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대구시각장애인예술단장

시각장애인 예술단이 7년이 넘도록 대구 두류공원 등지에서 노인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 안경을 쓴 채 식판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최영진 단장이다.

시각장애인들이 무료급식을 제공한다는 소문을 듣고 반신반의하면서 달려가 봤다. 지난 12일 대구 두류공원 문화예술회관 앞. 낮 12시부터 배식인데 10시도 안 돼 많은 노약자들이 모여들었고 사랑의 밥차에서는 시각 장애인들이 식사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필자는 현장에서 소문을 사실로 확인한 순간 무언가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1시쯤 되자 400여 명의 노약자들이 먼저 배식받으려고 앞다퉈 줄을 섰다. 십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무료급식을 하는 시작장애인들을 도왔다.

지난 1999년 8월 14일 창단한 대구 시각장애인예술단. 최영진(54) 단장은 급식 장소가 노상이고 불볕더위에 노인들이 쓰러질까봐 배식시간에 줄을 설 것을 요구했으나 끼니를 기다리는 노인들은 막무가내였다. 필자는 단원들이 배식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틈틈이 최 단장과 이야기를 이어갔다.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무료급식을 하게 됐나.

"경로당이나 공원 등지에 위문공연을 나가보면 언제나 많은 노약자들이 배고픔을 호소해 7년 전 3월 우리 단원들이 한 마음으로 뜻을 모았습니다. 남들은 제 앞도 못 보는 사람들이라면서 이런저런 말들을 했지만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 같은 노인들이 '고기가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배가 고프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더는 노인들의 애절한 말씀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우리 단원 12명이 십시일반으로 50만 원, 100만 원씩 돈을 빌려와 기금을 만들고 중고트럭을 구입해 밥차를 만들었습니다. 거리공연을 나가 모금한 돈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노약자들의 소원을 들어주기에 이른 것입니다. 지금은 독지가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멋진 밥차도 기증 받았지만 급식 초기에는 고생이 많았지요."

-무료 급식비 조달은.

"처음 거리공연을 시작했을 때는 모금이 잘 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시각장애인들이 노약자들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기 위해 거리 공연을 하고 모금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많은 분들이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익명을 요구하는 한 스님이 매월 급식에 필요한 상당량의 쌀을 보내 주시고 구미에 있는 모 기업체에서는 사장님과 임원 전원이 매월 한 차례씩 현장에 나와 직접 배식 봉사를 하고 많은 후원금을 주고 갑니다. 일주일에 4번 급식하고 매회 400~500 명, 많을 때는 600여명에게 급식을 하니 많은 비용도 들지만 그때마다 많은 독지가들이 나서서 재료비도 생산원가로 주고 반찬도 만들어 주며 현장에 와 보고 십시일반으로 도움을 줍니다."

-단원들 구성은.

"우리 단원들은 예술에는 조예가 있으나 전원이 시각장애인(어렴풋이 사물을 구별할 정도)이고 기초수급을 받는 영세민들입니다. 단장인 저도 12평 아파트에 다섯 식구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 단원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노약자들의 배고픈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여기 와서 밥을 드시는 노인 중에는 기초 수급 조차도 받지 못하는 노인이 많습니다. 정말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딱한 노인들입니다. 최근에 와서는 많은 노인들이 배식이 끝날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줄을 서서 눈치를 보며 밥을 드시는 것을 보면 우리 단원들의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급식장소와 시간은.

"매주 월요일은 대구 두류공원 네거리, 화요일은 대구 예술회관 앞, 수요일은 북비산로터리, 목요일은 서부정류장 분수대며 배식시간은 낮 12시부터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제나 도움만 받던 시작장애인들이 생각을 바꿔 남을 돕다 보니 세상이 전과는 달리 좋아 보입니다. 그리고 노약자들을 도우면서 배운 것은 남에게 도움받는 기쁨보다는 주는 기쁨이 몇 배나 크고 값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단원들은 살아 온 동안 언제나 사회에 짐이 됐고 구제의 대상이었는데 이제 반대로 노약자들을 돕게 됐으니 '하루종일 해도 피곤함을 모를 정도로 보람을 느낀다', '이젠 아픈 곳이 다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필자는 최 단장과 얘기를 나누는 동안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부끄러웠고 미안했다. 시각 장애인들의 무료급식 봉사는 우리 사회에 많은 뉘우침과 교훈을 주고 있다. 봉사는 건강하고 돈이 있어야 한다는 사회통념을 깨고 의지만 있으면 누구라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침을 주고 있다

실의에 빠진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어떤 성현의 설교보다도 어느 힘 있는 자의 대성일갈보다도 우리 사회에 더 큰 감동과 효과적인 나무람이 됐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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