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풍기 '약선당' 운영 박순화 씨

경북 풍기에서 인삼요리 전문점인 '약선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순화씨

"각종 질환자들로 부터 주문밥상도 받아요"

경북 풍기에서 인삼요리를전문으로 하는 '약선당' 박순화씨.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사람, 그것도 서양화를 전공한 사람이 음식연구에 매달렸다면 시각적인 면에서 손님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추었다.

소백산, 질 좋은 임삼곶이란 천혜의 환경이 또한 그를 약선(藥饍) 요리연구가로 만드는데 손색없다. 하지만 그는 약선요리에만 15년 년을 매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터득한 것이 '음식이 바로 약'이라는 것. 음식으로 병을 고칠 수 있어야 하며 음식이 정신을 맑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건강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약선요리밥상

먹어서 약이되는 요리를 연구하다 지난 2003년에는 약선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 '약선당'을 개업하고,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체계화 하기 위해 '약선요리연구소'도 설립했다. 그야말로 '신토불이' 약이 되는 음식만을 만드는 집을 개업한 것이다.

"고생끝에 소백산 밑에 약선당이란 깃발을 꽂았지요."

'음식은 종합예술'이란 철학을 가진 그는 영주에 숨쉬는 선비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옛선비가(家)에서 행해오던 선비밥상을 재현하고 있다. 선비밥상, 선비촌, 약선요리 등 영주를 대표하는 이미지 3박자를 맞추기 위해 자연환경이 최적인 소백산 밑에서 순후한 인심을 닮은 선비밥상을 개발한 것이다.

'약선당' 외부 전경

선비밥상은 옛선비가처럼 손님 숫자대로 한상 한상 따로 차려진다. 환자들도 자신의 밥상을 주무해 자신이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다소 번거롭지만 손님들이 반찬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데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동양대학교 학생식당을 운영할 때 입만 열면 밥 이야기를 쏟아내더니 언제부터인가 서울에서 본격적인 음식 공부를 한 후 인삼요리로 식당까지 차렸다고 한 지인은 귀뜸했다.

밥공부를 위해 매주 서울로 올라간 그는 황혜성궁중음식연구원에서 한국 전통 궁중요리를 배우고, 중국요리전문가 이향방으로부터 중국 전통요리를 배웠다. 연세대·숙명여대에서 외식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중앙대에서 인삼산업 최고전문가 과정을 들었다. 이 과정에 꼬박 3년이 흘렀다.

몸에 좋은 음식에 대한 그의 열정과 맥을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풍기 인삼이었다.

인삼김치부터 시작했다. 1년 열두달 같은 조리법으로 김치를 담가보았다. 그 결과 11~12월 김치가 가장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인삼을 넣고 담근 김치는 3년이 묵어도 여전히 처음 김치처럼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인삼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밥·죽·과자가리지 않고 만들었다.

"인삼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100여가지가 넘습니다"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모아 지난 2003년 가을엔 '약이 되는 인삼요리'라는 책도 펴냈다. 이듬해엔 '약선당(藥膳堂)' 인삼요리전문점을 냈다.

이 식당이 '약선'이란 특징을 담아내 전국적인 관심을 끌자 박순화원장의 딸 부부가 체인형식으로 경기도서 운영하는 '약선당'은 벌써 특별한 식당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소백산의 풍부한 자연재료, 희박산 정신도량, 유황온천은 영주의 3대장점입니다."

이 장점을 살리기 위해 박시가 개인적으로 노력한 일들을 주위에서는 한마디로 "대단하다"고 말한다. '약선당 식당을 개업한지 6년째인 지금은 길이 훤히 보이지만 그동안 문닫을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향토성을 살리기 위해 이를 악물고 연구발전시킨 것이 오늘의 약선요리연구소이며 약선당이다.

현재 약선요리 특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씨의 손은 '신의 손'이다. 그의 손을 거치면 소백산 깊은 곳에서 자라는 야초도 훙륭한 먹거리가 된다. 밥상에 차려진 10여가지가 넘는 반찬 중에는 생선도 있고 육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반찬은 약초요, 인삼으로 만들어 남기지 않고 다 먹을 수 있다. 건강식이란 욕심이 크게 한 몫을 하는 까닭이다.

음식보다는 그림에 재주가 있었다는 박씨.

풍기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서울로 유학가 응용디자인을 전공했다. 결혼후에는 시할머니까지 4대가 모여 사는 종가 종부로 들어갔다. 요리를 몰랐던 그는 밤마다 부뚜막에 혼자 앉아 하나씩 차례로 요리를 만들어 보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어느정도 요리에 자신이 붙을 때쯤, 그는 풍기 읍내에 경양식 레스토랑을 냈다. 사실은 요리보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복잡한 종가 살림살이 보다는 더 나을 듯 했지만 이외로 레스토랑은 붐볐다. 돈가스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된장소스를 뿌려내는 그의 독특한 돈가스가 인기를 끈 것이다.

인삼요리전문점으로 출발했지만 자신과의 싸움끝에 이루어낸 약선요리,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관계기관의 지원책이 절실해 보이는 대목이다.

앞으로 약선대학을 만들고 회원제 운영 프로그램을 만들어 약선요리를 보급시키고 싶다는 박씨.

아픈 사람을 음식으로 치유할 수 있는 가칭 약선건강대학도 자신이 만들어야할 의무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꼭 이루어 갈 것이라 다짐하는 후진양성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해야 할지, 어떻게 양성해야 할 지가 가장 큰 고민이며 숙제라고 한다.

매일 아침 운동삼아 오르는 뒷산에서도 낯선 풀이 있으면 입에 넣어보고, 음식을 만들어본다. 집 앞엔 소나무며 오가피, 산수유, 오미자나무를 조금씩 기른다. 솔잎차 만들고, 오미자 백김치를 만들기 위해서다.

'밥교수'의 이같은 열정과 상상력은 어디서 나올까. "사명감이 있으니까 하는 거죠. 지천으로 버려진 풀들도 알고 먹으면 다 약초예요. 그것도 제철에 먹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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