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기자

우리는 대형재난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예고된 인재’라는 말을 곧잘 한다.

지난 1995년 대구 상인동 지하철공사장 폭발사고에서도 그랬고, 2003년 대구 지하철방화사고가 그랬으며, 같은 해 청도 버섯농장화재사고도 역시 인재라는 수식어가 뒤따랐다.

하지만 우리는 사고가 발생하면 호떡집 불난 듯이 대비책을 마련한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망각속으로 빠지고 만다.

포항지역에 24년만의 폭설이 내린 지난 16일 이른 아침 20여분이나 걸려 타이어에 스노우체인을 감고 거리를 나섰던 기자는 ‘우리의 가슴에는 안전불감증이라는 병이 암처럼 존재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이날 새벽부터 쏟아진 눈이 오전까지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폭설로 변해 도로에는 이미 상당량의 눈이 쌓였지만 눈길운행의 기본이나 다름없는 스노우체인을 감은 차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같은 사정은 오후들어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눈이 얼어붙은 17일 오전까지 전체 차량의 70%이상이 스노우체인을 감지 않은 채 그야말로 용감무쌍하게 거리를 활보했다.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대부분의 운전자가 베테랑급이어서 눈길운행에 나섰는지 모르겠지만 20여년만의 폭설에 아무런 장비도 갖추지 않은 차량들이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물며 초보운전자나 다름없는 사람들조차 아무런 장비도 갖추지 않고 차량을 몰고 나온 포항의 도로는 과연 얼마나 안전한 상태였는지 의문스럽기 그지 없다.

특히 교통사고의 위험을 가장 잘 느끼고 있을 상당수의 개인택시운전자들마저 스노우체인을 감지 않은 채 손님을 태우고 운행에 나서 아연실색케 만들었다.

다행히 이틀동안 대형교통사고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사고가 일어났다면 우리는 과연 뭐라고 말을 했을까?

아무리 비싸도 10만원미만인 스노우체인만 갖췄더라면 지켜낼 수 있는 생명을 준비되지 않는 무모함으로 잃었다면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참으로 많은 눈이 포항을 덮어버린 아침 기자는 시민 모두가 생명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주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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