극의 대립점에는 진영의 입장과 다수 유권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어 있다. 현상만 보면 진영에 따라 나라가 두 개로 확연히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역마다 입장 차이와 함께 논쟁과 대립, 상호 비난의 목소리가 격렬하게 드러나고 있어 나라가 갈기갈기 조각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자유롭고 극단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발언과 논쟁이 가능한 정치적 공론장을 만들어 낸 것이 대한민국 시민민주주의의 성과가 아닐까? 국가 권력의 통제에 의해 쥐죽은 듯 조용히 치뤄지는 민주적 선거절차를 의제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가 세계에는 얼마나 많은가? 20대 대통령선거를 통해 경험하는 현기증 나는 토론과 논쟁이 한국의 강력한 정치 사회적 경쟁력의 한 요소이며 이를 통해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이 한층 성장해 나간다는 신념을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

해외언론에서 팬데믹이 종식되면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가 어디냐는 질문에 대한민국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 한다. BTS와 오징어 게임이 펜데믹 과정에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한국의 방역과정은 세계적인 모델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유권자들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방역 자체의 성과에 집중하면서 방역으로 인해 야기된 시민의 고통을 돌보는 데 소홀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처럼 보인다. 방역성과와 경제적 거시 지표가 세계적으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시민의 삶이 고통으로 물들어 있다면 국가는 시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계적인 재난의 시기에 국가는 적극적으로 국민을 보호하는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요구를 지금 대한민국의 유권자는 여야의 대통령 후보들에게 던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펜데믹 과정의 다양한 성과를 홍보하고 있지만 정권교체 여론으로 응답하는 국민들은 까다로워 보이면서도 참 슬기롭게 보이기도 한다. 국가의 정책이 나의 삶에 깊게 스며들며 나를 위한 정부로 느껴지지 않을 경우 가차 없는 심판의 회초리를 들 수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과정의 수많은 극단적 논쟁이 선거과정을 통해 통합된 의견으로 수렴되지는 않을 것이다. 항상 분열과 사회적 결핍에 대한 격렬한 사회적 행동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회적 욕망이 억압되지 않고 분출되는 과정 자체가 우리사회의 다양한 사회적 힘을 결집하는 과정 자체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다름의 분출은 적대의 확대가 아니라 창조적인 사회적 역량의 확대이다. 그래서 이대남으로부터 무속논란에 이르는 수많은 논란 모두가 공론장에서 다투어지는 것을 현명한 태도이다. 상상도 할 수 없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합리적 의사결정 이전의 신비적 힘에 결정을 의탁하려는 퇴행적 태도가 정치권까지 확대되어 있다는 점은 놀랍기도 하지만 시민적 삶의 현장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지를 보여주는 이 시대의 가슴 아린 상징적 장면이기도 하다는 연민이 느껴진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우리는 대전환의 경로와 현명한 선택의 과정을 집단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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