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재 훈 <포항강변교회 목사>

세상은 아직은 휴가의 연속선상에 서 있다. 아직은 휴가 인파들의 차량이 고속도로든 지방도로든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고 교통방송은 시간마다 알려주고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팔월의 중간이다. 이미 휴가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소식도 접해보고, 휴가 다녀 온 이후로 피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곤 한다. 여름 한 철의 강렬한 태양 볕만큼이나 삶의 열기도 뜨거웠었다. 그 열기를 좀 식혀 보려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휴가’ 라는 사치스런 말로 자신을 치장해 보았던 여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부터였던가? 아니 어느 날 밤 부터였던가? 뜨거운 열기 바람 뒤편에 스산한 가을바람 한 자락씩 피부에 와 닿는 것을 느낀다. 살짝살짝 지나치는 바람이지만 분명 그 바람은 가을바람이다. 문득 가을이 왔구나! 하는 계절에 걸맞지 않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가을은 여름날의 열기 속으로 살며시 소리 없이 찾아와 있다. 한꺼번에 오기에는 너무 민망스러워서인지 어쩌다, 정말로 어쩌다 작은 바람이 되어 스쳐 지나고 있다. 뜨거운 열정의 계절 뒤로 차분한 가을이 오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 온다는 것은 분주했던 여름날을 돌이켜 보라는 하나님의 섭리일 것이다. 여름날 같은 인생살이만이 전부가 아님을 돌아보게 해 주는 그 분의 의도일 것이다. 여름날 동안 지쳐 있던 심신들, 마음은 분주하면서도 자신의 내면의 세계는 공허함으로 채워져 있음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각자의 일터로, 가정으로 돌아온 상한 심령들을 향한 그 분의 계획일 것이다.

이제는 모두가 침착해져야 할 때가 왔다. 산과 바다로 몰려다니면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동안의 휴식을 가졌다면 이제는 조용히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가꾸어야 할 때가 왔다. 인생이란 양면성의 존재이다. 여름 속에서도 가을의 소리를 듣듯이 인생도 그렇다. 열정 뒤에는 우울함이 있다. 군중들 배후에는 외로움도 있다. 어느 한 쪽만을 고집하면서 살 수만은 없다. 여름날의 열정이 있다면 가을날의 차분함과 침착함도 있는 것이다. 이제는 삶의 성장과 성숙함을 위해서 생각의 깊이를 채워야 할 계절이 찾아오고 있다. 무엇을 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인가? 를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 찾아오고 있다. 이미 와 있다.

지체 장애를 가졌으면서도 건강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건강한 정신을 가진 서강대 장영희 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 을 읽어가다 문득 이 시 한 편 옮기고 싶었다.

‘걸인 시인’이라고 알려진 영국 시인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의 ‘가던 길 멈춰 서서’ 라는 제목의 시다. “ 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소처럼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 숲을 지날 때 다람쥐가 풀숲에 개암 감추는 것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눈길과 발 또 그 발이 춤추는 맵시 바라볼 틈도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미소가 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여름 속에서만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참으로 슬퍼질 것이다.

너무 복잡하고 분주하고 바쁘고 피곤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어수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을 속의 인생도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모두가 떠났던 자리로 돌아올 때가 되었다. 휴가철도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

인파로 가득 찼던 바닷가도 파도소리만 남아 외롭게 일렁거려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계곡 속의 인파도 각각의 제자리 찾아가고 맑은 물소리만 고요히 들려올 때가 다가오고 있다.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가을이 오는 소리 앞에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가던 길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이웃을 돌아보며, 자신의 삶의 현 위치를 살펴보아야 할 때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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