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희(위덕대 학생생활상담실장·심리학 박사)

자녀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대화하기가 힘들어 진다. 좋은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했는데 얘기하다보면 감정이 상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고 소리를 지르거나 아이를 윽박지르게 된다.

부모 말에 수긍하는 법이 없고 꼬박꼬박 따지고 대들고 심지어는 부모를 무시하듯이 말하는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거나 부모를 비난하기도 한다.

우리 큰 아이와도 얘기를 하다보면 요리조리 그 때 그 때 말을 바꿔가며 내 말에 반항을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여 어느새 이렇게 컸나 대견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이리저리 설득과 협박을 해 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사춘기 때 아이는 반항을 위한 반항을 하기 때문에 부모가 아무리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얘기해 봐야 전혀 먹히질 않는 것이다. 부모는 하다하다 안되니 포기하는 심정으로 '맘을 비웠다', '포기했다'고 선언하지만, 모든 면에서 맘이 비워질 리는 만무해서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아이와 승산없는 전쟁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대학에서 상담을 하다보면 대인관계가 힘이 들고 자신감이 없다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그 중 어떤 학생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말씨를 예쁘게 고치라고 했는데 그것이 그 때는 너무 싫어서 더 거칠게 말했는데 대학생이 되니까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릴 때 부모님이 고치라고 얘기할 때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묻자, '많이 서운하고, 나는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애일까'라는 생각에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져서 더 반항적으로 표출했다고 했다. 말투를 바꾸라는 것이 자신을 바꾸라는 것으로 들리고, 자신을 바꾸라는 것이 마치 '너는 잘못된 애다. 그러니까 남을 따라서 해라'로 해석됐다고 했다.

이 학생의 얘기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춘기 자녀들은 부모의 지도를 이렇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부모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이것저것 고치라고 외쳐봐야 자녀는 자신을 부정하라는 뜻으로 들리고 자기를 몰라주는 부모가 원망스러운 것이다.

그러면 부모는 사춘기 자녀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1. 논리적으로 자녀와 말싸움을 해서 승복을 받아내려고 하지 말자.

노력해도 잘 안 되면 부모 자신이 상담을 받아 자기치유를 한다.

2. 아이 마음속에 인정과 정체성에 대한 욕구가 있음을 알고 자녀와 대화하자.

아이를 어릴 때처럼 대하다 보면 대부분 아이와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 완전히 관계가 악화된 후에 바로 잡기란 쉽지 않다. 거칠게 보이는 자녀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면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고, 자신이 남과 이렇게 다르다는 확실한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어한다'는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3. 평소에 아이가 원하는 대로 맞춰준다.

'아더매치'지만 눈치를 봐야 하는 시기니까 맞서기 보다는 내가 져 준다. '아더메치'는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 거'라고 어느 영화에 나오는 대사다.

4. 그렇다고 '안하무인', '가족규칙' 다 무시하는데도 잘했다고 맞춰줄 수는 없는 일. 꼭 짚고 넘어갈 것은 왜 아닌지를 납득하도록 얘기한 후 지켜나가자.

위에서 얘기한 1,2,3이 어느 정도 잘되고 있다면 4번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아이와 평소 관계를 잘 해 왔으면 아이도 부모의 몇 가지 원칙(너무 많은 것은 금물)은 지켜주려고 하고, 수긍한다.

만약 평소 자녀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면 손자병법의 36계라도 써야할 판국이다. 36계는 상황에 따라서는 일부러 후퇴하는 것도 불사하는데, '병력이 열세이면 물러나고, 승산이 없으면 싸우지 않는다.' 자녀와 관계가 악화되어 버리면 승리도 패배도 없게 된다. 전력을 보강해서 즉, 1, 2, 3을 잘 해서 관계가 회복되면 그제야 하나, 둘 아이의 나쁜 습관을 고쳐보자.

사춘기 아이를 상대한다는 건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도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는 긴장의 연속이다. 나 자신을 믿고 아이를 믿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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