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재 훈 <포항강변교회 목사>

가을빛이 완연하다. 은행나무 가로수들은 이미 샛노란 물빛 가득 머금고 거리를 채색해 가고 있다. 누군가가 그랬다. “가을은 떠남의 계절” 이라고... 그래서일까. 나 역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것도 기차를 타고...

나는 기차에 대해서 남다른 추억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기차를 타고 밤 새워 오르내리던 유년시절의 서울행 완행열차에 대한 추억이 중년을 넘어선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어쩜 기차로 인하여 맺어졌던 삶의 끈들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 그리고 친구들, 아니 내 삶의 성장에 대한 그리움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기차를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돌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목적지도 없이 그냥 기차를 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런 연유로 인해서인지 지금도 할 수만 있다면 서울을 가야할 때는 기차를 탄다.

나는 기차에 중독되어 있다. 철로 변을 운전하고 갈 경우에는 기차가 지나가 주길 마음으로 기원한다. 어쩌다 기차가 지나가게 되면 앞을 보고 운전을 할 수 없다.

지나는 기차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서점에 가서도 기차가 소재로 나오는 책들은 무조건 구입한다.

그것이 시집이든 수필이든 상관치 않는다. 그냥 기차가 좋아서 그렇게 한다. 기차를 좋아하다 보니 간이역을 또 그리워한다.

유년시절의 기차는 크고 작은 역들을 구분하지 않았다. 승객이 있든 없던 상관치 않고 친절하게도 정차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스쳐지나가는 풍경에 불과하다.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간이역’이라는 꼬치 전문집 간판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그냥 들어가 보고 싶은 유혹을 받곤 한다. 하지만 신분이 신분인 만큼 유혹을 떨쳐 버린다. 그 곳에는 꼬치와 함께 술을 팔기 때문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모든 일상들 잠시 중지시켜 놓고 무작정 밤기차 타고 싶다. 물론 옛날의 기차가 주었던 여행의 운치와는 사뭇 다를 수 있다.

현대인의 입맛에 따라 만들어진 KTX를 탄다는 것은 낭만성은 없다. 그러나 기차는 기차다. 기차라면 무조건 타고 싶은 가을이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져 있을 가을의 색상들을 감상하고 싶다. 산과 들의 색상이 다를 것이고, 산의 높이 따라 차이가 날 것이고, 또한 산 아래와 위가 다를 것이다.

그야말로 가을은 다양함의 계절이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도 풍겨나는 가을빛은 다르다. 단풍잎마다 가을 색은 다르다. 그래서 가을이 좋다. 가을은 다양성을 하나로 만들어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아 주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면 다양한 가을의 세상을 만끽할 수 있어 좋다. 가을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획일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서로 서로 어우러져서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기차를 타면 확연하게 볼 수 있어 좋다. 경상도의 가을과 충청도의 가을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또한 경기도의 가을과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쉽게 볼 수 있다.

가을에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포용했으면 좋겠다. 살기 어렵고 힘들다고 하여 서로를 향하여 반목과 질시가 사회의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현실 속에서 가을의 다양함을 배웠으면 좋겠다. 눈만 뜨면 ‘나와 다른 너의 것’을 기에 여념이 없고, 입만 열면 ‘나와 다른 너’를 향하여 비난과 비판을 일삼는 세상에서 가을의 다양함을 배웠으면 좋겠다.

가을 나들이를 다녀보지 않으면 가을의 다양함이 주는 아름다운을 볼 수 없다. 기차를 타고 가을 나들이를 한다는 것은 더욱 더 낭만적이고 운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양함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는 인생의 가을 속으로 삶의 여정을 이끌고 여행을 해 보는 것이다.

동일한 땅 위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서 나의 인생의 색깔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의 인생의 색깔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이 세상을 가을 산과 들이 주는 어우러짐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갔으변 좋겠다.

살기 힘들고 각박하다고 해서 가을을 보는 마음의 눈까지는 닫아 버린다면 그 삶은 더 피곤해 질 수 있다. 나에게서 너를 볼 수 있고, 너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그리고 너를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을이라면, 그래서 너를 통해 나를 볼 수 있다면 가을의 다양함을 배우는 인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날 속으로 기차를 타고 가면서 가을빛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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