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칠곡 관호초등학교

방과후 학교 생활과학 교실에서 로봇 조종을 하는 학생들.

지난 10일 경북 칠곡군 관호초등학교는 학교가 생긴 이래 최대의 경사가 벌어졌다.

이날 충남 공주대에서 열린 국제 학술대회에서 연중돌봄학교 우수 사례 2건 중 이 학교가 포함되면서 시골의 작은 학교에 국제적인 관심이 쏠린 것이다. 이날 학술대회는 영어로 진행됐고 이 학교 관계자가 역시 영어로 소개했다.

지난 2006년까지만 해도 이 학교는 전교생이 37명으로 폐교될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요즘 이 학교에 아이들이 몰려오고 있다.

영어 자격증을 취득한 아이들

2월 현재 전교생은 81명으로 늘어나 있다. 이 학교 김진석 교장은 "대구는 물론 경기도에서까지 전학을 오겠다는 전화가 오는데 이를 거절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말한다.

'돌아오는 학교'의 씨앗을 뿌린 것은 이 학교 동창회였다. 동창회는 지난 2006년 학교를 살리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방과후 학교에 TOSEL(교육방송의 초등학생용 영어인증 프로그램)을 도입토록 한 것이다.

학교 역사가 37년 밖에 되지 않아 회원도 많지 않고 큰 사업으로 성공한 동문도 적었지만 동창회는 2007년부터 이 프로그램의 원어민 강사를 직접 구하고 강사비도 일부 지원했다. 이렇게 해서 금요일마다 2시간, 주 1회씩 3~6학년 학생들에게 TOSEL훈련이 시작됐다.

부모님들과 함께 한 '꿈찾기 진로 캠프'

이에 학교도 자극을 받았다. 마침 학교가 2009년 연중 돌봄학교에 선정되면서 연간 5천만원씩 3년간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자 학교는 이른바 '드림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학교는 우선 아이들의 영어실력을 높이기 위해 2중, 3중으로 영어 소나기를 퍼부었다. 동창회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TOSEL 훈련을 더욱 강화해 아침 자습시간에도 수준별로 반을 나눠 매일 30분씩 TOSEL 연습을 했다.

이 때는 담임들이 직접 지도했다. 때문에 교사들도 영어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됐다. 교사들은 방학때마다 영어 연수를 했다. '에듀 스터디'라는 동아리도 만들어 수업기법을 공유했다.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초등학교에서는 드문 제2외국어(일어, 중국어)까지 개설했다.

김진석 교장

정규 교과 시간의 영어 수업에는 인근의 미군부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아이들은 영어 수업뿐 아니라 전적 기념관 방문, 쇼핑과 식사 등을 미군 아저씨들과 함께 하면서 생활영어를 저절로 익혀나갔다. 전적 기념관 견학의 경우 사회과 과목과 연계된 것이어서 사회와 영어 공부를 동시에 하는 효과가 났다.

영어 프로그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학교는 해마다 영어 말하기 대회를 열었다. 학예 발표회도 아이들이 영어로 진행했다. 특히 학예 발표회는 아이들이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와 일어로 노래와 연극을 하는 등 이색적으로 진행되면서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높다.

2009년부터 2년간 진로교육 연구학교로 지정된 이 학교는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드림 프로젝트와 연계해 경찰서, 병원 등 지역 기관들과 함께 '꿈 찾기 체험활동'을 벌이고, 부모와 함께 하는 '꿈 찾기 가족 캠프'도 열었다. 전교생이 부모와 함께 서울 나들이를 가서 여러 직업의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다. 또 '직업카드를 이용한 미래의 직업세계 지도', 외부인사 초청 강연, 진로 독서의 날 운영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학교는 또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자격증 취득 프로그램도 개설했다. 글짓기, 영어, 한자, 정보 등 4개 분야를 대상으로 가시적인 효과가 나오도록 3개월간 집중적으로 지도하는 방식을 썼다.

결과 한국 글쓰기 자격증 시험에서 2009년 35명, 지난 해 42명이 자격증을 따낸 데 이어 대통령기 제29회 국민독서경진대회, 통일부 주최 통일글쓰기 등의 대회에서는 잇달아 칠곡군 최우수상을 받았다.

영어도 마찬가지. 2009년 TOSEL시험 24명 전원 합격에 이어 지난해에도 41명 모두 합격하는 성과를 냈다.

한자에서는 응시생의 91%, 컴퓨터에는 71%의 학생들이 검정시험에 합격해 자격증을 갖게 됐다. 이에 따라 이 학교 81명의 학생 대부분(98.7%)이 1개 이상의 자격증을 갖고 있다. 3개 이상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학생도 36명이나 된다.

김진석 교장은 "자격증 취득이라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성과로 학생들의 학습의욕과 자신감이 크게 높아졌다. 이는 수업 분위기 개선으로 바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학교는 아이들의 학력 높이기에 가장 많은 노력을 투자했다. 교사들은 자신들의 수업 동영상을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 서로 수업 기법을 공유하고 수업을 잘 하는 학교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바로 찾아가 배웠다. 방과후 학교 강사들에게도 선진 교수법을 전수했다.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들의 질이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국어(논술), 수학, 영어 과목의 방과후 수업은 수준별로 진행하고 학생 개인별 카드를 만들어 성적 향상 정도를 학부모에게 전달했다.

대구교육대와 연계한 생활과학교실, 교육청의 발명교실, 이공계 연구실 탐방, 생물학 교수를 초청 강의 등 과학교실 프로그램도 연중 가동됐다. 이같은 흥미 있는 프로그램들이 계속 진행되면서 학교는 아이들에게 가장 재미 있는 생활 공간이 됐다.

아이들의 학력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학력부진아는 2009년 7%에서는 지난 해는 0%로 줄었고, 보통이상 학력 비율은 88.3%에서 91.9%로 높아졌다. 이 학교에 들어오려는 아이들도 더욱 늘어 작년에는 신입생이 9명이었으나 올해는 18명으로 두 배가 불었다. '사라질' 학교가 '살아난' 것이다.

"동창회 애정·교사들 열성에 감동"

김진석 교장

지난해 3월 이 학교에 와 보니 기가 막혔다. 아이들은 반쪽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시설은 낡았다. 폐교될 지 모르기 때문에 시설 투자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학교는 교과부의 연중돌봄학교로 지정돼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지난 해는 도교육청이 3억5천만원을 지원해 교실을 확장하면서 반쪽 교실은 없어졌다.

학교에 와서 두 가지에 놀랐다.

우선 동창회와 학부모회의 학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동창회는 원어민 강사비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체육복까지 지원하고 있다. 내가 처음 오니 동창회 간부들이 식사자리에 초청해 학교 발전을 부탁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다음으로 놀란 것은 교사들의 열성이었다. 스스로 연수 프로그램을 짜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즐겁고 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체험학습 때는 학부모들이 아니라 교사들이 아이들의 도시락을 만들어 온다.

입소문은 빨랐다. 인근에서 아이들이 전학을 많이 왔다. 작년에도 6명이 전학을 왔다. 올해내로 전교생은 100명 가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걱정거리도 있다. 아직까지 도서관, 보건실, 영어체험실, 컴퓨터실, 돌봄교실 등의 공간도 없다. 상수도도 없어 인근 유치원의 지하수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지금처럼 활기있는 학교로 변한 것은 이같은 동창회와 학부모, 교사들의 열정에 교육당국의 예산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작은 학교에는 좋은 점이 많다. 모든 수업과 생활지도는 교사와 1:1로 진행된다.

모든 교육 활동이 무료다. 즉 사교육비는 물론 공교육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 인성교육도 훨씬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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