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초 전문가 전문희 씨

어머니 시한부 인생 판정에 고향 내려와 약초 캐기 시작

지리산 넓은 자락 토담집 짓고 매화·쑥·뽕잎…부지런히 채집

고된 작업에도 늘 마음은 평온 이젠 산만큼 좋은 곳 없어…

산의 깊은 정기를 받아 산만큼 속 깊은 사람, 지리산을 통째로 품은 듯 드세면서도 순응할 줄 아는 여자. 깊은 산 속 옹달샘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지리산 자락에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색깔을 달리하는 산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산청군 지리산에 산지 14년째 된다는 전문희 씨(47).

지리산에 올라 산야초를 캐러 가는 전문희씨의 모습이 무척 여유롭게 보인다.

건강을 위한 산야초차모임 대표로, 야생차 보급에 앞장서는 전씨가 지난 25일 포항을 찾았다. 산의 성품을 그대로 닮아가는 그는 한때 속세에서 잘나가던 여성 중 한 명이었다. 20대 때 통기타 가수, 패션 모델로 활동하다 가구 사업가로 남부럽지 않은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전공(국문학과)과는 상관없는 인테리어 가구점을 열게 된 계기가 우연히 찾아 들었다. 소액자금으로 뭘 할 수 없을까? 궁리하던 어느 날 결혼한 대학동창 집에 초대받았다. 45평의 넓은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린 친구집 거실에 들어섰을 때 벽에 걸린 초록색 플라스틱 휴지걸이가 거실의 품위를 떨어트리고 있었다. 순간 전씨는 높아진 생활수준에 어울리는 인테리어 제품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 때부터 전씨는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각종 실내장식 제품 디자인에 골몰했다. 재료는 목재로 하되 품위있고 실용적인 디자인에 중점을 두었다. 이렇게 탄생된 브랜드가 '마론헨즈'.

당시 신혼집, 묵은 집 할 것없이 마론헨즈 없는 집이 없을만큼 그의 사업은 성공적이었으며 각 여성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돈버는 게 별것 아니라는 자만도 들었다. 이처럼 잘나가던 그를 산야초 전문가로 만든 지리산 생활은 운명처럼 찾아왔다.

제아무리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보금자리라 하더라도 인적 드문 산중에 여자 혼자 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전씨는 어느 날 고향을 다녀온 오빠로부터 어머니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날로 고향에 내려간 전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의사를 찾아 전전했다. 온갖 검사 끝에 나온 병명은 임파선 세포 상피암. 의사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수술도 소용없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결혼을 안했던 전씨는 사업도 일도 다 집어치우고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 병간호에 매달렸다. 약이 된다는 산야초를 찾아 지리산 그 깊은 골을 헤집고 다녔다. 몸에 좋다는 약초와 야생초를 따다 정성으로 차와 탕약을 끓여 올렸다. 그래서인지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통증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통증없이 3년을 더 살다 가셨다.

"어머니를 위해 산에 들어왔지만 어머니를 보낸 후에도 이곳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저 산이 좋고 풀 향기가 좋아서 산다며 호방한 웃음을 건네는 그는 여전히 산에 남아 산사람이 됐고 앞으로도 산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을 꿈꾼다. 잘나가던 사업가였던 그가 산사람으로 살게 된 사연을 듣기 위해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산 가까이에 살면 아주 작은 산의 변화까지 알아 차릴 수 있다"는 그는 "언뜻 똑같아 보여도 어제와 분명 다른 것이 산으로, 어디서도 이처럼 좋은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께 쏟던 사랑을 고스란히 지리산 뭇생명들에 풀어놓았다. 어머니의 품처럼 자신을 넉넉하게 품어주었던 지리산, 전씨는 그동안 시간 날 때마다 일기형식으로 써왔던 지리산 생활과 산야초에 대한 기록을 모아 2007년 '차 한잔에 담은 산야초 이야기', '지리산에서 보낸 산야초 이야기' 두 권의 책을 펴냈다. 이후 그를 찾는 사람은 더욱 늘었다. 글로만 읽어보고 앞면을 틔운 사람들이 그의 정성 어린 손으로 빚어낸 향긋한 차 한 잔을 맛보기 위해서다.

"책을 출간하고 제 인생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지요.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자연을, 사람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지요."

자연에서 오래 살다보면 달력의 날짜보다 몸으로 먼저 느껴지는 변화가 더 정확할 때가 있다는 그는 봄 햇살에 못이겨 먼저 싹을 틔우는 연두색을 발견하면 죽을 병에 걸렸다가 생명초를 발견한 기분으로 얼른 따서 차를 만들고 싶은 심정이란다.

겨울을 이겨낸 나무의 새순과 풀들의 첫 잎을 따서 만드는 것이 백초차(百草茶)다. 이름 그대로 거의 모든 산야초를 다 넣어 만든다. 찔레순, 다래순, 머루순, 으름덩굴순, 칡순, 청미래덩굴순, 참빗나무, 고욤나무, 산복숭아나무, 가시오갈피나무, 산뽕나무, 두충나무, 고로쇠나무, 인동초, 복분자, 하수오, 두릅, 취나물, 산미나리, 고추나물, 민들레, 질경이, 토끼풀, 우슬 등 재료가 무궁무진하다.

네 명이 이틀 동안 하루 여섯 시간씩 일해도 100g짜리 백초차 한 통이 나올까 말까 하니 수치로는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온다. 아무리 산야초의 효능이 뛰어나다 해도 가공비와 일당이 20만 원이나 되는 차를 선뜻 사 먹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전문희 씨는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산야초 차를 만든다. 값비싼 중국산 차나 일본 녹차에 뒤지지 않는 산야초 차의 효능과 맛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다.

봄이 오면 매화·으름덩굴잎·쑥·솔잎·민들레·아카시아꽃·찔레꽃이, 여름에는 뽕잎·연잎·안동초·칡이 난다. 또 가을에는 국화·감국·대추·구절초가 차의 재료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 풀먹인 바지 저고리를 입고 산 능선을 누비며 온갖 꽃과 풀을 직접 씹어보고 차로 만들어보기를 거듭한다. 재배 녹차와 달리 일일이 산속을 헤매며 따내는 것부터 시작되는 산야초 차. 아홉 번 덖고 아홉 번 비비는 우리나라 전통 제다법인 구증구포법을 사용한다.

나무 주걱으로 쉼 없이 휘젓고 뒤집기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가마솥 앞을 떠날 수가 없다. 비비기에 들어가기 전 찻잎의 열기를 충분히 식혀야 풀 냄새가 가시고 청량한 향기가 유지된다. 그래서 쉴 새 없이 선풍기도 틀고 부채도 부친다. 차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정성 그 자체다.

사람들과 차를 나누는 일은 맑은 정신을 나누는 것과 같다. 차 한잔을 대접하는 일은 육체와 영혼을 함께 선물하는 일과 같다. 때문에차를 만드느라 긁히고 데인 상처로 손발이 성할 날이 없지만 마음만은 더없이 평온해진다.

산을 벗하며 살아온 혼자 살아온 그에게 2년 전 산야초 향기를 닮은 사람이 나타났다. 지리산 생활 12년 만에 고운 감물 웨딩드레스를입고 결혼식도 올렸다. 거침없고 순수한 모습의 전문희 씨에게 반해 그의 평생 반려자가 된 남편과 대문만 열어도 천왕봉이 눈앞에 다가오는 지리산 자락, 그들은 또 다른 지리산의 풍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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