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효곡동 구두·우산 수선 하는 85세 할아버지

35년째 구두나 우산 등을 수선하는 85세의 할아버지.

사람이 현역에서 일 할 수 있는 나이는 몇 살까지일까? 90이 넘어도 정정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팔십이 넘으면 정기적으로 매일 출근하는 일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포항 효곡동 재래시장의 구석진 곳, 한 평 남짓한 부스 속에서 온갖 수선도구를 벌여놓고 하루 내내 그 속에 앉아 35년 째 구두나 우산 등을 수선하는 85세의 할아버지가 있다.

가끔 시장에 들릴 때, 언제나 그 자리에 앉아서 신발을 고치는 할아버지를 보며 아무래도 70세는 넘었겠는데 '부지런히 나오시는구나' 생각했는데, 취재 때 85세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취재를 하려 하니, "뭐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신문 날 것 없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묻는 말에, 손으론 부지런히 일을 하면서, 필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띄엄띄엄 대답을 했다.

좁은 공간에 수선도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딱 한 사람 앉을 자리 밖에 없어 필자는 문 앞에 선 채 취재노트를 들고 사정하다 시피 질문을 해야 했다.

-요즘 우산 고쳐주는 곳이 잘 없는데 우산도 고쳐주시네요?

"예, 여기 가져오면 다 고쳐줍니다. 우산도 고쳐주고 유모차도 고쳐주고, 뭐든지 고쳐요. 요즘 젊은이들 물자 귀한 줄 몰라서 고장 나면 다 버리는데, 고쳐 쓰고 아껴 쓰고 해야지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나는 여기가 고향이 아닙니다. 직장생활 하다가 그만두게 되어 이것저것 해봐도 안 되고, 빈 손으로 고흥에서 이리로 왔지요. 일거리를 찾아다니다가 젊은 사람이 이것을 하고 있기에 구경하고 있었더니 한번 해보겠느냐고 하길래 그때 돈 40만원을 주고 이 자리를 인수했습니다. 시내 돌아다니며 이런 일 하는데를 찾아 기술을 배우고, 그때가 50세 쯤이니 벌써 35년이 되었네요. 지금은 숙달이 되어서 못 고치는 게 없어요"

-이 연세까지 정정하게 일을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그냥 건강이 따라주니까 하지요. 그래도 나 혼자 하는 일이니 자유스럽고 누구 눈치보거나 구애받을 것 없이, 일 하고 싶으면 하고 쉬고 싶으면 쉬고…. 여기 나와서 오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며칠 전에 눈 많이 와서 한 3일 집에 갇혀있으니 갑갑하더만요. 나와서 일하면 건강에도 좋고, 우리 할멈하고 둘이 먹고 사는 것은 걱정없어요. 할멈이 농사를 지어서 보탬이 됩니다" 할아버지의 얼굴에 자부심같은 게 스쳐간다.

-자제분들이 도와주시는지요?

"자식한테 의지 안 합니다. 저거만 잘 살아 부모 걱정 안 시키면 다행이지요. 저거는 저거 벌어 살고 나는 내가 벌어 살지요."

얘기하는 동안에도 몇몇 손님이 수선한 것을 찾아가기도 하고 맡기기도 한다.

- 특별히 건강관리를 하십니까?

"뭐 특별히 건강관리라고 할 것은 없지만, 신경은 쓰지요.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해야 자식들이나 주변 사람들 귀찮게 안 할 것이니까요. 채식 많이 하고, 몸에 이상이 조금 느껴지면 바로 병원에 갑니다. 아무래도 병은 예방이 제일이니까요. 그리고 많이 걸으려고 노력합니다. 여기서도 일이 좀 뜸할 때는 시장을 한 바퀴 돕니다. 이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손운동이지요."

그러고 보니 신발을 만지고 수선하는 일이 양쪽 열 손가락과 몸을 계속 움직이면서 하는 일이라 전신운동이나 마찬가지이다.

35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할머니와 함께 틈틈이 농사도 지어, 4남매를 공부시키고 결혼도 시켰고 지금은 노부부가 자식들에 의지 안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 85세의 할아버지. 지금까지 다른 사람과 다투거나 싸워본 적 없이 살아왔다면서, 남이 나에게 좀 잘못해도 내가 참으면 결국 그 사람이 반성하고 사과한다는 생활경험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취재를 마치자 필자에게 당부했다.

"취재는 해도 신문에 내지는 마이소."

어쩌나…. 그렇지만, 이 글 신문에 냈다고 야단치시지는 않을 것이라 싶었다. 남이 잘못해도 참기를 잘 하는 할아버지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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