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서예가 석계 김태균

석계 김태균

"스스로 익혀서 터득하라"

이 말의 의미를 알아듣는 소수의 사람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는 사람,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도리를 중요시하는 대쪽같은 선비가 영주에 살고 있었다.

절제된 삶, 무욕의 삶을 살고 있는 서예가 석계 김태균(金台均.77). 그는 안동 유가 명문의 후예로 태어났다. 자연스레 서예는 가업으로 정진했으며 일생을 서예연구에 전념한 사람이다.

서도가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은 탓에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항은 거의없다. 취재 요청만 오면 어디론가 숨어버리기 때문이라고 부인이 말한다. 하지만 서단에서는 안동·영주지역 선비로 제자만 해도 족히 100여명은 헤아린다.

김태균은 그의 나이 서른 살때 대구에서 활동하는 남석 이성조선생의 소개로 시암(是菴) 배길기를 만나 사사했다.

시암 배길기가 누구이던가. 1965년 한국 서예가협회 초대 회장이 됐으며 1958∼1983년 동국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를 비롯, 한글·전각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연구했고, 특히 전서에 뛰어나 독보적인 경지를 이룩한 사람으로 예술원상·국민훈장 석류장·보관문화훈장 등을 받았지만 언제나 고요와 평정을 잃지 않은, 당대 다시보기 힘든 격높은 서예가로 회자된다.

배길기선생의 영향을 받은 석계 김태균 역시 배길기선생처럼 각종 예술분야에 깊은 조예를 갖고 있다. 특히 초서 서각에 능한 김태균을 문학박사 이동영씨는 예로부터 서예란 "그 내력을 보고 세계(世系)를 중하게 연긴다"며 석계의 성장이 가문적 전통에서 초석이 놓아졌고 좋은 스승을 사사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이룬 사람이라 칭했다.

중년의 나이에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 경북미술대전 심사위원, 현대미술초대전, 한국서예가협회초대전, 대한민국제서법초청전, 한·일교류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한국현대서예전, 한국서예백년전 등 두각을 나타냈으나 그는 이후 은둔의 삶을 살아간다.

"정말 바르게 하고 싶었는데…." 말끝을 흐렸다.

서단에서 일체의 활동에 손을 뗀 그는 안동대학교와 계명대학교에 출강해 후학을 가르쳤다.

"서예를 공부할 사람은 바탕을 튼튼하게 닦아야 한다" 이는 김태균이 서예입문자들에게 강조하는 대목이다. 고전을 철저히 분석하고 고전에 의해 공부해야 할 것이란 그의 유지를 그대로 받든 동호인들도 스승처럼 분주하고 장황한 삶은 살지 않는다.

현재 석계 김태균의 문하에는 '교남서단'을 운영하는 70여명의 회원이 있다. 서실은 회원 자치제로 운영되며 매년 정기전을 갖고 있다. 색다른 점은 노인들이 많다는 점.

하지만 경로우대를 적용하고 있어 80살이 넘은 회원과 아이들에게는 회비를 받지 않는다. 이들 회원들중에는 성정이 반듯하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많아 크게 자랑거리라고 한다.

어제 들어온 사람이나 10년된 사람이나 똑 같이 대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한미한 느낌도 들지만 과묵하고 진지했기 때문에 서도정신에도 그러했으리라. 그래서 기와 덕을 겸비한 청아한 서품이란 평도 마다하지 않았으리라.

"유혹을 멀리하고 절제하는 가운데 작품활동을 해야 한다"는 석계도 서울에 가서 "출세해 부를 누리는 사람을 보면 후회되고 집에 오면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느낄 것"이라고 부인은 말한다.

지금은 영주시 휴천동 옛 한옥에서 지난 해 명예교수로 퇴직한 부인과 말벗이 돼 살아가고 있다. 부인이 화가여서 속 깊은 대화가 가능하다. 더구나 활달한 성격의 부인과는 대조적인 성격을 지닌 석계 김태균는 이것이 부부간 '조화'라고 한다. 정반대의 성격이 만나야 서로 보완해가며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출타는 일주일에 2번, 영주·안동 '서도회' 회원 지도를 나간다. 40여년의 역사를 가진 이 서도회는 지역에서 유일하게 김태균이 지도하는 단체다.

하지만 제자들을 일일이 다그치듯 서단으로 이끌어내는게 아니라 항상 마음 속에 담아두고 멀리서 지켜보며 조언하는 타입이라고 '삼어당' 김동진씨는 말한다. 이 역시 스승 배길기를 닮았다.

그동안 자신이 배출한 문하생들 중 명망있는 사람들만 모인 '교남서당'은 80~90명의 회원이 있으며 전국에 흩어져 활동중이다. 이들은 스승의 만류에도 불구, 서예동호인들과 함께 지난 해 김태균의 묵적(墨跡)을 서집으로 상재·발간했다.

"서예도 영어로 할 수 있으면 세계화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부인의 말에 미소만 띠던 석계는 "영어만 잘하는 것보다 문화전파 능력을 갖춰야 할 것"이라며 현대인들이 지녀야 할 전문성을 강조한다.

초등학교 5~6학년을 위한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는 부인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외조를 아끼지 않아야 할 입장에 처한 김태균의 집에는 각종 고(古)도서가 넘쳐난다. 그의 부인이 아끼는 동화책 600여권과 영어 동화책 100여권, 50~60년이 넘은 시집 등 각종 서책을 보관하고 있다. "영주에서 번 돈은 영주를 위해 써야 한다"는게 이들 노부부의 철칙.

때문에 영주시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어린이 도서관은 충분히 운영·가능할 것이란 기대를 비친다.

서예는 어떤 예술 보다 우러나옴을 중시하는 예술세계다. 때문에 "어떤 정신세계를 담아냈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質)과 성격이 달라지는 만큼 "좋은 문장을 선택해 읽고 그 문장에서 깨달음을 얻으려 노력하고 또 그 문장을 마음의 거울로 삼으면 정·중·동(靜中動)의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석계 김태균 약력

현대미술초대작가(국립현대미술관)

한·일교류전(한국문화예술진흥원)

국제현대서예전(예술의 전당)

한국서예100년전(예술의 전당)

오늘의 초서·전각전(예술의 전당)

서애류선생서거 400주년추모제전

2009 세계서예 전북비엔날레

대한민국·경상북도 서예대전 심사

한국서예가협회·한국미술협회 회원

대구 대백화랑·서울아람문화회관, 안동시민회관 개인전

/주소:안동시 휴천동 전화:(054)632-2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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