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평리동 임정은 미용사

김선경, 권수정, 임정은(왼쪽부터) 미용사가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두류공원 네거리, 오늘은 화요일! "떡진머리 할아버지도 오늘은 무상으로 이발을 할 수 있는 날이다." 새벽녘에 나와서 미용사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이발도 하기 전에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용사 임정은 씨의 첫 마디는 "이곳에는 떡진머리 할아버지가 많이 오십니다. 혼자서는 머리를 깜을 수가 없답니다. 장발 상태를 보면은 족히 사오개월은 되었서요! 저희는 머리 모양만 보아도 어르신들의 가련한 삶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정말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는 이 노인들을…."

임정은, 김선경, 권수정 미용사는 오늘도 까마득히 차례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무엇에 쫓기는 사람들처럼 바쁘게 가위질을 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이곳에 나와 줄을 선 사람들은 배도 고프고 머리도 깎아야 하는 홀몸노인들이다. 두류공원에서는 매주 화요일이면 사랑의 밥차가 와서 무료급식을 한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가난하고 몸이 아픈 독거노인들을 부축해 미용사들이 이발 봉사를 하고 있다. 오늘도 맨 끝줄에 선 노인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혹시나 이발하고 식사를 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어서다.

이발을 마친 할아버지는 단정하게 변한 자신의 모습에 모처럼 환하게 웃으신다.

- 기분이 좋으십니까? "좋다 마다요 몇 년은 더 살 것 같아요!" 이어 할아버지는 속옷 안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미용사에게 꼭 쥐어주신다. 언제 챙겨둔 것인지는 몰라도 그것은 '홍삼 눈깔사탕 한 알이었다' 보는 이의 가슴도 찡하다…. "아가씨, 아주머니 부디 부자 되고 복 많이 받으소!"

평리동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임정은 씨는 7년 전 공원에 산책 나왔다가 시각 장애인들이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럴 수가! 저 수많은 노약자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분들이 도리어 식사를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그녀에겐 충격이었다. 순간 그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그녀의 양심을 짓눌렸다. "나는 미용사다"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밥차 앞에 줄선 떡진머리 할아버지와 장발한 노숙자의 모습뿐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이발 봉사가 7년째다.

"이제는 매주 화요일이면 어떤 일이 있어도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찾아 가야 합니다. 새벽부터 기다려준 것이 고맙고 이발하고 환하게 웃으시고 기뻐하시는 모습은, 언제부터인가 나와 우리 가족들의 행복의 씨앗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방학만 되면 철부지인 아이들도 데리고 가서 봉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동안 봉사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토로했다. 가장 신경이 쓰였던 것은 이발 봉사하는 현장 주변에서 영업을 하는 한두 미용업자가 집요하게 항의하고, 방해를 했던 것이다. 이유는 무료 봉사로 수입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노약자들에게 무상으로 이발해 주면 고객이 줄어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지나친 오해라고 했다. 그녀의 설명은 "공원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무료 급식을 받는 노인 이외에는 머리를 깎아주지 않으며, 머리를 깎는 노인은 사방팔방에서 오셨고, 공짜로 지하철을 타고 무료급식을 받으러 온 가난한 분들이라 돈 주고 이발할 처지가 못 되며, 고령에 병중이시고, 떡진머리를 한 할아버지도 많아 주변 업자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간곡히 부탁했다. 주변에서 미용업을 하시는 분들에게, 저희가 지장을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미안한 일이라고 하면서 넓은 아량으로 곱게 봐주시면 좋겠다고….

그녀와 이들 세 사람은 평소에도 가난한 노약자에겐 각별한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이발 봉사를 하면서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는다. 쉬는 날이면 이발 기구를 챙겨서 어디라도 찾아간다. 김선경 아가씨는 쉬는 날이면 언제나 어머님을 도와서 모녀가 함께 봉사한다.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고와 보이는 그녀는 인터뷰도 사양하고 수줍어했으나 노약자에 대한 자신의 봉사관에 대해선 너무나 명료하고 당당했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 낮 12시까지 봉사한다. 임정은 씨는 말했다. "돈이 없어 이발을 못하시는 홀몸 노인이나 혼자서는 머리를 깜을 수도 없는 노인은 장발도, 때 묻은 머리도 부끄러워 마시고 이곳 두류공원으로 오십시요!" 그녀의 끝 말씀은 "빨간 모자 쓰시고 번호표 만들어 질서를 잡아주던 할아버지가 안 보이셨는데 또 며칠사이에 칭찬을 많이 해 주시던 어르신마저 안 보이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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