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오 포항선린의료원장

이건오 포항선린의료원장

지난 2004년 5월29일부터 5일간 포항실내체육관에서는 포항은 물론 한국 기독교계에서 매우 주목 받는 행사가 열렸다. 다름아닌 한국홀리클럽(Holy Club) 총연합회·포항기독교회 연합회·포항성시화(聖市化)운동본부가 공동 주관한 '제1회 홀리클럽세계대회 및 포항성시화대회'였다.

이 대회 개최 목적은 예수처럼 거룩성을 회복함으로써 이 사회(포항)에 만연한 죄와 질병, 퇴폐, 부조리를 치유하는 한편 포항을 시범적인 성(聖)스러운 도시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이건오 의료원장이 이라크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현지 주민들을 상대로 긴급 의료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대회에는 국내 22개 도시와 미국 등 7개 국가에서 총 2만여명의 기독교인이 참가함으로써 지역은 물론 중앙에서도 적지않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대회는 당시 정장식 포항시장(당시 중앙교회 집사)이 참석, 기독교 편향 발언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지역 불교계가 반발하는 등 종교 논쟁으로까지 번지는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이 성시화 대회 및 홀리 클럽 운동을 기획하고 주도한 인물이 바로 당시 선린병원장이었던 이건오(65·사진)장로였다. 때문에 지역에서는 '선린병원 이건오 병원장'하면 '의사'보다는 '포항지역 홀리 클럽의 대부', 또는 '기독교에 경도된 종교인' 등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사실 기자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전 기자는 이 원장을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그가 기독교에 경도돼 하나님밖에 모르는 앞뒤가 막힌 사람이 결코 아니다"는 내용의 설명을 듣게 됐다. 한마디로 지역에 알려진 것과 크게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궁금증이 일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이렇게해서 이뤄지게 됐다. 하지만 기자는 인터뷰 2시간동안 성시화 및 홀리클럽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성시화 대회 이후 지금까지 지역사회가 얼마나 성(聖)스럽게 변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아직도 보이지 않은 골은 분명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 대면하는 순간 '의사'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으레 의사하면 일반적으로 안경 낀 창백한 얼굴의 인텔리겐차를 자연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현장 근로자나 옆집 아저씨같은 평범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얼굴 생김과 달변의 말속에서 열정과 집념이 넘쳤다. 표정이 밝아서인지 60대 중반의 나이에 비해 동안(童顔)이었다.

▨ 고교 1학년때 처음 교회 나가

그가 태어난 곳인 경남 김해시 장천동은 그때만해도 조그만 어촌이었다. 마을 이장이었던 할아버지가 수산업을 했지만 여느 집처럼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중학교때 등록금을 내지 못해 수업시간 학교에서 쫓겨나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은 수업중이었지만 그는 등록금을 내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려 수산시장 등 이곳 저곳을 어슬렁거렸다. 극장비 마련을 위해 물건을 훔치는 등 나쁜 짓도 많이 했다. 불량 청소년 대장으로 전락한 것이다. 나쁜 짓을 하다 선도반 선생님에게 들켜 제적통지서까지 받았다. 그는 담임 선생에게 통사정했다. 하지만 담임은 조건을 달았다. 다음달 월례고사에서 평균 50점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시험결과 360점 만점에 250점을 맞아 제적만은 면할 수 있었다.

함께 제적 통보를 받은 4명은 결국 제적당하고 말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제적 당한 4명중 한명을 지난 73년 포항 해병대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 만났다. 그 친구는 해병대 상사로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등학교때까지 가난은 여전했고, 공부는 뒷전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때 그의 삶의 결정적 전환점이 왔다. 다름아닌 추수감사절때 친구따라 처음으로 교회에 간 것이었다. 목사가 전도사만있는 조그만 교회였다. 그날을 계기로 그는 교회에 자주 나가게 되었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게 되었다. 물건을 훔친 것 등 나쁜 짓을 회개 하기 시작했다. 고3때 아버지에게 신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자 유교집안에서 생활한 아버지는 "족보에서 네 이름을 파 버리겠다"고 했다. 고민과 갈등이 심했다. 교회 전도사에게 상의했다. 전도사는 "너희들이 어른이 될 때는 일반 4년제 대학을 해야 옳은 목사를 할 수 있다. 일반 대학을 졸업한 뒤 다시 신학대학에 가면된다"고 조언했다. 결국 공부를 잘한 그는 결국 부산대 의대로 진학했다.

▨ 성산 장기려 박사 제자로

그에게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2명의 스승이 있었다. 현 한국대학생선교회(KCCC) 이사장인 김준곤(1925~ )목사와 의사로 무소유 삶를 실천한 성산 장기려(1911~1995) 박사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승패가 갈리죠. 저는 김 목사님으로부터는 민족이 무엇인지, 즉 세계를 품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장 박사님에게는 기독의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장 박사와의 만남은 특이했다. 의대생이 된 뒤 그는 처음에는 내과를 전공하려고 했으나 선교나 봉사를 하려면 외과 의사가 더 효과적이라 판단, 일반 외과를 신청했다. 그런데 학부 4학년때 교회로 전도한 친구 하나가 불쑥 찾아와 자신이 외과를 하고 싶으니 양보해 달라는 것이었다.

"2월말이라 모든 것이 결정된 상황에서 양보를 해 달라고 해 속으로 원망도 많이 했죠. 속으로 진정한 친구라면 그런 부탁은 해서는 안되다고 생각했어요. 그날 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어요. 그랬더니 '저 친구는 나 믿고 교회에 나왔는데, 이 정도 양보하지 못하고 앞으로 내가 무얼하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어 양보하게 됐죠. 그리고 지도교수를 찾아 뵙고 군대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군에 가지말고 소개해 준 분이 바로 장기려 박사님이었습니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지요. 박사님은 누구든지 차별없이 사람을 대한 한국의 슈바이쳐이셨습니다. 항상 자기 봉급 다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때문에 병원장이신 사모님은 가정을 제대로 꾸려나갈 수가 없었죠. 환자들이 입는 옷을 손수 꿰메 입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는 지금 장기려 선생 기념사업회 상임이사로 있다.

▨ 인생의 터닝 포인트-선린병원장으로

그는 2002년 4월 서울 서안복음병원장으로 있다 포항 선린병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포항으로 오게된 것은 병원 설립자이자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린 고(故) 김종원(1914~2007)장로의 "선린병원을 선교병원으로 하자"는 뜻에 찬동했기 때문. 그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 터닝 포인터(전환점)가 됐다. 그때만해도 선린병원은 의약분업 직후라 경영이 매우 어려웠고, 의사 및 직원들간 보이지 않은 갈등이 심했다.

"좋은 의사선생님들이 하나둘씩 빠져 나가 개업을 하니 경북에서 제일 좋던 병원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매일 부도 위기에 놓이는 등 정말 참담했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마음 먹은 후 3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첫째는 전 직원 친절운동 교육이었고, 둘째가 좋은 의사를 모시려면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의료선교의사로 선교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죠. 셋째는 병원 내외부를 다시 리모델링해 호텔같은 병원으로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었죠. 이 3가지 목표를 착실히 실천해 나갔죠.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선교병원'으로 명명하니 실력있는 의사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금 선린병원이 목표 달성(100점)에 60점 정도는 된다고 자체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해야할 일이 아직 태산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는 국내외 소외계층에 대한 의료봉사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여기에는 그의 인생 철학이 담겨있고, 선린의료원의 존재의의이기도 하다는 것.

지난 2002년 5월 한민족복지재단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에 4명의 의료진을 파견하는 것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쓰나미 피해 현장(2006년), 이라크 전쟁(2003년) 등 매년 20차례이상 해외 무료 진료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포항지역 사회단체와 연계해 알코올중독 치료모임 지원과 치료 프로그램 운영, 도박중독 예방 프로그램 가동, 아동 학대자 방지위원회 구성 등 지역사회 병리 현상 해소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건오 포항선린의료원장 약력

▷경남 진해시 장천동 출생(1943년생, 65세)

▷부산대 의대 및 고신의료원 레지던트 수료(외과전문의)

▷가톨릭 의과대학 박사 수료(의학박사, 외과학 전공)

▷서울 서안복음병원 외과장 및 원장(1980~2002)

▷한동대학교 선린병원장(2002.4~2008.3)

▷의료법인 인산의료재단 선린의료원장(2008.3~현)

▷서울 시민교회 장로 및 한국기독교 의료선교 협회 회장(현)

▷성산 장기려 선생 기념사업회 상임이사(현)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외래 교수(현)

▷한국 홀리클럽 중앙회 부회장 겸 한국 국제기아대책기구 이사(현)

▷부인과 1남 2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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