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홍곤 그림/이철진

반장-영감님 금년엔 운수 대통이라니까. 조합장과 사돈 관계면 동장은 고사하고 시의원 자리도 내다 볼수 있읍니다.

재수-(입맛을 쭉쭉 다시며) 허- 그 원! 내가 바보였지. 왜 일찌기 생각을 못했담. 허기야 그저께 상팔이란 애를 봤을때 탐스런 생각은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꿈이 실현될 줄이야.... 여보 반장. 그쪽에서 꼭 성혼시킬 마음은 틀림 없죠?

반장-그러기에 돈오십만환을… (갑작이 말을 끈는다) 동서 내외는 영감님댁과 인간적으로 인연을 맺자는 겁니다. 자식도 자식이지만 동서 내외는 영감님같은 분과 사돈 되기를 무척 바라고 있어요.

재수-고마운 얘기요. 그런데 그저께 우리가 찾아 갔을땐 왜 일언반구도 그런 말이 없었을까?

반장-생각해 보시구려! 어디 점잖은 처지에 낯 대놓고 그런 소릴 하겠나요.

재수-그것도 그래. 그러면 지금 당장이라도 반장이 가서 내 뜻을 전해 주시오.

반장-아직 아주머니의 의사도 확실히 모르고 어떻게… …

재수-마누라가 어디라고 감히 반대해! 그렇잖아도 딸 시집 보낼 걱정이 태산 같다오. 내 마누라 걱정을랑 말고 어서 가 또 한번 수고해 주시구려!

반장-그럼 영감님만 믿고 가 보겠읍니다. (마당에 내려선다. 재수도 내려서서 대문까지 함께 걸어가면서)

재수-동식이한테 상팔군을 데리고 집에 놀러 오라고 전해주시오.

반장-녜, 그렇게 하리다. (퇴장)

재수-(청쪽으로 되돌아 오면서) 나도 이젠 때를 만났다. 눈앞에 달려있던 떡을 내가 왜 진작 조지 못했을까? (자기 머리를 두들기며)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어디 정칠해 먹겠나! 정신 밧작 채려! 아니야 우물을 착안한건 누군데? 내야 내! 뭐니 뭐니해도 내가 제일이거던 (청에 걸터 앉아 잠자코 생각에 잠겨) 가만 있자… (손꾸락을 꼽으면서) 이렇게 되면… 이렇게된다… 그러면 또…(바른손 주먹으로 왼손 바닥을 탁 치면서) 옳지 됐어!

일꾼갑-(뒷곁에서 등장) 영감님 밧줄 어딧능교?

재수-(갑자기 사고(思考)에서 깨어나) 뭐? 박줄이 어쨌다구?

일꾼갑-앙입니더. 박줄이 앙이라 밧줄 말입니더. 로뿌 말이요.

재수-허- 자넨 로-뿌란 일본말도 아는구나. 나도 일본시댄 일본 말도 잘했고 벼슬도 살았거던.

일꾼갑-나도 왜놈 밑에서 고조- 노릇을 해봤입니다. 일본말 쯤은 압니데이.

재수-자네가 알면 얼마나 알겠다고 힌소리야! 로뿌는 저기 청밑에 있으니 가지고 가.

(일꾼갑 밧줄을 둘러 메고 뒷곁으로 퇴장)

재수-나도 가서 돌 봐야겠다. (뒷곁으로 나가면서) 뒷문을 터놓으니 드나들기가 편리하군.

(무대는 잠시동안 비어있다. 담 넘어 공사장에서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 한층 크게 들려온다. 이윽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혜경 등장, 어딘지 우수와 불안에쌓인 태도다.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는 공사장쪼긍ㄹ 물끄럼이 처다 보다가 한숨을 쉬고 우편 방으로 들어간다. 이윽고 대문 밖에서 떠들석 하더니 동식과 상팔 들어온다. 혜경은 옷을 가라입고 밖으로 나오려다가 들어오는 자들을 알아보고 재빨리 청뒷문을 열고 집 뒤로 뛰어 나가고는 뒷문을 닫는다. 상팔 두리번 거리면서)

상팔-네 누나 아직 안 왔구나. 임마! 너 편지는 꼭 전했어?

동식-암 전했고 말구.

상팔-야 이새끼! (목을 졸르며) 거짓말 하다간 알지! 귀신 모르게 골로 간다.

동식-(몸 부림을 치면서) 아-아! 형님! 틀림 없이 전했다니까.

상팔-(동식의 목을 졸르던 힘을 좀 풀어 놓고) 그런데 임마! 답장도 안 받아오고 네 누나는 만나자는 장소에도 왜 나오질 않어?

동식-글세 나도 모르겠는걸.

상팔-(목을 놓고) 이 새끼야 정신 똑똑히 못 차리겠어! (주먹으로 동식의 머리를 툭 친다) (동식 머리를 만지며 고통으로 상을 찌푸린다) 넷놈이 잘나서 내가 널 데리고 다니는 줄아나? 너애비 우물 판다는데 네 애비의 뭣을 보고 오십만환을 이자도 없이 내 놓았겠어?

동식-어디 내가 모르나? 나도 알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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