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희(위덕대 교수 학생생활상담실장 심리학 박사)>

요즘 들어 어머니들에게 부쩍 많이 듣게 되는 걱정이 아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것 같다거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는 내용이다. 얼마 전 둘째 딸이 친구와 체스게임을 하고 있는데 쉽게 지기에 내심 우리아이는 저 게임에 약한가보다 했다. 친구가 돌아가고 나서 평소 딸과 같이 못 놀아준 게 미안해서 "엄마랑 아까 그 게임할까? 너 좀 어려운 것 같던데..."하고 물었다. 딸아이의 얘기는 의외로 일부러 져 줬다는 것이다. 같이 게임을 한 아이가 결과에 무척 민감해서 지면 기분나빠하고 화를 내니 그냥 져 줬단다. 그 친구는 다른친구가 자기보다 뭔가 잘 하는 것처럼 보이면 기분이 나빠져서는 계속해서 그 얘기를 화제삼아 빈정거리거나 게임중간에 안하겠다고 집어던지고 일어나 버려서 같이 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 아이의 부모님을 만나서 얘기를 해 볼까 망설였지만 아이키우면서 내 아이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남의 입으로 듣는 것이 얼마나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고 힘빠지는 일인지 알고 있는터라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상담에 오시는 어머니들 스스로는 아이를 경쟁하도록 키우거나 좋은 결과를 내라고 그런 적이 없는데 아이가 너무 승부에 집착하거나 지기 싫어한다는 말을 듣는다고 얘기한다.

그러면 아이가 왜 그럴까? 첫째는 어머니가 자신은 경쟁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어머니의 모습에서 이기는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낸 경우이다.

상담을 받으러 온 아동과 부모님께 가끔씩 젠가놀이를 할 때가 있다. 젠가놀이는 나무토막을 세 개씩 나란히 배열한 모양을 방향을 바꿔가며 층층히 단을 쌓은 후 , 나무 단의 세 개의 나무토막 중 한 개씩을 빼내어 쓰러뜨리지 않고 더 높이 단을 쌓아가는 놀이이다. 15분 동안 25층을 쌓는 놀이인데 처음에는 15분이 충분하다 싶어도 서두르다가 실수하면 전부 쓰러지고 다시 쌓아야 하므로 실패하는 경우가 꽤 많다. 이 게임에서는 엄마는 나무토막이나 아이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되며 말만 할 수 있으며 아동 혼자서 하는 것이 게임의 규칙이다. 밑에서 나무토막을 빼내다가 와르르 쓰러지면 아이와 엄마의 반응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 중 지기 싫어하는 아동의 경우는 한 번 쓰러질 때마다 금새 울상이 되어 "안 할꺼야" 라며 포기하든가 "엄마 때문이야"라고 엄마에게 탓을 돌리곤 한다. 어머니 중에서도 승부에 집착하는 사람이 물론 있다. 아동이 빼내면 곧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로운 나무토막을 건드리면 "안돼, 쓰러져, 쓰러져"하며 아이 손을 잡아채기도 하고, 아예 엄마가 나무토막을 반 쯤 빼내주기도 한다. 게임규칙은 이미 잊은지 오래다. 아이보다 어머니가 더 흥분해서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반칙(?)을 불사하는 경우다.

게임을 마치고 이 게임의 목적이 단을 높게 쌓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자녀의 상호작용과 어머니의 반응을 점검하기 위한 놀이였음을 알려드리면 어머니들은 매우 쑥스러운 웃음을 보인다. 이 게임을 통해서 어머니들이 아이에게 말로 승부욕을 가르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엄마의 속마음이 전달된다는 것을 체득한다.

두 번째 경우는 아이가 엄마(주된 양육자)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경우다. 엄마는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아이를 사랑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아이가 느끼기에는 '엄마는 맨날 잠만 잔다'든가 '나만 보면 화를 낸다'는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다. 즉 아이입장에서는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므로 이기고 잘해서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끼리 즐겁게 놀기 위해 게임을 하는데 승부에 목숨 거는 아이는 아이들 사이에서 경원시되기 쉽다. 나도 우리 딸들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2010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우리나라가 메달가능성이 있는 종목만을 골라 보며 메달을 따면 환호하고 노메달에는 섭섭해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젠가놀이에서 승부에 집착하는 어머니 모습과 틀림없이 닮아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젊은 선수들이 자주 한 '스케이팅을 즐긴다'는 말을 떠 올려본다. 정말 올림픽을 즐길 수 있는 선수들이 이렇게 많아졌다는 건 확실히 멋진 일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