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정채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동서양을 막론하고 ‘광장’이라는 공간은 역사적 사건과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역시 광화문광장은 여러 차례 소실되고 재건되어 온 역사 속에서도 대한민국 시민들의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을 위한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굳건히 유지해 왔다.

필자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광화문광장의 모습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거리 응원의 현장이었다. 월드컵이라는 세계적인 축제를 맞아 공동개최국의 시민이라는 자부심과 경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거리 응원에 나섰다. 당시의 거리응원은 지금껏 국가와 정부의 주도하에 만들어지고 운영되었던 광장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한 중대한 이벤트였다. 서울 도심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다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다. 이후 광화문광장은 대한민국 시민들이 한마음 한목소리로 뭉쳐 단결했던 역사적 장소로 오랜 시간 각인되어 왔다.

2019년 가을, 십수 년이 지난 시점에서 광화문을 찬찬히 살피며 거닐었던 필자는 광장이 고스란히 비추고 있는 우리 사회의 사뭇 달라진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가 과연 하나의 법공동체 안에서 통합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품은 적이 있다. 그날 미국대사관 앞에는 나치 휘장을 두르고 있는 트럼프 사진이 담긴 “주한미군 철수” 피켓을 들고 1인 시위 중인 한 여성이 서 있었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는 “조국 OUT” 피켓을 소형 태극기와 함께 머리 높이 번쩍 치켜든 한 남성이 두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 멀리 세월호 천막이 여전히 노란 빛을 내뿜고 있었고, 시선을 돌려 세종문화회관 방면을 바라보니 자유한국당의 법무부장관 퇴진 집회가 한창이었다. 경복궁역까지 걷다 보니 자유한국당과 내외하듯 동떨어져 운집해 있는 우리공화당 지지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날의 짧은 목격담에서 한국의 역동적인 정치구도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른바 조국사태는 우리 사회의 분열을 가속한 촉매제와도 같았다. 분열된 국론은 집회 장소의 분리로 나타나기도 했다. 조국의 법무부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이들은 광화문으로, “조국 수호”를 외치며 검찰 개혁을 지지하는 이들은 서초동으로 향했다. 당시 대통령은 광화문 집회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서초동 집회에서만 ‘국민’의 사법개혁 의지를 확인하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면서,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된 현 상황을 수습하기보다는 방관하고 말았으며 자신을 지지하는 서초동 촛불을 등대 삼아 남은 임기를 마쳤다.

그리고 2023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다시금 바라본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째였던 지난 2월 초, 서울에서 또다시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광화문 북광장에서는 유가족협의회의 100일 시민추모대회가, 세종대로 인근에서는 장외투쟁에 나선 야당의 정부 규탄대회가, 그리고 이에 맞대응하기 위한 보수 성향 단체의 집회가 삼각지역에서 열렸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하게 됨에 따라 다양한 정치적 주장들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장소들은 늘어나게 된 셈이다. 하지만 광장이라는 공간이 시민들 간의 대화를 통해 의미 있는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토론의 장이 되어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되려 진영화된 정치적 담론이 장소적으로도 날카롭게 구획되어 우리 사회의 분열을 영속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사회에서 진영 구도는 늘 있었고, 정당은 당파성을 본질적 속성으로 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다만 정부와 의회는 여전히 국민통합을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중요한 주체임에도 이러한 책무를 해태하고 있으며, 되려 광장의 진영 정치가 공론을 견인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몹시 안타깝다. 색상, 무늬, 크기, 모양이 제각기 다른 여러 천조각을 이어 붙여 ‘패치워크’라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듯이, 우리 사회의 통합을 이루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나아가 그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점점 더 의구심을 품게 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