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버들(편집기자)

지난달 26일 SBS 주말드라마 '찬란한 유산'이 47.1%(TNS미디어)라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유산 상속을 둘러싼 갈등과 화해를 기본 얼개로 한 이 드라마는 한동안 이어져 온 '막장 드라마=흥행'이라는 공식을 깼다.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스토리와 영상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에게 '착한 스토리'의 성공은 '착한' 것의 가치가 추락하는 지금의 세태에 시사 하는바가 크다.

주인공인 고은성(한효주 분)은 더 없이 꿋꿋한 아가씨다. 무엇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착한 마음씨의 소유자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위기에 처한 할머니를 구하면서 드라마의 중심에 선다.

고은성의 상대역인 선우환(이승기 분)은 설렁탕 하나로 자수성가한 할머니의 손자로, 유산상속자라는 것만 믿고 분탕질을 서슴치 않는 남자였으나, 은성을 만나면서 변화하는 캐릭터다. 겉멋만 든 무개념의 사나이지만 그럴 수 밖에 없던 상처를 가진 인물로 천성은 악하지 않다.

착한 인물들 중에서도 주목되는 사람은 진성식품의 회장 장숙자(반효정 분)이다. 자신을 구해준 은성과 식솔들을 아끼는 마음에 회사 전직원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충만한 그녀는 드라마를 '착하게' 만드는 중심인물이다. 특히 자신을 대표이사 자리에서 해임하려는 자들에 맞서 직원들이 임금삭감과 주식 반납을 통해 보여준 의리에, 다시 전직원에게 자신의 주식을 나눠 직원주주제를 택한 모습은 단순히 착한 사람의 보은의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그 의미가 크다.

드라마 속 진성식품의 사장 장숙자의 기업관에서, 우리 사회 갈등의 핵인 노사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기업은 한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다. 최초에 설립하는 것은 한 개인일 수 있지만 그 기업이 성장할 때는 기업을 이루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에너지가 작용한다. 장숙자의 경영마인드에서 특이할 점이 바로, 기업을 자신의 사유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가치관의 기저에는 자신의 직원들을 위해 나를 포기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나를 포기하면서 타인을 위한다는 것. 그것은 가족에게 가지는 마음이다. 그러한 마음의 진정성은 존경과 선망으로 돌아온다. 직원을 향한 희생의 마음이 가진 진정성이, 조직을 울리고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찬란한 유산이 남긴 메시지가 아닐까.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가진 자가 그렇지 않은 자들에 가지는 배려가 아니라 장숙자처럼 직원을 가족으로 여기는 동지의식에서 비롯돼야 한다. 찬란한 유산의 스토리텔링이 권선징악이란 단순한 구조 아래 부자의 재산 환원이라는 도덕성을 주제로 하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현실의 부조리가 장숙자의 진성식품에는 없다. 착한 사람은 착하게, 노력한 사람은 노력한 만큼 보상 받는다. 기업주가 직원들을 기업의 한 부품이나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가족으로 생각하며 그 마음이 직원들에게도 전달되는 이상, 어떤 갈등과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상생의 돌파구는 반드시 있는 것이다.

평택 쌍용차 노사의 협상이 극단으로 치닫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늘. 이 땅에, 찬란한 유산이 남긴 기업문화가 뿌리 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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