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3인의 요리사 이근배 조리장

이근배 조리장

우리 음식의 맥을 찾아 전국을 찾아다니는 진정한 요리사 이근배 씨(53).

이 씨는 한 때 김영삼·김대중· 노태우 전 대통령 등 청와대에서 3명의 전직 대통령과 그 가족들의 식단을 책임졌던 요리사다.

엄격히 말하면 청와대 4대 요리사라 할만큼 그는 요리 솜씨가 뛰어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관저에 손님이 올 때 이씨에게 출장 요리를 부탁할만큼 그의 양식 요리 솜씨는 자타가 공인했다. 이씨는 지난 90년 청와대로 발령받아 8년간 대통령내외와 그 가족들의 식단을 담당하다 98년 퇴임 후에는 방송, 식품개발, 강연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근배 요리사가 노태우 전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지난달 29일 포항을 찾아 ㅈ건설 박모회장과 식품개발을 논의한 그는 서민들의 전통 음식을 살려 후세에 남을 건강식으로 개발해보고 싶다고 했다. 또 자신이 하고있는 일과 연계하고 싶다는 뜻도 비쳤다.

그가 연계하고 싶다는 일은 한국 전통요리인 찜갈비.

원래 양식이 전문분야지만 관저 요리사란 특성상 한식, 일식, 양식, 중식 등 모든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는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청와대를 떠났다고 한다. 당시 노무현대통령은 기존 근무자를 전부 교체할 만큼 쇄신적이었다고 회고한다.

이근배 요리사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전자분야가 자신의 전공인 그가 한식, 일식, 양식분야에서 최고의 베테랑이 된데는 연구에 집착하는 끈질긴 성격도 한 몫했다.

그는 카투사 복무 시절 미군 요리사들과 어울리다 요리에 입문하게 됐다. 이후 1980년부터 10년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양식 요리사로 근무하다 청와대로 발탁됐다. "요리는 타고난 운명"이라 할만큼 재미가 있었다고.

양식은 미군으로부터 교육받으며 익혔다. 남자 요리사가 환영받지 못하던 시절, 그가 본격적인 요리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다.

이씨의 꿈은 훌륭한 전통 음식을 발굴, 계승·발전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음식이 가장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색다른 음식이 있다면, 알려지지 않은 음식 보유자가 있다면 어디든 찾아간다.

이씨는 인스턴트식품(가공식품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가마솥 원리를 살려 찜 솥도 개발했다. 이 솥에 뼈를 고으면 국물에서 우유 냄새가 나 많은 사람들이 즐겼다고 한다. 11번의 실패를 딛고 12번째 성공한 이 식품은 그에게 크나 큰 명예를 안겨주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가리는 음식이 없었지만 노태우 전대통령은 멸치국물에 김치를 쑹쑹 썰어넣고 끓인 '갱시기'를, 김영삼 전대통령은 해물, 특히 생선머리를, 김대중 전대통령은 견과류와 홍어를 즐겨 찾았습니다."

청와대 식단에 '대통령을 위한 특별한 보양식이 있지 않을까?' 대통령들은 자신이 어릴 때 즐겨 먹던 음식을 가장 즐겼다고 한다. 때문에 연로하면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신토불이'가 아닐까 한다. 1970년대 값싼 수입 밀에 밀려 우리 토종 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20년만에 종자를 구하기도 힘들만큼 토종밀은 자취를 감췄다. 1991년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가 어렵사리 토종밀 종자를 구입, 농촌에 보급했다.

고 김수환추기경이 청와대 방문시 말한 이같은 사실을 김영삼대통령이 공감하면서 그 유명한 청와대 칼국수가 탄생됐다고 한다. 우리 밀을 적극 사용하라는 지시가 내려지면서 부터.

"선조들로부터 대물림 된 발효음식이 가장 훌륭한 건강식"이라 강조하는 그는 토종 밀가루로 불지않는 국수를 연구하다 우리식품의우수성을 재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어느 날, 김영삼 전 대통령 저녁 식탁에 대구탕이 올랐다. 수저로 국그릇을 휘젓던 YS가 갑자기 묻는 말, "대구 머리 어디 갔노?"

이후 '생선 박사' YS의 밥상에는 늘 생선 머리가 올랐다. 5년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한 청와대 관저. 주메뉴로 민어탕이 올랐다. 민어 역시 머리가 맛있어 조리팀은 대통령의 국그릇에 특별히 머리 부위를 담았다. 그러나 DJ, 몇 번 국물을 떠 먹다 역정을 내며 "왜 머리밖에 없어? 살은 자네가 다 먹어부렀어?" 민어탕을 다시 내오기 위해 주방으로 가는 운영관의 발걸음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는 일화도 들려준다.

대통령마다 통치 스타일이 다르듯, 식성도 제각각이다. 대통령의 밥상은 최고 권력자의 성격과 기호를 보여주는 돋보기 렌즈이자, 현대정치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창호 구멍.

칼국수에서 홍어, 도다리회, 과메기로 이어지는 대통령들의 대표 음식은 정권과 정치의 '상징'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밥상 하면 흔히 대장금이 차린 궁중 잔칫상을 떠올리지만 "일품요리 두어가지에 반찬 서너가지 정도의 '소박한 밥상'으로 남는 음식을 최대한 줄였다"고 한다.

DJ정부 출범으로 청와대 식단에도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경상도 출신 대통령 일색이던 청와대에 최초의 전라도 대통령이 입성하면서, 영남 음식 위주였던 식탁에 홍어, 갯장어, 톳나물, 돌산 갓김치 같은 호남 음식이 '메인 디시'를 차지하게 됐고 호남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는 퇴임 후 8년간 청와대서 근무한 뒷얘기를 비롯, 지난 2007년 30년간 요리인생을 담은 저서 를 펴내기도 했다. '청와대 요리사'란 책이 발간되고 그가 개발한 '청3대갈비'가 GS홈쇼핑에서 분당 920만원 매출 기록을, 농수산 홈쇼핑 '이근배 조리장의 맛의 세계' , CJ홈쇼핑 '청대진 왕갈비탕' 이 방송 매진사례를 기록하는 등 그의 요리는 국민들의 밥상으로 경쟁적으로 올랐다.

1980년 양식조리사, 1981년 프라자호텔 조리부에 근무하다 1983년 프라자호텔 모범표장장을 받은 후 1990년 청와대 조리장이 된 이근배 씨. 1994년에 청와대 모범 표창장을 받은 그는 지금도 요리의 맥을 찾아 유랑인처럼 떠돌아 다니는, 진정한 요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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