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물방울들이 초라하게 솟는 인내산 작은 샘

형산강 발원지 중 하나로 꼽히는 인내산 계곡의 작은 샘.

지난 19일 8회 탐사 때는 겨울 날씨 치고는 제법 포근한 편이었다. 이날 탐사팀은 경주시 서면 도리 인내산 발원지~심곡지 구간(약 8km)을 탐사하기로 했다. 발원지 탐사 후 경주 서면사무소와 건천읍사무소를 방문해 지난번 탐사 때 보고 느낀 대천(大川) 변 쓰레기 투기 등 문제점을 담당 공무원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인내산 발원지 탐사는 올해 8월 본격적인 탐사 시작 전에 한번 찾은 후 이번이 두 번째였다. 발원지에서 기원제(산신제)를 드리기 위해 돼지머리 등 약간의 제물도 준비했다.

발원지를 먼저 탐사 한 뒤 나올 때 대천 상류인 도리 마을 앞 실개천을 따라 오기로 하고 승용차를 이용해 곧바로 발원지로 향했다. 포항을 출발해 포항~영천간 국도를 따라가다 안강과 영천 경계에 있는 큰 고개인 시티재를 넘어서면 왼쪽으로 국가유공자 묘역인 영천호국원이 보였다. 왼쪽의 호국원쪽으로 꺽으면 건천읍 방향의 지방도로가 나타난다. 이 지방도로를 따라 10여분 정도 달리면 우측에 영원모텔이 보였다. 이 모텔 옆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언덕을 넘어면 도리 마을 못가서 차 한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포장길이 나타났다. 이 길 입구 왼쪽에는 그리 크지 않은 저수지인 인출지가 있고, 인출지에서 2~3km 정도 골짜기로 들어가면 한우를 기르는 축사 2곳이 있었다.

탐사팀이 경주시 서면 도리 인내산으로 형산강 발원지를 찾아 가고 있다.

첫번째 축사를 지나 농로를 따라 언덕을 오르니 지난 번 보았던 두번째 한우 방목 농장이 나타났다. 지난번 왔을 때는 농장 주인 제갈학수(45)씨가 있었으나 오늘은 60대로 보이는 노인 분이 어디가느냐고 물었다. "형산강 인내산 발원지를 찾아 간다"고 하자 "저 쪽 길로 조금 올라가면 된다"며 친절하게 가르켜 주었다. 노인도 농장 윗쪽 계곡이 형산강 발원지라는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그곳에서 북서쪽으로 300~400여m 올라가자 조그만 계곡의 땅속에서 물이 한 두 방울씩 새어나왔다. 그곳이 바로 인내산 발원지였다. 탐사팀 중 이곳에 처음 온 몇 명은 "이게 형산강 발원지예요…"라며 실망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곳이 형산강 발원지라니…." 기자 역시 올해 8월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똑같은 허탈감을 느꼈다. 조금은 '성스러운 곳'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형산강 발원지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탐사팀이 인내산 발원지에서 형산강의 건강과 무사 탐사를 비는 기원제를 올리고 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고사를 지내기 위해 자리를 폈다. 형산강지킴이 오주택 회장은 지난해 이맘때도 이곳에서 형산강이 건강하게 길이길이 보존되도록 기원제를 올렸다고 했다. 형산강환경지킴이 김등만 집행위원장이 준비한 축문을 읽었다.

"…형산강 탐사 안전기원제를 올린지 70일만에 이곳 인내산 발원지까지 도착하였음을 인내산을 지키는 산신령님과 영일만을 제도하시는 동해의 용왕님, 그리고 저희들이 탐사하는 동안 안전을 보살펴 주신 모든 신령님께 이를 고합니다. 그간 연인원 101명이 8회에 걸쳐 세찬 겨울바람과 온갖 가시밭길을 헤쳐가면서 형산강 줄기의 생태를 꼼꼼히 탐사하고 있음을 제 신령님께 삼가 아룁니다…."

형산강 인내산 발원지 아래에 있는 심곡지. 갈수기라 물 색깔이 짙은 녹색을 띠고 있다.

향을 사르고 술을 따른 뒤 탐사팀은 다함께 절을 올렸다. 탐사팀의 간절한 바람을 신령님은 아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울주군 백운산 발원지와 '어느 것이 진짜 형산강 발원지인가'라는 문제도 다시 한번 재 논의해 봐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했다.

"이 인내산 계곡 땅밑에서 한방울 두방울 새어나오는 물방울이 실개천을 만들고, 그 실개천들이 모여 다시 좀 더 큰 계곡물을 만들고, 그 계곡물들이 모여 다시 하천(내)을 만들고, 그 하천들이 만나 다시 강(형산강)이 되다니…. 도대체 형산강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조선조, 고려, 신라, 아니 그 이전에도 이 발원지 계곡물은 형산강 줄기를 따라 영일만으로 흘러들었을 것이다. 그때도 요즘과 같이 오염된 물이 흘렀을까. 지금처럼 심하게 오염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옛날처럼 형산강이 되살아 날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탐사팀이 건천읍사무소를 방문해 읍장에게 대천변 각종 환경 오염행위를 설명하고 있다.

고사를 지낸 뒤 탐사팀은 다시 실개천을 따라 인내산을 내려왔다. 하산하면서 농장 집앞에는 전에 보았던 제갈씨를 만났다. 지난번 탐사때 제갈씨는 이 일대 계곡이 문중 산이라고 말했다. 제갈씨는 이곳에서 100여 마리 정도의 한우를 방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환경오염. 만약 비가 온다면 축산 폐수가 그대로 빗물에 씻겨 계곡을 따라 대천으로 흘러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입구에 있는 인출지의 물은 육안으로 보아도 오염이 심함을 알 수 있었다. 안강에 있는 축산폐수 처리장이 하루빨리 가동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원지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은 2군데의 축사 옆 계곡을 따라 인출지를 거쳐 도리 마을 앞으로 흐르고 있었다. 인내산 북쪽에 자리잡은 도리 마을은 아늑하고 조용한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마을 앞으로는 인내산에서 흘러온 계곡물이 흐르고 ,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마을은 겨울이어서인지 너무 조용했다.

도리 마을 계곡물은 조그만 저수지를 거쳐 큰 저수지인 심곡지로 흘러든다. 기자는 심곡리 마을 옆에 있는 심곡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이 일대 산들이 그리 깊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큰 저수지가 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항의 큰 저수지인 신광 호리못보다 더 큰 것 같았다.

일제 강점기에 축조된 심곡지는 겨울 가뭄이 심한 탓에 윗쪽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일대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는 매우 중요한 저수지임에도 불구 갈수기여서인지 물 색깔이 녹색을 띠고 있었다. 녹조현상 같았다. 저수지 바로 옆에는 경주 최부자네 조상 묘가 있었는데, 오 회장이 심곡지 축조와 관련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당초 심곡지 축조 계획에는 제방을 마을 앞쪽으로 당겨 쌓으려고 했다는 것. 하지만 그럴경우 최부자 조상 묘가 저수지 안 물 속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최씨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최씨 집안의 집요한 반대로 결국 제방은 지금의 묘 바로 앞에 축조되었으며 묘는 수장을 면하게 되었다고 했다. 일제때 큰 저수지 제방 축조 계획이 묘 1기 때문에 변경되었다니…. 당시 최부자 가문의 위세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심곡지 앞 심곡리 마을 역시 20여 가구 남짓한 조용한 시골마을이었다. 집 문패에 '국가유공자'라고 적혀 있는 집 마당에 조그만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추위를 피해 그 안에서 준비해 간 도시락을 먹었다.

점심후 탐사팀은 먼저 서면사무소를 찾았다. 마침 면장을 비롯해 간부 공무원은 행사장에 가고 없었다. 하천관리를 주민생활계장인 전종화씨가 담당 한다고 했으나 전씨는 행사장에 가고 없었다. 할 수 없이 다른 직원인 김형준씨에게 형산강 상류인 대천변의 각종 오염행위를 설명한 후 철저한 관리를 요구했다. 김씨는 "쓰레기 수거 차량이 매일, 또는 2일에 한번씩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 쓰레기를 여전히 하천변에 몰래 버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건천읍사무소에 들렀다. 마침 최민환 읍장이 있어 대천 탐사과정에서 찍은 각종 오염행위 사진들을 보여줬다. 최읍장은 깜짝 놀라며 부읍장을 불러 확인시킨 뒤 철저한 단속과 쓰레기 수거를 지시했다. 최 읍장은 "이장 회의 때마다 하천변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 것을 주지시키지만 농촌 사람들이라 실천이 쉽지 않다"며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을 여러분들께서 하는 것 같아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최 읍장은 대천의 중요성은 물론 대천변에서 어떤 오염 행위가 일어나는지 훤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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