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聞山 김영식 명인

'조선요' 聞山 김영식 명인이 도자기를 빚고 있다.

역사의 먼지를 뒤집어쓴 사금파리 위로 세월이 켜켜이 쌓여 망댕이 가마가 또 한번 부흥을 꿈꾸는 조선요(朝鮮窯).

조선요에는 커다란 누에가 누워있는 형상을 한, 수백년에 걸친 문경도자기의 살아있는 증인 '망댕이 가마' 가 있다. 여기서 대대로 전승돼 온 것이 청화백자·분청사기다,

도예의 고장으로 유서 깊은 문경읍 관음리에 위치한 '조선요는 조선의 고운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대대손손 전해준 도자기의 명당이다. 200여년 세월동안 모든게 흙이되고 먼지가 됐지만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조선의 자존심을 후세에 물려주며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었다.

(시계방향) 청화백자발(靑華白磁鉢), 사토 오인 다기류-정호(沙土 五人 茶器類-井戶), 사토다완(沙土茶碗), 어소환(御所丸), 입학다완(立鶴茶碗).

도자기 가업(家業) 8대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聞山 김영식 명인은 국내 유일 전승 8대 도예가문 장손이다. 한국을 대표했던 사기장 김천만(김정화)의 장자로 태어난 그의 어린시절 유일한 친구는 흙이었다. 커가면서 유일한 놀이터 역시 망댕이 가마가 있는 작업장이었다.

가업 7대를 이끌던 부친 김천만이 작고하자 가업을 잇기로 결심한 김영식(21세 때)은 자연스럽게 도예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지는 한편 중요무형문화재 제105호 사기장으로 부친과 함께 가업 7대를 이끌던 숙부 김정옥 명장의 지도 속에 사기장 이수자로, 가업 8대 전승자로 전통 도자의 맥을 잇고 있다. 여기서 그는 한국현대문화미술협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공예부문에서 '철화백자 용문호'를 출품해 영예의'최우수상' 을, '박쥐 모란문 대발'은 '특별상'을, '이도다완' 작품은'특선'을 차지하는 등 3개 작품 모두가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조선요는 240년전 김취정씨가 터전을 마련했다. 어려운 여건 속 가까스로 가업을 전승돼오던 7대 도공 김천만씨가 작고하자 아들 김영식씨 대에서 또 한번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망댕이 가마는 특유의 칸가마 형태를 유지, 지난 1999년 경북 민속자료 135호로 지정됐다. 이 가마는 1999년까지 실제 사용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원형 보존을 위해서다. 국내유일의 오래된 전통 가마를 후대에 원형 그대로 전하기 위함이다.

원래는 허물어져버린 끝 목칸까지 여섯개로 이루어져 있던 이 가마는 부근에 매장된 백토성분 함유의 사토를 채굴해 씀으로써 민속사기 특유의 맛을 이끌어 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서 생산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는 고도의 기술과 예술성이 함께한 도자기 공예의 극치다. 특히 고려청자와 조선 백자는 인간이 아닌 신의 예술품으로 알려진 명품이다.

도자기의 제일 주요한 핵심요소는 질 좋은 흙. 흙과 물과 바람이 흙과 불의 조화 속에 도공의 숨결 따라 웅웅대며 혼을 불사르면 예술적 감각이 어우러진 인류 최고의 종합 예술품이탄생한다. 조선요의 뜨거운 불 속에서 구워진 백자, 분청, 찻그릇들은 한결같이 독특한 손맛을 과시하며 역사성을 자랑하고 있다.

"도자기는 손의 감각이 중요합니다. 만들 때마다 모양도 달라지는데 그 감각과 느낌을 어떻게 실제와 접목시키느냐가 관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요는 조선백자에 뿌리를 두고 유일하게 그 맥을 잊고 있다. 백토 위에 투명질 유약을 입힌 백자들은 사대부가나 왕실에서 쓰던 백자와는 달리 청회빛을 띠고 있다. 흙 속에 섞인 철분이 배어나오고 장작가마의 불티가 내려앉아 유백(乳白)의 색상과는 구분된다.

김영식명인이 여인의 살결처럼 부드러운 백자위에 즐겨 쓰는 것은 청화채의 초문과 나비문양. 나비문양은 선조대대로 아껴 시문 해온 것이다. 워낙 오래되다보니 변형이 심해 나비의 모습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

그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진 막사발과 전통자기의 재현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다기류뿐만 아니라 분청사기와 청화 백자 계통의 작품도 성공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소박하면서도 은은한 자태와 구수한 색상을 띠고 있어 보는이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전통에 대한 믿음과 애정으로 하루 일을 시작 합니다 "

문경은 고려초기 청자서부터 조선백자·분청사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전통을 지켜 온 곳이다. 관요(왕실 및 관공서에 도자기를 주로공급)가 아닌 민요(民窯)의 중심지였다. 문경이 도자기의 본향으로 알려진 것은 질 좋은 사토(沙土)와 소백준령에서 생산된 풍부한 소나무 땔감, 낙동강, 남한강 등 수로를 통한 운송수단의 손쉬움으로 판로 개척이 용이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김영식 명인은 새로운 창작보다는 전통을 지키는데 정성을 쏟는다. 그의 작품은 투박하면서도 질감이 깊다. 그의 도자기에 그려진 호랑이·소나무·용 등의 그림은 부인의 솜씨다. 부창부수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세 자녀 중 누군가 가업을 잇겠다면 도울것이라는 그는 가업 9대 전승의 꿈을 갖고 있다. 문경도요의 가장오랜역사를 꾸밈없이 보여주는 조선요에서 선조들의 얼이 담긴 도자문화가 활짝 꽃피길 기대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 김영식명인 약력

1989 가업계승

1996 중요 무형문화재 사기장 105호 전수 장학생 선정

1997 러시아 한국 도자전시회 출품

1998 신라미술 대전 입선

2001 대한민국 전승공예 대전 입선

2002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입상

대구문화 예술회관 기획 '올해의 청년 작가 초대전'

중요무형 문화제 사기장 105호 이수자 선정

2003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입상

2004 KBS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가마 2기 제작 및 다완 소품 협찬

대구 예송갤러리 초대전

2005 일본 아리따 도자기 축제 초대 전시회

영남 미술대전 특선

2006 인사동 라메르 갤러리 개인전 (조선백자 300년 서울에 오다)

2007 現 8대째 가업계승 및 조선요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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