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재 훈<포항강변교회 목사>

‘하루는 부부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얼른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숨을 죽인 채, 아버지와 어머니가 거실에서 싸우는 소리를 마음 졸이며 듣고 있었다.

부부 사이에 점점 더 언성이 높아지더니 급기야 화를 이기지 못한 아버지가 쫓아가더니 주방에 있는 가스밸브를 틀었다. 그리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말았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아파트 안에 불길이 크게 치솟기 시작했다. 방안에 있던 아들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나와서 보니까 거센 불길이 아파트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이었다. 아들은 엉겁결에 창문을 열고서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순간적으로 되어진 일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급히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뒤따라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아버지는 홧김에 불을 지르긴 했지만,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결국은 자신도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가족 세 사람이 모두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무사했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첫째로, 아버지는 제비족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제비처럼 날아서 땅에 사뿐히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둘째로, 어머니는 날라리였기 때문이란다. 훨훨 날아서 땅에 사뿐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셋째로, 아들은 비행청소년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고층에서 떨어져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위의 풍자적인 이야기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의 이야기다.

하루 일하여 먹고 살아가기에 힘든 가정들이 들을 때는 너무 사치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는 건전하고 건강한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파탄과 어려움으로 인하여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가정들이 예상외로 주변에 많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가장의 실직 파동이 가정 전체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경우, 또한 아침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갔던 가족 중 누군가가 불의를 사고를 만나서 극한 장애인으로 전락해 버린 경우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술과 약물로 그 상황을 이겨보려고 발버둥 쳐보다 폐인이 되어 버린 사람들, 경제적인 어려움과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여 가출해 버리는 자녀들의 문제, 사업의 부도, 작은 가게라도 해서 생계 문제를 해결해 보겠노라고 애쓰다가 문을 닫아 버리고 투자한 금액조차도 챙기지 못하는 일들...아픔의 원인들은 부지기수다.

가정의 행복을 유지하기에는 돌발 변수가 너무 많다.

하지만 아파만 하고 있기에는 아직은 가야할 길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

중요한 것은 아픔이 찾아왔을 때 가족들이 서로 손에 손을 붙잡고 위로와 격려로 희망의 내일을 바라보면서 일어서는 일이다.

영국의 화가 조지 프레드릭 왓츠는 ‘소망’이라는 그림을 그려서 유명해졌다.

그 그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소녀가 두 눈을 다 가리고서 지구 위에 앉아서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거문고의 줄은 다 끊어지고 오직 한 줄만 남아있다.

그 줄의 이름은 “소망”이다. 소녀는 그 남은 한 줄, 곧 소망의 줄로 최선을 다해서 연주를 하고 있다.

소녀 뒤에서는 멀리 작은 별 하나가 비취고 있다. 이것도 소망의 빛을 뜻하는 것이다. 이 빛은 거문고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더불어 온 누리를 환하고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이 그림은 미국의 남북전쟁 시에 사람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셉티멋 윈너는 이 그림을 보고 감화를 받아 ‘희망의 속삭임’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애창하는 곡으로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거룩한 천사의 음성, 내 귀에 두드리네. 부드럽게 속삭이는 앞날의 그 언약을, 어둔 밤 지나가고 폭풍우 개이면, 동녘엔 광명의 햇빛, 눈부시게 비취네. 속삭이는 앞날의 보금자리, 즐거움만이 눈앞에 어린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파탄 나 아파하는 가정들도, 경제적으로 파탄 나 힘겨워 하는 가정들도, 건강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가정들도, 자녀들 문제로 인하여 불안 해 하는 가정들도 모두 모두 화창한 이 5월에는 희망의 줄을 붙들고 회복되는 귀한 일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아픔이 없을 수는 없는 것이 인생사이겠지만, 그 아픔을 오늘이라는 언덕을 넘어 기다리고 있는 내일의 희망을 보면서 치유하고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행복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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