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준 제 <용연사 주지>

상평통고(常平通考) 예문집 혼례편에 보면 한 쪽 정도의 분량으로, 원서로 결혼에 대한 정의가 쓰여져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대충 이러하다.

‘혼례란 위로는 부모와 선조를 섬기는 것이며 아래로는 후손을 이어가는 중요한 것이므로 여섯 가지 예를 갖추어 가족과 가족이 합의를 잘 이루어 경신정중(敬愼正重)으로서 부부생활을 함에 근본을 삼아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여섯 가지 예는 혼례육례(婚禮六禮)로서 결혼하기 전과 결혼직후에 해당되는 상대방의 가족에 대한 예의를 말한다.

말하자면 첫째, 납채(納采):신랑의 사성 , 즉 사주를 다섯 칸으로 접은 한지에 써서 사성서장이라는 일곱 칸에 적은 편지와 함께 가로 10센티미터, 세로 40센티미터정도 크기의 한지 봉투에 넣어 신부 집에 전달한다.

둘째, 문명(問名):상방의 가족관계 등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셋째, 납길(納吉):신부측에서 길일을 뽑아 신랑 측에 알리는 것이다.

이 또한 사성과 같은 크기의 봉투에 편지와 같이 보낸다.

넷째, 납폐(納幣):신랑측에서 신부 집에 혼수를 함에 넣어 예장편지와 같이 보낸다. 다섯째, 청기(請期):택일이 잘된 건지 가부를 물음과 동시에 신부 집에서 익힌 음식을 중심으로 신랑 집에 보낸다.

생음식보다 익힌 음식을 주로 보내는 것은 신부 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보는 것이다. 이는 신부도 어머니로부터 음식 솜씨를 물려받기 때문이다.

신부가 음식을 못하면 삼년을 고생하고 성격이 나쁘면 삼십년을 고생하고 머리가 나쁘면 삼대를 고생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섯째, 친영(親迎):혼행이란 뜻으로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신부를 맞이해 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절차를 밟아 매우 정중하고 우아하게 그야말로 인륜지대사 답게 가족과 가족, 신랑과 신부가 출발부터 아주 무겁게, 부부가 무엇이란 것을 여섯 가지 예의가 다 이루어지는 몇 달 동안 몸에 직접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도 간혹 사성이나 연길을 써주는 경우가 있는데 한 가지 철학이 있다.

그것은 본인이 직접와서 먹을 갈지 않으면 써주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지를 접고 봉투를 만들며 정성을 들여서 글을 쓰는 것을 본인이 먹을 갈면서 보는 그 자체가 결혼에 대한 무게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부부란 여자 남자가 만난 것이지만 부부가 된 이상 여자 남자의 관계보다 훨씬 높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부부란 남편과 아내일 뿐인 것이다.

이렇게 일반적인 여자 남자가 아닌 남편과 아내로서 반드시 지켜야할 철칙이 있다. 이것이 바로 경신정중이란 것이다.

경(敬)부부는 서로를 끊임없이 공경해야 한다. 몇 년 세월이 흐르고 자식이 자랐다하여 서로를 엽신여기는 말투나 행동을 해서는 절대 안된다.

신(愼)부부란 항상 삼갈 줄 알아야 한다. 해서는 안될 말,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언행이란 해서는 안되는 장소가 있고 해서는 안되는 시간이 있다.

이것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면 그 사람을 우리는 병신, 또는 모자라는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정(正), 바를 정자는 글자 자체도 가로 세로의 획으로만 이루어지며 가로도 쭉 곧게, 세로도 쭉 곧게만 쓰여져 만들어진 글자다.

첫 단추를 바르고 반듯하게 끼워야 하듯 일월을 정월이라 하는 것이다.

부부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 마음을 완전 열어야 하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 비밀이 있다면 이는 완전한 부부가 아닐 것이다.

중(重)부부는 언제든지 서로를 무겁게 대해야 한다. 상대방의 의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일방적으로 매사를 처리해서는 안된다.

항상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여 의논하고 합의하여 일을 결정한다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예출어정(禮出於情)이란 말이 있다. 인간의 모든 정서는 예의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사실 예의를 갖추지 않는 사람을 보면 정서가 매우 산만하다. 예의에서 개인의 정서, 부부의 정서, 사회의 정서 이 모든 것이 출발하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결혼의 실패는 곧 인생의 실패며 결혼의 성공은 곧 인생의 성공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부부의 근본은 사랑 이전에 ‘경신정중’이라는 예의가 선행될 때만이 성공된 부부가 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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