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재 훈 <포항강변교회 목사>

보이차(普 茶)를 만난 지 만 1년이 지났다.

아직은 우리 주변에서는 보이차가 생소한 차다. 어쩌다 전통찻집에서 만날 수는 있지만 보편적이지는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마시는 보이차를 누군가에게 소개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보이차는 최소한 3-40분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차다. 한두 잔 마시고 그만 두는 기호품의 일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차를 마시려면 시간적인 여유를 둬야한다.

보이차는 섭씨 온도 100도의 끓는 물에서 우려내야 진 맛을 알 수 있는 차이다. 그리고 첫 잔부터 마지막 잔까지의 찻물의 빛깔은 잔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너무 아름답고 감탄스럽다.

그리고 그 맛도 향도 시시각각 변한다. 그래서 나는 보이차에 빠졌다. 맛에 반했고, 향에 반했고, 빛깔에 반했고, 효과에 반했고, 그리고 여유로움에 반했다.

오늘 아침은 어제까지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가을바람이 서재 창문으로 스며들었다. 초가을 바람 앞에 내 가슴은 완전무장해제 당하고 말았다.

지난여름의 삶을 돌아보며 찻상 앞에 앉아 보이차를 마셨다. 몇 잔 마셨을까? FM 방송에서 피아노 소품 ‘로미오와 줄리엣’이 흘러나왔다. 순간, ‘어! 이것은 아닌데..보이차를 마시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울리지 않는데....’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차와 음악의 만남은 순간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중국차를 마시려면 중국 음악 즉 보이차의 원산지인 소수민족의 한이 서려있는 음악을 들어야 어울린다. 반면에 ‘로미오와 줄리엣’은 커피를 마시면서 감상해야 할 음악이다.

어색한 만남, 동양과 서양이 나의 서재 찻상에서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보이차 속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빠져들고, 로미오와 줄리엣 속으로 보이차가 흘러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약 5분 정도의 연주가 끝이 난 이후, 삶이란 어쩜 어색한 만남에서 시작하여 서로를 포용하고 어울림으로 승화되는 과정인 것을....

보이차는 중국 남방의 운남성 곤명지역에서 생산되어 보이지방에 집하되어 판매된다고 한다. 그들은 소수민족으로 서러운 삶을 보이차 속에 묻어놓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민속음악을 들으면 들을 수록 서러움이 묻어 있음을 알게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또 어떤가? 사랑하면서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으로 막을 내린 비극적인 소설 속의 사랑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연극으로, 영화로 만든 것이 아닌가? ‘동양과 서양, 차와 음악’을 비교한다면 공통점이 없다.

그러나 슬픔과 애환, 그리고 삶을 이야기 한다면 ‘보이차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은 바로 우리네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나와 다른, 또 다른 이웃과의 관계일 수 있지 않을까? 서로를 향한 차이점만 따진다면 아마도 우리네 인생살이는 삭막하고 힘들어질 것이다.

오히려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면, 또한 나와 다름을 포용할 수 있다면 우리네 세상은 얼마나 또 아름다워질까?

어차피 세상에는 나와 똑같은 사람도, 생각도,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를 향해 배려하고 포용하면서 서로의 삶을 배워가고 공유하고, 그리고 감동할 수 있다면 그것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 ‘차와 음악’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 그 가운데 숨어있는 삶이 무엇인가? 가 중요하다.

‘네 것, 내 것’만의 소중함을 고집하면서 살아온, 그래서 이웃과의 관계가 삭막할 정도로 변해가는 이 현실 속에서 ‘보이차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처럼 우리네 삶속에서도 이런 만남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보는 아침이다.

보이차를 마시면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슬픈 사랑을 생각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들으면서 중국 변방의 소수민족들의 삶의 애환을 마실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귀한 만남이 될 수 있을까?

지금도 가을바람은 나의 서재를 가득 채우고, 그리고 출입문을 통하여 휭 하니 빠져 나가고 있다.

또 다른 누군가의 가슴을 헤집어 놓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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