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홍곤 그림/이철진

반장-암 그렇구 말구요. 우리 반은 고사하고 왼 동네 사람들도 이젠 물걱정은 반이나 덜겠다고 야단들이죠.

재수-나는 짐작을 하고 시작한거 거든요. 자고로 정치란건 꿩먹고 알먹기로 미리 내다보고 하는게 상수랍니다. 배 고픈 놈엔 국물이나 싫컷 먹여 주고 건데기는 내가 슬쩍 삼켜버리거던 이걸 협잡이라 할놈은 없겠죠.

반장-물론이지요.

재수-저 우물 속에는 다른 사람들로서는 물이 들었지만 나에겐 표가 묻혀 있거던. 이쯤되면 박동장도 기가 꺾일 껄. 제표가 많은가 내표가 많은가…

반장-영감님 표수는 내가 보장하지요. 지역상으로 보더라도 우리반은 말할것도 없고 오, 육, 팔, 구 반은 장차 영감님 우물의 혜택을 입을것은 정한 이치죠. 박동장 우물은 기껏해야 일, 이, 삼, 사, 반밖엔 못 쓸걸요. 게다가 그 놈의 물세는 어떻게 비싼지... 영감님, 우물만 완성하는 날이면 거이다 이리로 쏠릴겁니다. 우물가에다 입후보 광고 한장만 붙여두면 족하지요.

재수-나도 자신이 만만해서 시작 한거라오. 실없이 김치국만 마시고 앉았을 최재수는 아니거던 하…

반장-영감님은 금년엔 운수대통이요. 하… … 일이란건 될려면 저절로 척척 되가는 법이지요.

재수-이것도 다 반장의 덕분입니다.

반장-천만의 말씀을! 모두 영감님의 인덕으로 이뤄진 거지요. 저의 동서 조합장은 과연 사람을 알아보거던요. 저만 만나면 침이 마르도록 최영감님의 칭찬이라 듣는 저가 되려 낯이 간지러울 지경입데다. 아마도 영감님의 그 늠늠한 기풍에 홀딱 반한 모양이지요. 하... 그렇길래 위선 오십만환이란 돈을 이자도 없이 선듯 내 놨지. 영감니, 아닌 다른 사람이면 어지간히 이자를 붙여도 어림도 없을 겁니다.

재수-글세 조합장댁에는 이래 저래 폐만 끼쳐서 어제나. 망냇놈 동식이 조차 징집을 기피하고 그댁에서 묵고 있으니.

반장-아니올시다. 영감님도 그저께 가보셨지만 동서 내외는 아들 상팔이를 여간 귀해 하지 않습니다. 삼대독자 거든요. 자식 귀한데다가 동식이가 상팔이와 서로 형아, 동생아하고 좋아 다니니 그 내외는 댁이 동식이를 아들같이 귀해 한답니다.

재수-허- 그렇게 까지? 허기야 나도 망냇놈을 무척 사랑하지요. 그놈은 제대로 될대론 됐거던요. 큰 놈은 저꼴이니 남팡에 내놓기가 창피할 지경입니다.

반장-밤낮 책만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은 대개가 다 그렇습니다.

재수-조합장의 아드님은 그저께보니 아주 훌륭한 청년이더군요. 그 몸 같으면 호랑이라도 맨 주먹으로 능히 잡겠던데. 게다가 거동이 점잖고…

반장-그뿐입니까. 대학도 나왔지요.

재수-허- 어쩌면 그런 훌륭한 아들을 뒀을까? 그 양반은 돈 많고 아들 똑똑하고… 근데 그런 외아들을 지금 몇살이길래 입때 장갈 안들였을가요?

반장-스믈 일곱이지만 부모가 아무리 골라 줘도 싫다는걸 어떻컵니까. 그럼 네 맘대로 골르라 했드니 그애 마음에 드는 계집애가 없다더군요.

재수-그런 모범청년의 마음에 들만한 처녀가 요사이 어디 있겠오? 거리에 싸다니는 계집애 치고 쓸만한건 없거던… 허- 그 참!

반장-(재수의 눈치를 살피며) 뭘 그렇게 탄식을 하시오?

재수-아-니 그저 세상되어 가는 꼴을 생각하니 안타까와서…….

반장- (바싹 닥아 앉으며) 여보 영감님!

재수-네?

반장-그놈이 댁의 따님을 한번 보고 몸이 달아 야단이랍니다.

재수-그놈이라나? 조합장의 아들 상팔이 말입니까?

반장-그렇습니다.

재수 -허- 참! 혜경이를?

반장-동서 내외는 최영감의 따님인 줄 알고는 왜 일찌기 몰랐던가고 후회를 하더구만요.

재수-나도 어리석지! 왜 일찍암치 짐작을 못했을가? 혜경이는 원래 앙콤한 계집애가 돼서 에비 에미한테도 말을하지 않고 있었군 그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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