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이상중 씨 부부

대구시 북구 대현 1동에서 동네 이발관을 하고 있는 이상중(58) 씨 부부. 이씨는 치매를 앓고 있는 80대 노모를 10여년 동안 간병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에 의하면 2008년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환자가 8.4%로 42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환자 가족을 포함하면 적어도 150만 명 정도의 국민이 치매의 볼모가 되어 고통받고 있는 셈이다. 아직도 노망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치매는 암 등에 이어 사망 원인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심하면 자식마저 몰라볼 정도로 모든 인지기능이 황폐화돼 사람이 점점 처절하고 잔인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치매는 예방과 조기 발견으로 병의 진행은 어느 정도 더디게 할 수는 있으나 아직까지 완치는 불가능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질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구시 북구 대현 1동에서 이발관을 하고 있는 이상중(58) 씨는 어느 날 평소처럼 어머니 방에 문안을 드렸는데 아들을 몰라보고 "댁은 누구시요?"하고 물었다. 그 당시 황당했던 심정을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억장이 무너지고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내 어머님이 이렇게까지 되실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하지만 어머님의 치매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동네에서 효자라는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가당찮은 말씀입니다. 어머님을 노망들게 한 불효자를 보고 효자라니요? 남이 들을까봐 두렵습니다. 저는 10여 년 어머님을 간병하면서 하루도 저의 불효를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제가 잘못 모셔 어머님이 몹쓸 병을 얻었으니 장남으로서는 이보다 더 큰 불효가 없지요"

-치매는 간병이 아주 힘든다던데.

이 씨는 어머님(82)의 일이라 쑥스러워하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잇는다.

"어머님은 초기에는 열쇠나 전화기를 냉장고에 넣어 두기도 하고 밥을 먹고도 안 먹었다고 하며 집을 나가면 가끔 길을 잃기도 했습니다. 치매 중기에 이르자 가족도 잘 몰라보고 며느리를 보고 욕을 하고 하더니 급기야는 밤낮 없이 집을 나갑니다. 정말 가족들은 말이 아니지요! 어머님 속옷에까지 이름을 새기고 명찰을 달아 드려도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자정 무렵 저하고 같이 한 방에서 겨우 잠이 들었는데 누가 대문을 요란하게 두드리기에 잠결에 나가보니 경찰 순찰차가 와서 어머님이 집에 계시냐고 묻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하고 한 방에서 막 잠이 드셨다고 하니까. 이게 웬일입니까? 어머님이 순찰차에서 내리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황당하고 죄송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치매는 흔한 병이라 입소문을 통해서도 알지만 말기에 들면 대소변도 못 가리고 방과 벽에 칠하고 먹기도 하고 전혀 상상하지 못할 일을 합니다"

이 씨는 3평 남짓한 점포에 미닫이문을 사이에 둔 방 두 칸을 세 얻어 외아들과 노모를 모시고 동네 이발관을 경영하고 있다. 그래서 방 한 칸은 노모가 차지하고 외아들은 할머니 방에 이층 방을 만들어 줘 함께 살아가는 동네에서 소문난 효자다.

-고객들을 상대하다보면 불편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닐텐데.

"생활형편이 넉넉지 못해 아내는 낮이면 돈 벌러 나가고 저 혼자 이발관을 운영하면서 노모를 간병해 왔습니다. 동네 이발관이라 고객들이 저의 사정을 이해는 해 주시지만 이발하고 있을 때도 어머니는 아들을 계속 부르고 심한 말도 하며 어떨 때는 용변을 봐 고객들에게 불편을 끼칠 때도 있어 그럴 때마다 저는 정말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습니다.

정말 치매는 잔인한 병입니다. 제 집사람은 낮에는 직장에 나가 지친 몸으로 집에 와 어머님 병 수발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샐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어머님은 아랑곳하지않고 며느리를 욕하고 구박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저는 아내한테도 죄인이 됐습니다. 그래도 제 아내가 묵묵히 모시고 있으니 참 고맙지요"

-자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습니다. 저처럼 불효자가 돼 고생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평소 부모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만약을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85세 이상 노인은 50% 가까이 치매에 걸린다는 보고도 있고 남성보다는 여성치매환자가 5배 이상 많다는 점도 유념해 둘 일입니다. 돈 있으면 병원이나 요양원에 보내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치매 말기(위독하여 지속적으로 병원치료가 필요한 기간)이전에 집에서 간병이 가능한 시기에 부모님을 시설에 보내는 일은 자식 도리도 아니겠지만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듯이 자식들을 불러대고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부모님을 시설에 남겨놓는 일은 당해 보지 않고는 짐작하기 어려운 고통이 따릅니다. 노모를 둔 가정에서는 미리 서점에 가서 치매에 관한 책을 사서 요령을 배워 두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면 예방도 용이하고 경제적, 정신적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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