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제 전통예절 강사

전통예절 강사 최현제 선생이 전통혼례 주례를 본 뒤 신랑신부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요즘 격식을 제대로 갖춘 전통혼례를 보기가 쉽지 않다. 전통혼례를 한다는 사람들도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추억거리로 전통혼례를 한번 해보는 정도다.

지난 11일 경주 향교에서 전통혼례식이 있다고 해서 최현제(74) 선생을 함께 취재할 겸 경주를 찾았다. 향교에서는 오래 전부터 원하는 사람들에게 전통혼례를 올려줬는데 선생은 여기서 주례를 맡고 있다.

족두리와 사모관대를 쓰고, 비단 혼례복을 입은 신랑신부가 마주 섰다. 혼례상에 마주 앉혀논 장닭과 암탉이 앞에 놓아둔 쌀을 쿡쿡 쪼고 있었다. 혼례는 옛날식으로 하지만, 사람은 옛사람이 아니어서 눈을 내리깔고 신랑 얼굴도 모른 채 신방에 들어갔던 그 옛날 신부와는 달리, 이 시대의 신부는 연신 방싯거리며 기회있을 때마다 신랑과 눈을 맞춘다.

예식이 끝난 후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선생과 향교의 차방에서 마주 앉았다. 갓을 썼을 때와는 사뭇 다른 소탈한 모습이다.

-전통혼례의 주례를 한 지는.

"한 십년 됩니다. 본격적으로 일한 것은 그 정도 되지만, 향교에 출입한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30대 초반부터 최부자집에 모이는 어른들께 배우면서 향교에도 출입했지요."

-오늘 혼례식은 무료로 한다고 들었는데.

"옛날에는 무료로 했지요. 그렇지만 향교에는 특별한 예산이 없어 30만원의 혼례 비용을 받습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비 정도지요. 형편이 딱한 사람들에겐 무료로 해주기도 합니다. 우리 향교는 두 번이나 전국 시범향교로 지정돼 요즘은 문화관광부와 자치단체에서 시설비를 지원받고 있습니다."

-향교에서도 '향교스테이'라는 민박이 생겼다던데.

"일반 민박과는 차별화되죠. 여기서는 체험 경주관광입니다. 예절학교·다도·세시풍습·한문서당 체험 등 향교의 특색을 살린 것들이지요."

-혼례가 없을 때는 어떻게 보내나.

"혼례식이 없는 날은 더 바쁩니다. 향교에서 문화체험과 예절강사를, 사회교육원(향교 부설)에서는 예절교육을 합니다. 또 각 동네마다 초청돼 예절교육을 하기도 하지요. 문화체험이 없는 날은 관광객들에게 향교에 대해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향(향사)에 다니고 여러 문중의 유사를 맡고 있으니 그런 일들로도 바쁩니다. 틈틈이 농사도 조금 지으니 하루도 집에 느긋하게 있을 날이 없습니다."

선생은 일찍이 성균관 내 예의실천본부에서 예절을 공부해서, 국가공인 '실천예절지도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 또한 각 향교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 중에서 뽑는 '성균관 전의'를 맡고 있으며, 석전(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곳 )보존회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전통혼례로 많은 사람들을 맺어주셨는데 특별히 기억나는 부부가 있다면.

"3년전 쯤 됐을 겁니다. 그날은 길일이라 세 쌍이나 혼례를 치렀는데, 웬 노부부와 딸 둘이 날 찾아요. 신랑은 74세 신부는 69세인데 혼례를 좀 올려줄 수 없겠느냐는 겁니다. 지금까지 무슨 사정인지 식을 올리지 못했다고 해요. 사정이 딱해 부랴부랴 초례상을 준비했지요. 딸 둘이 어머니를 양 쪽에서 부축하고선 울먹이며 절을 올렸습니다. 어머니와 딸들이 어찌나 고마워하며 눈물짓던지, 그때 내가 참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최현제 전통예절 강사 같은 분들이 여전히 건재함으로써 우리 전통문화의 맥이 이어지고, 예(禮)의 근본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일 게다. 선생은 시간이 좀 날 때 밭을 둘러봐야겠다며 총총히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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