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희 위덕대학교 교수

 

성인처럼 보이고 성인처럼 말하며 성인처럼 옷을 입고 다니지만 내면은 아이인 채로 성장하지 못하고 어린시절의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성인아이'라고 한다. 어린시절 그 아이만의 독특함과 소중함이 버림받고 혼자 남겨지고 소외되는 경험을 한 결과 미숙한 유아시기의 감정과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문제는 성인아이인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너무도 많이 있고, 또 많은 성인아이가 가정을 꾸려 자신의 정신건강을 대물림하고, 우리의 학교를 운영하고, 종교단체를 운영하고, 정부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성인아이가 부모인 가정이나 성인아이가 리더인 조직은 건강하기 어려우며 퇴보를 거듭하게 된다.

 

존 브래드 쇼는 성인안의 어린아이는 만족을 모르는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욕구는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가 않는다고 하였다. 이들은 강박적으로 욕구를 추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중독이다. 어떤 성인아이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위해 노력하고, 또 다른 성인아이는 권력을 휘두르며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마치 굶주린 사람같이 더 많은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한다. 중독된 '성인아이'는 돈과 권력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음식(섭식장애), 더 많은 술(알코올중독), 더 많은 약물(약물중독), 더 많은 섹스(섹스중독), 더 많은 물건(쇼핑중독), 더 많은 정보와 연결(인터넷중독), 더 많은 게임(게임중독), 더 많은 일(일 중독), 더 넓고 많은 관계(관계중독)등의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가진다.

 

이러한 중독적 삶의 방식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자기자신을 포기하고, 사랑받고 행복하기 위해서 자신 밖에 있는 무언가를 성취하고 수행하거나 사용해야만 하는 자신이 되려하는 것이다.

 

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일본작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카오나시(얼굴없는 존재)'가 오버랩된다. 먹어도 먹어도 만족을 모르는 '카오나시'는 닥치는 대로 먹어치울 때마다 점점 흉측하고 거대한 괴물이 돼 간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돈과 힘 때문에 추종한다. 돈이나 권력을 가지면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휘두르려하는 우리사회의'중독증세'를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카오나시'는 행복하기는 커녕 여전히 외롭고 만족과 평안을 잃고 자신마저 잃었을 때 치히로의 도움으로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나서야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수용과 인정을 받고 평안(안주할 곳)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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