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복의 명산 트레킹 2 - 4 중국 태항산대협곡

만선산 신룡협으로 들어서는 협곡

여기서부터는 '만선산풍경구(萬仙山風景區)'다.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서니 거대한 물줄기를 쏟아 내리는 마검봉폭포(磨劍峰瀑布)가 시원스레 가슴을 쓸어내린다.

 

깊은 협곡을 이리저리 빠져 나오니 이 협곡의 이름이 '신룡협(神龍峽)'이다. 신룡협 입구인 '소철(小綴)'이란 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다. 며칠 전부터 '송화주(松花酒)'에 반한 청송 김동억 이사가 재촉해 상(床)에 오른 '송하주(宋河酒)' 때문에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다. 이 넓고 넓은 중국 땅에서 이름 비슷한 술이 얼마나 많겠는가. 비슷한 이름의 술맛 또한 감칠맛이 나 다들 기분이 좋아 보인다.

 

점심 후, 만선산의 주봉격인 '오봉산임해(五峰山林海)' 트레킹을 위해 남평(南坪)에서 도보로 오른다. 해와 달과 별이 있는 천연석 '일월성석(日月星石)'과 '흑룡담폭포(黑龍潭瀑布)', 아름다운 계곡 단분구(丹分口)까지 올랐다 하산한다.

만선산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김영국 포항연맹회장과 김규태 이사

 

먼저 내려간 일행들이 마을 입구 상가에서 과일점 아가씨와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익은 듯하다. 세계 어디를 가도 손짓, 발짓, 얼굴표정으로 안 통하는 곳이 없다. 인류의 공통점 이랄까. 역시 지구는 하나임이 틀림없다. 웃는 모습이 해맑은 중국아가씨의 웃음소리에 넋 나간 여행객들이 순박하게만 보여 지는 것도 자연의 이치가 아닐까.

 

버스에 올라 잠깐 조는 사이에 중국의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소박한 산골마을, '곽량촌(郭亮村)'에 닿았다. 곽량촌 입구에서 아래로 깊은 협곡이 나 있고 흐르는 물가에서 학생들이 그림그리기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협곡의 풍광과 곽량촌 일대가 화폭에 아름답게 그려진다. 곽량촌을 둘러보니 중국영화에 나오는 옛 모습 그대로다.

 

동굴도로 절벽장랑

곽량촌에서 내려오는 길이 예사롭지 않다. 절벽을 뚫어 길을 만들었다. 수직 절벽 중간에 동굴도로를 만든 것이다. 설명에 의하면 13명이 5년 동안 공사해 1977년 완성한 1200m의 동굴도로인 '절벽장랑(絶壁長廊)'을 만들었다.

 

군데군데 바깥을 볼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 놓았고 자연채광도 되도록 되어 있다. 신기하기만 하다. 이 곳 뿐만 아니라 다른 협곡에서도 몇 군데 더 절벽장랑이 있다고 한다. 중국인의 기발한 발상은 도무지 끝을 모르겠다. 우리 일행이 가지 못한 곳이지만 태항산대협곡에는 상상이 안 되는 여러 가지의 진기한, 인간이 빚어 놓은 명물들이 많다.

 

흑룡담폭포

그 중 임주(林州)에 있는 '홍기거(紅棋渠)'라는 인공수로가 대표적인 것으로 중국 국민들에게 대단한 자부심을 일깨워 주는 대역사(大役事)였다.

 

1960년,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 심한 고통을 받고 있던 하남성 북부 지역 주민들이 물을 끌어 들이기 위해 10년 동안 험준한 태항산을 뚫어 수로를 만들었다는 현대 중국 건설의 새로운 역사를 쓴 현장이 요즘은 각광받는 관광지로 변하여 임주(林 州)를 먹여 살리는 또 다른 재원이 되고 있다. 당시 주은래(周恩來)가 "현대 중국의 가장 위대한 업적중 하나"라고 치켜세운, '홍기(紅旗)를 꽂고 만든 거(渠:도랑)'라는 뜻의 홍기거(紅旗渠)는 1250개의 산을 지나 211개 지하통로, 152개의 고개를 넘어 약 1,500㎞의 어마어마한 인공수로를 완성했다고 하니 가히 중국 국민들의 대공정을 짐작케 한다.

 

은허박물관 관람을 마친 일행들

태항산의 암벽을 뚫어 만든 이 인공수로를 '인조천하(人造天河)'-'사람이 만든 하늘의 하천'-라 불리고 있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음이다.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에 버금가는 국민정신 계몽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모택동의 중국'이 또 한 번 섬뜩해진다.

 

곽량촌 동굴도로인 절벽장랑을 지나 '만선산풍경구' 입구에 도착했다. 태항산대협곡 답사트레킹의 마지막인 왕망령~만선산 구간 8시간 트레킹이 끝났다. 짙은 안개로 왕망령 일대의 장관을 놓친 게 가장 아쉬운 일이지만 3일간의 트레킹으로 중국의 그랜드캐년 태항산대협곡의 일부를 접한 감흥(感興)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태항산대협곡 트레킹은 우리 산꾼들에게도 흥미로운 코스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답사 온 보람을 느낀다. 시간상 많은 곳을 보지 못했지만 그랜드캐년을 능가하는 대협곡이 중국에 있다는 사실이 흥분을 감출 수 없다. 지금까지 이런 비경(秘境)을 감추고 있는 중국사람 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태항산대협곡은 평균 1200~1300m의 고도에 난 절벽산길을 통한 트레킹도 좋지만 협곡 하단에서 수백 미터 절벽사이로 걸어 올라오는 코스도 또 다른 맛이 난다.

 

도무지 나아갈 수 없는 절벽 인 것 같은데 길을 뚫고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불가사의한 일이 하도 많아 생경스럽지가 않다.

 

태항산 대협곡에 자리하고 있는 선대산(仙臺山), 임려산(林慮山), 구련산(九蓮山), 왕망령(王莽嶺), 만선산(萬仙山)을 차례로 트레킹한 우리 일행은 중국의 마지막 밤을 안양(安陽) 시내에 있는 '안채대주점(安彩大酒店)'에서 그간의 피로를 풀었다.

 

10월 9일, 느긋한 마음으로 호텔을 나서 '은허박물관(殷墟博物館)'으로 향한다.

 

기원전 1046년 중국최초의 왕조(王朝)였던 '상(商)'나라가 '은(殷)'이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었고 '상(商)'나라가 '서주(西周)' 무왕(武王)에게 멸망되면서 파괴되고 도읍지 안양이 폐허로 묻혀졌던 유적지가 20세기 초에 발굴돼 중국최초의 문자인 갑골문자, 차마갱(車馬坑), 도기, 청동기 등 국보급 유물들이 지하궁전에 보관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은허박물관을 더욱 유명하게 알리고 있다. 기원전 유물이라 더욱 진기해 보인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산동성 제남국제공항으로 이동한다.

 

중간에 1400여 년 전에 건설된 경항운하(북경~항주간 운하)가 있는 료성(聊城)의 한국식당에서 오랜만에 우리 음식으로 입맛을 돋우고 2시간여를 달려 제남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중국시간 오후 6시45분, 산동항공 CA4095편에 올라 그간 3박4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알차고 보람 있는 태항산 대협곡 트레킹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간 수고해 준 일행들과 현지 여행사 여러분에게 이 글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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