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신당동 초미니 구두수선가게 강재학 할아버지

건물 틈새, 전신주를 의지해 만든 초미니 구두수선가게서 일하고 있는 강재학 노인.

필자는 지금까지 이렇게 작고 희한한 가게를 본 적이 없다. 가게 폭은 사람 어깨 넓이 정도이고 길이는 가게주인의 무릎에 맞춘 듯 짧고 가냘프다. 대구시 달서구 신당동 소방도로 변 건물 틈새를 빌려서 만든 반 평도 안 되는 초미니 구두수선가게. 도로변에 서 있는 전신주를 의지해 파이프로 뼈대를 만들고 비닐로 좌우를 막아 가게를 만들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너무나 딱한 것은 반 평도 안 되는 가게 안에 전신주가 들어서 있으니 가게주인 강재학 할아버지(76)는 움직이기도 어려운 자세로 일을 해야 하고 작업장은 노인의 무릎 위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처음 이 가게와 노인을 보는 순간 온 몸에 충격이 왔다. 정말 얼마나 힘드실까? 조금만 더 자리가 났더라면 노인이 작업 중에 조금이라도 운신을 할 수 있을 텐데….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요즘 노인은 의자 아래에 피운 연탄불에 몸을 의지하고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고객들은 모두 무심했고 추위를 피해 제 갈 길에만 바빴다. 필자도 본인의 구두만 한 번 내려다보았을 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노인은 또 한 번 필자를 놀라게 했다. 노인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이 가게가 작다고 우습게보지 마세요. 저는 누구한테도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먹을 게 없어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필자는 멍하니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늙었다고 놀고먹고 대접만 받으려고 해서 되겠습니까? 지금 우리 노인들의 진짜 고통은 억지로 편하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일한 덕분에 집에 가면 우리 손주들한테는 최고의 할아버지고 아들, 며느리한테는 효도를 받습니다. 일을 하면 손자들한테는 용돈을 줄 수가 있어서 좋고 자식들한테는 짐이 안 되어 좋고 나는 매일 일을 해서 건강해 좋고 작지만 내 힘으로 남을 도울 수가 있어 좋고….

필자는 너무나 뜻 밖의 노인의 태도에 한참동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필자가 노인을 동정의 눈으로 본 것이 큰 실수였다. 노인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훈화를 듣는 것 같고 무엇을 잘못해 꾸중을 듣는 기분 같기도 했다. 노인은 "저는 잘 살지는 못해도 지금까지 남한테 짐이 된 적은 없었습니다. 시골서 대구로 이사와 자식들 교육시켜 출가시켰고 내외는 건강하고 자식들한테는 효도 받으며 삽니다. 이 모두가 저가 스스로 일한 덕분이지요. 자식들은 지금도 이제는 그만 쉬라고 하지만 저는 노는 게 더 힘들어요. 사람은 '일거리가 삶의 소재' 라고 하지 않습니까? 억지로 노는 것은 몸에 병을 만들고 온 가족을 불편하게 하고 사회에도 짐이 됩니다. 저는 이렇게 작은 가게에서도 제가 가진 기술로 매일 노약자들에게 봉사를 합니다. 수선비 중에 재료비만 받고 노동 봉사를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마음이 편안합니다"

필자는 뭔가 노인을 도와 드리려고 찾아갔다가 도리어 남을 도우면서 마음 넉넉하게 살아가는 노인을 보고는 도리어 많은 것을 얻어 왔다. 노인의 말씀대로 우리 사회 노인들 가운데는 어떤 것이 진실로 편한 것인지 잘 모르는 노인이 많은 것 같다. 억지로라도 일만 안하고 놀면 그게 편하게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 가정 형펀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으나 마음이 편치 않으면 놀아도 편한 것이 아니며 일을 해도 마음이 즐거우면 힘들지 않고 행복한 법이다. 건강관리도 심기가 불편하면 무엇을 하고 놀아도 근본적으로 건강관리가 안 된다. 그래서 무병장수의 비결은 마음 관리에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

강 노인은 노인 일자리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나라에는 돈이 없는데 공공근로만 애타게 기다리지 말고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씩은 잘 하는 게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일거리를 찾아보면 더 쉽고 떳떳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녀들의 효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자 많은 노인들이 옛날에는 효도했다고 하지만 옛날에도 일방적인 효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옛날에는 농사짓고 살면서 노인의 역할이 많았으며 자녀들에게는 귀감이 되었고 지금은 세상도 바뀌었지만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 사회적으로는 어른의 역할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노인의 말씀은 효문제가 부모와 자식 간의 일이지만 서로 간에 주고받는 호혜적인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부모들은 옛날의 부모님들이 자식들한테 효도 받은 것만 생각하고 힘들게 일한 것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노후가 더 힘들다고 하면서 가정형편에 맞추어 부모님 역할을 먼저 찾아보는 것이 효도 받는 길이 아니겠느냐고….

필자는 노인과의 만남이 어느 위인과 대담한 것보다 유익했다고 생각했으며 어르신의 살아가는 모습이 서민들에게 위안이 되고 한 가닥 삶의 본보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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