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희(위덕대 학생생활상담실장·심리학 박사)

얼마 전 큰 아이의 국어교과서에 기형도 시인의 '엄마걱정'이라는 시가 실려 있는 것을 봤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안 들리네, 어둡고 어두워/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기형도의 엄마걱정 전문)

내 정서 속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던 슬픔과 외로움이 이 시를 읽으면서 되살아나서 아련한 어린시절의 기억에 잠겨봤다.

부모님 없는 집에서 저녁시간을 보내야 했던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탔기 때문에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서 노는 일이 많았다. 시끌시끌하던 친구들과의 오후시간이 지나고 저녁이 되면 친구들이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허전함과 외로움이 엄습해오는 싸~한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쯤 하늘은 저녁노을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남들에게는 아름다운 저녁노을이지만 내게는 우울한 저녁노을이었다.

최근 연예인들의 자살소식이 이어지면서 우울증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그러나 연예인들의 자살을 개인의 성향이나 병으로 가볍게 처리해 버리는 것은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연예인을 대하는 편견과 부정적 반응이 우울증에 불을 붙일 수 있다.

우울증은 어른만이 아니라 아이들도 걸릴 수 있는데 아이들의 우울증은 흥미와 의욕이 없는 것같이 보이고 매사 짜증스러워하고 잘 웃지 않으며 정서가 가라앉아 있다가 작은 일에 화를 내거나 흥분하는 등 얼핏 사춘기 증상으로 오인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자기를 비관하여 학교생활과 학업도 원활하지 않고 교우관계도 문제가 생긴다.

아동기의 우울은 가면우울(假面憂鬱)인 경우도 많은데 흔히 생각하는 우울의 증상과는 달리 과잉 운동,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비행, 등교 거부, 가출, 성적 저하, 분노발작, 분노, 공포 등으로 위장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한두 번 이러한 증상이 나타났다고 우울증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짜증 및 흥분의 감정 혹은 무관심과 무기력의 감정과 더불어 우울증의 다양한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될 때 우울증을 의심해 볼 수 있겠다. 다양한 증상이란 체중의 증감, 수면시간의 증감, 불안, 초조, 피로, 낮은 자존감과 죄책감, 사고력과 집중력 저하, 흥미결여, 신체적 불편감, 줄어든 대화, 죽음과 자살에 대한 언급을 들 수 있다.

아동과 청소년의 우울증 치료에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하면서 산책이나 운동을 함께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산책이나 운동이 갖는 긍정적 효과는 매우 크며 10분 산책으로 2시간 긍정적인 기분이 유지될 정도이며, 좀 더 활발하고 긴 운동은 이틀 동안 행복감을 유지시켜 주기도 한다. 아이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멈추고 사랑과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아동기 우울증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흔히 본인이 가지고 있는 우울증에 대한 취약성과 소인(素因)이 외부 스트레스 환경과 만났을 때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감수성이 풍부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세상이 아름다우면 풍부한 감수성으로 아름다움을 한껏 느끼고, 세상이 무섭고 어두우면 그 또한 크게 느낀다. 그 감수성 덕분에 마음을 울리는 시도 쓰고, 빨려들 듯한 매력적인 연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감수성 때문에 외부의 공격이나 스트레스를 더 민감하게 느끼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을 때 허물어지고 만다.

우울증은 그냥 개인의 문제나 개인이 해결해야 할 병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할 부분으로 인식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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