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훈<포항강변교회 목사>

세월의 흐름은 신속하다. 1월의 중순을 지나는 시점에서 작심삼일의 모습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돌아보게 된다. 항상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으로 살수 있다면 좋으련만 왜 인간이란 존재는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렇게도 쉬운 것일까? 변화를 원하면서도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지 못하고, 성장을 원하면서도 성장을 위해는 부지런하지 못하고,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원하면서도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우리네 사는 모습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다 불현듯 남보다 성공출세 해 보기 위해서 ‘빨리’의 유혹에 빠질 때가 있다. ‘빨리’라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 할지라도 왜 그런지 ‘빨리’라는 말에는 ‘대충 대충’이라는 의미의 뉘앙스가 숨어있는 것 같아서 한 번 더 곰씹어 본다. 사실 ‘빨리’라는 이 말은 개발시대에서 통용되었던 일상의 언어였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자주 들을 수 있는 일상의 언어로 통용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빨리 병’에 걸려있는 사람들의 감소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예를 한탕주의, 복권, 도박, 사기 등은 한 번에 일확천금하여 부를 누릴 수 있는, 즉 빨리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서 사람들은 그런 것에 자신의 생각과 시간과 몸을 아깝다하지 않고 투자한다. 더 많은 시간 불편하고 고통당해도 한 순간에 그 동안의 불편함과 고통을 다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얄팍한 자기 속임수에 빠져서 헤어 나올 줄 모르고 점차 더 피폐함과 반복되는 어려움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개인이나 사회가 건강하고 밝아지려면 ‘빨리’라는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필자는 외국 여행을 많이 해 보지는 않았지만 미국이나 중국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는 여유로움이 몸에 젖음을 보았다. 문화적인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여유로우니 도로의 차량들도 여유롭고, 세상이 여유로 충만해 보였다. ‘빨리’라는 삶의 방식에 젖어있는 내 자신이 답답할 정도로 그들은 느리게 움직였고, 실제로 그들은 느린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문득 시인 강은교 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의 수필집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달팽이는 그렇게 느리므로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라는 생각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대체적으로 사람들의 심리 속에는 빨리해야만 무엇인가 이룰 수 있고, 느리면 실패할 것이라는 것이 자리를 잡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정작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빨리 달리는 것보다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가? 가 우선적이 되어야 한다. 신경직 님의 ‘격려는 나의 인생코치’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미국의 가수이며 라디오 방송인으로 크게 성공한 에디 캔터(Eddie Cantor) 는 시골에 사는 어머니로부터 한 문장 밖에 되지 않은 짧은 편지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 편지에는 ‘에디야, 너무 빨리 달리지 마라. 그렇게 하면 좋은 경치를 보지 못하고 지나친단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때부터 에디는 열심히 달리다가도 다음과 같은 4개 조항을 수첩에 적어놓고 스스로의 발걸음을 조절하였다. 첫째, 나는 맹목적인 야심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아니면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해 달리고 있는가? 둘째, 나는 나의 경력 쌓기 위해 달리고 있는가. 아니면 가족의 행복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셋째, 나는 물질적인 성공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아니면 인생의 참다운 보물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넷째,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아니면 남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인생이란 어차피 장거리 경주이다. 쉽게, 빨리 달릴 수 있는 과정이 아니다. 쉽고 빠른 길은 그만큼 쉽게 또한 빨리 무너져 내릴 수 있다. 빨리 달리기만 하다보면 성공출세보다도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 삶이란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더 많은 행복과 감사와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빨리 달리다 보면 행여 이런 것들,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놓칠 수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작심삼일의 인생도 문제지만, ‘빨리 빨리’나 ‘대충’의 인생도 고쳐야 할 삶의 방식이다. 어렵고 답답한 경제적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충동과 유혹은 누구에게나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주변에서 작은 것에서 행복과 만족을 배울 수 있다면 더 아름답고 소중한 내일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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