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기자

학교선배와 동급생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해 의식불명에 빠졌던 여고생이 끝내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났다.

전북 순창의 모고교 1년생이었던 L양(16)은 지난달 30일 오후 2시께 같은 학교 선배와 동급생들로부터 ‘선배와 친구를 무시하고 잘난 체 한다.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주겠다’며 한시간가량이나 집단폭행을 당해 의식불명에 빠진 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일 오후 끝내 숨지고 만 것이다.

또 지난 2일 오후 5시 20분께는 부산 모고교 박모군이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를 폭행해 중상을 입힌 것에 대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두 사건의 성질이 현저하게 다르지만 사건의 원인이 학교폭력이었다는 점에서 경찰이 지난 수개월간 주창해 온 학교폭력 근절이 얼마나 허구였던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전북 순창에서 여고생 집단폭행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 뒤인 지난 2일 전북지방경찰청은 도내 13개 지역 63개 고교(남고 44, 여고 19)의 폭력서클을 적발, 해체시켰다고 발표하는 어이없는 작태를 보였다.

경찰은 올초 서울의 어느 교사가 ‘전국에 학교폭력서클인 일진회가 존재한다’는 발표를 했을 때도 결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가 실태가 밝혀지면서 지난 3월부터 부랴부랴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며 나섰다.

그리고 한달만에 전국 곳곳에서 학교폭력조직을 와해시키거나 자진해체했다는 경찰보고가 잇따라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같은 경찰의 학교폭력조직 해체보고를 비웃기나 하듯이 대낮에 초등교 운동장에서 여고생들의 집단폭행사건이 일어나 결국 채 피어나지도 못한 여고생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기자는 지난달 20일에도 이같은 경찰의 재빠른(?) 학교폭력조직 와해보고에 대해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바 있으며, 그같은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물론 경찰이 그동안 학교폭력방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전북지방청과 같이 학교폭력으로 인해 여고생이 중태에 빠진 상황에서도 학교폭력조직을 와해시켰다고 발표할 만큼 실적위주의 수박겉핥기식조치가 취해진 것이 아닌지 우려되는 것이다.

포항의 경우 남·북부경찰서가 교육청과 학교, 학부모가 참여하는 학교폭력예방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으며, 부산지방청과 부산교육청은 퇴직 경찰관 및 교사를 활용한 ‘스쿨폴리스’제도를 도입해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학교폭력의 발생원인이 사회적 문제에 있다는 게 주지의 사실인 만큼 경찰과 교육계는 물론 학부모와 사회전체가 나서지 않는 한 효과적인 근절방안 마련이 어렵다.

따라서 경찰은 당장의 성과발표보다는 학교폭력의 발생원인과 실태, 폭력학생들에 대한 선도방안, 피해학생들의 치료방안 등 사회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대안을 마련하는게 최우선의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또다른 학교폭력으로부터 꽃다운 청소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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