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펜클럽 이사 정민호 시인

이것이 하나의 과정일까 형산강(兄山江) 물

언덕 위엔 몇 그루 과(果)나무 숲들,

시나브로 지고 있는 잎들의 내부(內部)로

10월의 바람은 허리에 둘려 화사스런 말씀을 낳고

돌아가는 자국마다 길목에 빗물이 내릴 때

저기 비에 깔린 선로(線路)를 밟고 어디로 갈거나

가서 맞닿는 산과 들

전쟁이 오가던 수수밭을 지나서

연(連)이어 간지름 필 수 없는 신기루(蜃氣樓)위에

저뭄이 일 듯 지평(地平)은 또 하루를 덮는다.

무더기로 날라난 무고(無辜)했던

너무나 싱싱했던 예쁘고 아릿다운 이름,

무더기로 날아가 걸렸던

반짝이는 금빛 쇠가시 아래

지쳐 누운 얼굴들이 저렇게 걸려서 잠을 익히는

침입할 수 없는 가을의 과수원 안에서

햇볕에 익어 가는 과일은 확실히 우리들의 손실(損失)이다.

정민호 등단 시 '이 푸른 강변(江邊)의 연가(戀歌)'

1966년, 27세의 나이로 '사상계(思想界)' 신인문학상에 당선돼 당당하게 한국문단에 등단한 정민호 시인(70).

그는 당시 "시적 천재성을 가졌다"는 사람들의 칭찬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특히 제9회 신인문학상에 당선된 시 '이 푸른 江邊의 戀歌'는 포항·경주의 젖줄로 흐르고 있는 역사의 강물인 '형산강'을 노래해서 일약 유명세를 탔다.

이 후 정민호 시인은 70년대 한국시단의 젊은 시인으로 활약했고 주로 한국의 전통과 자연, 국토의 아름다움을 시로 승화했다.

1939년 신광면에서 출생, 포항중학교와 포항고등학교를 마치고 문학에 대한 큰 꿈과 동경을 가지고 당시 박목월(시인), 김동리(소설가), 서정주(시인), 조연현(평론가), 이광래(희곡)가 교수로 있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지금 중앙대예술대학에 편입됨) 에 입학했다. "이것이 문학에의 출발이었다"고 한다.

서울의 지인들이 서울 생활을 권유하며 함께 작품활동 할 것을 권유했지만 집안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절충한 것이 40여년을 살고 있는 경주다.

그동안 펴낸 시집은 첫 시집 '꿈의 경작'외 13권. 이외에도 수필집 '나의 사랑 요세피나' 와 자신이 운영중인 '한문교실'수강생들의 한문교육을 위한 한문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현토 주해했고 , 유교 경전인 논어(초), 대학중용, 명심보감 주해 등 한문 이해에 관한 책도 저술중에 있다.

"유소년시절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한문학자인신 조부 학강 (鶴岡)선생께 한문을 수학한 것이 내 인생의 큰 수확입니다"

작가에게 있어 고향이란 부모와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그 안에 역사가 있고, 부모라는 삶을 되돌아보면 세월이 지날수록 살아가는 것이 이런 것, 아름다움은 이런것이란 것을 가르쳐주기때문이라고 한다.

경주문협 초창기에 정민호 시인은 지금의 경주원로·중진시인들과 함께 사비를 털어 손수 김밥 도시락을 준비해가며 각종 백일장을 치렀다. 때문에 오늘의 경주문협을 반석위에 올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또 동리·목월이란 거대한 문학인이 경주의 버팀목으로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있기에 후배들을 위한 배려도 아끼지 않는다.

그동안 풍부한 사람들과의 관계로 "자신의 시심은 오히려 깊어지고. 살아갈수록 사람에 대한 생각도 깊어지는 것이 이 나이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는 정민호시인.

매일, 그때 그때마다 대면하게 되는 새로운 감정들, 그것에 대한 기준도 새로워지는 것이 연륜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드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동안 "독자들이 항상 곁에 있어줘 고맙다"는 그는 사물과 사고의 아름다움을 시로 풀어내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줄 아는 시인이다. 때문에 그의 가장 큰 독자였던 아들이 시인이 돼 활동중이며 성악가가 돼 예술인의 길을 걷는 아들과 며느리도 있다.

그의 시 중에는 읽어도 해독되지 않는 시는 없다. 쉬운 시로 가족들이 아버지의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까.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그 역시 중·고등학교 때는 문학에 뜻을 두고 교내 및 외부 각종 백일장에 출전해 입상한 것이 '문학을 위한 출발의 바탕이요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던가.

매일 새벽이면 일어나 시창작에 매달렸고, 그러던 어느 날, 그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다시 우뚝 선 그는 40년 문학 활동과 함께 교단을 정년퇴직 하고 지금은 저작 생활에 열중하고 있다.

"더 나이들기 전에 후배들을 위해 남겨두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현재 경주향교 사회교육원에서 한문지도 강사로 활동중인 정민호 시인은 그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심중이다. 그리고 써야 할 시도 많아 오히려 지금에사 시간을 쪼개써야 할 형편이라며 웃는다.

"인간의 생로병은 생활 속에 따라다니는 미해결의 그림자다. 그 속에서 예술이 빚어지고, 가능성을 찾아내고 새로운 차원의 산물을 모색하는 가운데 나의 노래도 성숙할 것이다. 혈육관계가 그렇고 자연이 주는 희비가 또한 그렇듯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찾기 위해 한 개의 모과를 씹듯 나 는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이는 정민호시인이 정한의 세월을 돌아보며 쓴 사색 한 토막이다.

출생- 1939년 8월 6일 (경상북도 포항)

데뷔- 1966년 사상계에 시 '이 푸른 강변의 연가'

학력-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 학사

경력- 경북문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경주 지부장

경주교양한문교실 원장

동해남부시 동인

무크지 시와수필 발행주간

한국문협 이사, 한국현대시협 부회장

한국예총 경주지부장

한국펜클럽 현임이사

수상- 2001년, 제16회 펜문학상

1995년, 문예 한국상

1990년, 경주시 문화상

1981년, 경북문화상

금복문화예술상, 한국예총 예술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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